'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242건

  1. 2012.12.18 거두절미
  2. 2012.12.16 기록의 가치 2
  3. 2012.12.13 盡緣 2
  4. 2012.12.08 희망고문 6
  5. 2012.12.06 자질구레한 생각.. 4
  6. 2012.12.03 자질구레한 이야기들.. 4
  7. 2012.09.04 한달에 한번...월기 (月記 ) 2
  8. 2012.08.18 나의 사랑, 나의 딸 4
  9. 2012.08.05 알파는 외로워
  10. 2012.07.24 첫 인상 2

거두절미

2012. 12. 18. 18:24 from 생각꼬리

# 거두절미한 제언 (부제 : 버리지 못하는 당신께..)

 

대치동 사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깔고 앉아 있는 서울의 아파트들이 대략 평당 1000만원~ 2000만원(보수적으로 잡아도..)

그러면 평당 1000만원짜리 공간에 있는 물건들 중 1000만원의 가치를 가진 것은 얼마나 될까?

꼭 필요한 물건들이야 그게 만원이 됐든 1억이 됐든 가치를 환산할수 없으니까 그렇다치고..

쓰지 않고 모아둔 잡동사니들이 과연 그 평당 천만원을 차지할 만한 가치가 있는것인가?

 

5년째 한번도 꺼내 입지 않고 옷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옷들,

7년째 그렇게 짱박혀 있는 신발,

책꽂이에서 먼지를 타고 있는 책들,

혹시 몰라서 넣어둔 수많은 어디에 쓰는지 모르는 물건들..

(예를 들면 열쇠들, 무엇인가의 부속들, 그 정체를 알수 없는 코드들, 버리면 큰일 날것 같은 무언가,

언젠가 한번쯤 없으면 아쉬울거 같은 그것...등등등...등등등...등등등...)

 

오랫동안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 중에서 평당 천만원의 가치에 필적하는 것들만 남겨둔다고 생각하면

정리가 훨씬 쉽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자 오늘 부터 버리자...

 

덧1) 친구는 앞장 몇페이지만 쓰고 만 아이들 노트들을 위의 기준에 의거,

언제 쓰게 될지 모르는데 모아놓지 말고 버리자 했다가

아이들 일기장을 같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하니

그런 노트류 버릴땐 수고스럽지만 꼼꼼히 살필것...

 

덧2) 순수한 의미의 쓰레기도 버리기 싫어하는 습벽을 가지고 있는 모씨..

궤변이란다.. 그래서 쓰레기더미로 바리케이트 치고 살아라 했다..

그의 방은 쓰레기로 담장을 높이 쌓아서 점점 아늑해지고 있다..

 

 

# 거두절미한 추천

 

이미 유행 막차라는 '밤사'라는 곳이 있다..

왕년 잘나가는 언니, 오빠들 사이에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곳인데..

'아직도 거길 안가봤어?' 내지는 '거길 몰라?' 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를테면 핫 플레이스

80년대 90년대 유행했던 음악이 나오는 70~80보다는 약간 더 뒷세대..

'응칠' 세대가 가는 곳이고 우리 486들은 한쪽 구석에 짱 박혀 한자리 걸칠 수 있는 곳..

뒤늦게 여길 가봤는데 강남역이 제일 재밌다고해서 갔는데 (체인이라 여기저기 있다..)

여러가지로 깜짝 놀라고 여러가지로 무척 재밌었다..

왕년에 전신운동권 출신으로 발바닥 깨나 비벼본 사람..

아니면 남 노는거 구경이라도 좋아하는 사람..

강추...

 

놀랐던거 :

인테리어에 정말 돈 안들임..(테이블이랑 의자가 학교종이 땡땡땡 책상 걸상임)

주문도 줄서서 셀프,심지어 선불, 주류도 셀프, 안주만 가져다 줌..

맥주병 따개도 주문대 앞에 딱 하나 있음(병 따가지고 들고 와야 함)

(난 대천 해수욕장 온줄 알았음..)

추워서 히터 좀 올려줄 수 없냐고 했더니 고장 났는데 본사에서 안 고쳐 준다함..

손님 많아지면 더워질테니 기다리라고... ㅠ.ㅠ

30대 중후반 부터 40대 초중반이 가는데라고 해서 갔는데 왠걸...

강남역이라 그런지 애들 되게 젊음..(첨엔 쫌 민망했음..다행히 깜깜함..^^)

7시반부터 입장인데 늦으면 줄선다고 해서 그 시간에 들어가서 테이블 잡고도 1시간이나

멍하니 앉아있었는데 시간 늦어지니 정말 사람 열라 많음..

입석만으로도 스테이지가 꽉차고 입구에 줄이 장난 아님..

 

재밌던거 :

같이 간 친구가 재밌으면 이 모든 민망함을 이기고 정말 재밌다..

사람구경 만으로도 재밌고

옛날 생각 나서 재밌고..

옛날 분위기 디스코텍 그리운 사람들은 한번 가서 구경만 해봐도 즐거울듯...

Posted by labosque :

기록의 가치

2012. 12. 16. 15:13 from 기억한올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친구가 데이브 브루벡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올린걸 읽게 되었다..

아..그렇구나..브루벡이 죽었구나...

 

Take Five 까지는 기억이 났다..

한때..(언제인진 모르겠다..아마도 15년 전쯤?)

Time out CD를  줄기차게 들었던 기억이 있으니까..

 

몇년적 미국 살때, 정확히 2004년 부터 2008까지..

병건이와 재즈 공연을 보러 간적이 있었는데

머리가 하얀 연주가들을 보고 참 감동했던 저녁이 있었는데..

그게 브루벡의 공연인지 확실치 않다..

 

브루벡이었던 것도 같은데

아니었던 것도 같다..

친구에게 브루벡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한데

아닌것 같기도 하다..

 

더 먼, 어린시절의 기억이 뿌연 유리구슬 같다면

더 가까운 기억들은 오히려 속이 안들여다보이는 색유리 구슬 같다..

그 안에 무언가 있긴 있는데..

통 알 수가 없다..

 

한가지 기억나는 건

그 연주회의 추억을 싸이에 올렸다는 기억..

 

즉 기억을 저장해두었다는 기억

타임캡슐인 셈이다.. 싸이월드가...

뭔진 모르지만 암튼 넣어 두었단건 알고 있으니.. 하하...

 

기억도 안나는 아이디와 비번을 간신히 어찌 저찌 찾았다..

그곳에도 그때 당시의 기록들이 있는데 이렇게 그냥 잃어지면 어떡하나 싶다..

 

내 머리속은 점점 화석화되가고 있는데

언젠가는 싸이 아이디도 비번도..

심지어 싸이에 무언가 담아두었다는 것도 잊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얼마나 많은 타임캡슐들이 땅에 묻혀서 자기들을 묻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어쨋거나 그렇게 뒤져서 찾아낸 기억 한조각

 

 

그 기억을 찾아내고 보니 딸려 오는 또 다른 기억 한 조각

 

Posted by labosque :

盡緣

2012. 12. 13. 15:24 from 기억한올

# 부음

 

오랜만에 감기로 모든 일정을 없애버리고 세수도 안한채 빈둥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바로 이 블로그에 올릴 시시껍절한 글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10년 동안 알아온..얼마전 '다들 바쁘니 올해 송년 모임은 없을거라' 단체문자를 보냈던

사진모임 반장 동생이 전화를 했다..

내년에나 보자더니 심심했나 싶어 반갑게 전화를 받았지만 목소리가...이상하다..

'은영언니...'말을 못잇는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소식은

언제나...

늘...

너무...

이르다...

 

 

# 인연

 

처음 만난지 벌써 10년..

2002년 봄..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스튜디오 촬영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만나게 되었다..

처음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은 아마도 20여명쯤 되지 않을까?

첫 두,세번의 강의 이후엔 토요일마다 한겨레 신문사 옥상 스튜디오에

다같이 모여서 촬영수업을 했다..

한 공간에 복닥복닥 네댓시간씩 몰려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모델도 되어주며

그렇게 토요일마다 같이 보내길 3개월쯤..

그 사이에 엠티도 가고 출사 모임도 하고..

그러다보니 어느틈에 훅...친해져 있었다...

20대 초반부터 30대 끝물까지 열 몇살 차이가 무색하도록...

 

수업이 끝나고.. 

애초부터 다른 사람들은 한번 갈리워 나가고..

해마다 한,두명씩 잃어가면서도

남은 사람들은 한해, 두해...

정을 폭폭히 쌓아나갔었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그렇게 편하다고 생각할만큼...

 

 

# 그녀의 가계(家係)

 

때로 '드라마 같다, 드라마 보다 더 하다' 라고 이야기들 하지만..

인생은...

드라마 같은 일도 있고 드라마보다 더 슬픈 일도 물론 있지만...

드라마 같진 않다..

드라마에는 '극적인..'모든것들이 압축되어

극적으로 감정이 고조되어 극적인 재미를 불러 일으키는

모든 장치들이 한자리에 있지만..

 

인생은...

그저 길게 늘어질 뿐이다..

모든 일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서..

그렇지만 드라마보다 더 불운하게...  더 슬프게...

 

언니의 나이 20대 중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했다..

간암..

언니가 보여주던 흑백사진에는 젊고 예쁜 엄마와 유복하고 단란한 가정의 느낌이 있었다..

 

그 몇년 후..

남동생이 죽었다..했다...

역시 간 질환

언닌 담담하게 말했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남동생이 너무 슬퍼서 술도 많이 먹고 그랬어..그래서 그랬어..'

 

우리가 알고 지낸 10년..

언니네 장례식이 두번쯤 있었다..

막내 남동생..

우린 결혼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래 만난 예쁜 아가씨를 두고

또 그렇게...

간암으로 동생이 떠났다...

 

언제인가 쓰러지셔서 오래 병석에 계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었다..

막동이 동생이랑 순서가 바뀌어서 차라리 모르셨음 더 나았을걸 싶었지만..

 

 

# 소식

 

작년이었다..

언니가 삼성병원에 입원했다고 소식듣고 찾아 갔던게..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대해줬지만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이 손님 가고 나면 밤새 그렇게 운다고...

왜 안그렇겠어...같이 눈물이 났다..

 

하나 남은 언니의 피붙이..

언니의 언니와 마석으로 이사를 갔다..

둘다 결혼도 안해서 세상에 둘만 남은 자매..

 

봄에 한번, 여름에 한번..

또 올께 라고 이야기하고 가을에 한번..

가려고 가려고 생각만 하고 미루고 있었다..

마음에 걸려 있었는데..

 

천장이 높은 예쁜집..

그렇지만 난방비 많이 나와 추운 집..

이번 겨울을 따듯히 잘 보내려나 약간은 걱정되게 만들었던 집...

눈 오기 전에 가야하는데 마음에 걸려 있었는데...

 

같이 문상 가는 차안에서 현숙언니가 말했다..

'우리 마음 편하자고 하는거지..'

그러게..그렇게 얼굴 한번 더 봤으면 그나마 마음이 조금 편안했을까?

 

 

# 빈소

 

더 많이 죽는 날..좀 덜 죽는 날..

혹시 그런 통계도 있으려나?

장례는 2일장이라 했고 혹시나 살풍경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마음과는 다르게

빈소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의아했던 건

여태 다녔던 장례식중에 이렇게 텅텅 빈 느낌은 처음이었다는 것..

삼성병원이었다..

어디 외진 곳도 아니고..

 

접객실이 벽으로 막혀 있지 않고 그냥 높은 칸막이로 구획지어 있어서

이쪽 접객실에 손님이 넘치면 옆 접객실까지 쓸수 있는 합리적인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저 끝까지 몇개나 되는 영안실의 접객실들이 불꺼진 채 텅비어 있는 모습을 보는건

좀 이상했다..

 

오늘따라..죽는 사람도 별로 없구나...

나 죽는 날은 다른 사람도 같이 많이 죽는게 좋을까? 덜 죽는게 좋을까?

 

빈 탁자만 놓여진 텅빈 불꺼진 접객실과 빈소를 보는건 좀 쓸쓸했지만

너무 북적거리지 않고 호젓이 하늘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종교가 없다는게...

좀 불편한 한 순간이 바로 이런 순간이었는데..

언니를 어디로 어떻게 보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언니가 기독교 였으니

하나님 옆으로 보내주십사 기도를 했다..

 

 

 

 

 

 

 

 

 

 

 

 

 

Posted by labosque :

희망고문

2012. 12. 8. 12:58 from 생각꼬리

얼마전..한달여전쯤?

H와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았다..

그래...바로 그...

유명한...

'고도를 기다리며..'

 

너무나 유명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 '고도'

나도 한 30년쯤 그 이름을 들어왔던 그 '고도'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라는 한줄짜리 설명을 들은 것 만으로 마치 내가 고도씨를 아는양

착각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고도' 말이다..

 

그 연극을 본후 간단한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부조리극 이란 단어를 접했고..

 

부조리극이란 단어는 또 내게 고등학교 시절 불어를 가르치던

한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줄줄이 엮어 올렸는데..

 

말라르메니 부조리극이니 떠들어도 말이 안통하는 우리를,

심지어 약간의 호기심이나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우리를,

그 선생님이 얼마나 무시와 심지어 멸시의 표정으로 대했는지를 떠올렸고..

 

부르조아에 대한 경멸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편리함과 윤택함에 끌리는

양가감정에 스스로 고뇌하던..

그리고 그 고뇌를 극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날씨 좋은 날이면 학교 건물과 미술 실기동 가는 길 사이 쯤에 있는 벤치에서

온갖 시니컬하고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나 우울해'라는 오라를 온몸으로 뿜으며

머리를 팔에 묻고 앉아 계시곤 했던...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에 대한 약간의 이해와 동정과

한편 그 세련되지 못한 극적이고 과장된 표현 방식에 대한 반감과

속내를 들킨 어른을 바라보는 아이의 교만한 반발심으로

복잡미묘한 감정 속에 있었던...그런 내가 떠올랐었다..

 

그 선생님은 마르고 약간 해골같은 분위기의 얼굴형에

꾀죄죄한 양복과 와이셔츠 밑, 목위와 소매 밑으로 삐져나온 회색 내복에

산발한 머리스타일의 캐릭터이셨는데

어느모로 보나 우리학교와는 참 안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 선생님이 말라르메를 우리에게 소개해주실 때

우리의 경제적 윤택함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오는)과 거기서 오는 천진난만함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셨더라면 아마도 관계가 훨씬 부드럽게 이루어졌을텐데..

 

선생님은 어린 부르조아로 여겨지는 우리를 자신의 지식을 무기삼아 경멸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경제적 열등감과 빈곤으로 부터 오는 모멸감을 치환하려고 하신듯 하다.

 

결국 1년인지 2년만에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어 던지듯 다른 학교로 떠나셨다..

 

이 기억은 사실관계와 관계없이 온전히 나의 인상에 의거 한다는 것을 밝혀두며..

다시 고도로 돌아오면..

 

한달 여 전 쯤 그 유명한 '고도'를 이제 비로소 실제로...

아주 재미있고 즐겁게 관람했고

당시에도 많은 말과 느낌들이 내 안에서 휘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잡아내어 표현하지 못했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이미 따끈 따끈한 현재에서 살짝 빗겨난 과거의 기억으로 막 묻어 두려는 시점...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들추다 고도가 살짝 올라왔다..

올것이라고 믿는 어떤 것..

누군가는 그걸 희망이라고도 했고

또 각자 각자의 생각만큼이나 많은 고도의 의미가 있다고도 했는데..

 

그게 바로 희망 고문이었구나...

디디와 고고가 그렇게 하루 하루를 연명하게 하는것

오지 않는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며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건..내가 볼땐 희망도 아니고 메시아도 아니고

그냥 사람을 말라 죽게 만드는 고문일 뿐이다..

희망 고문..

 

그런가하면..

그 희망 고문도 없으면 어찌 살까 싶은 처지라면..

어찌 할까 싶기도 한게...

참 어렵다...

 

 

 

 

 

 

 

 

Posted by labosque :

자질구레한 생각..

2012. 12. 6. 16:57 from 생각꼬리

#

곰양의 말대로..

나는 과거의 기억들, 특히 사람들에 약간은 집착하고 있지 않나 싶은데..

집착이라고 까지 세게 표현하지 않는다하더라도

과거의 것들에 약간은 무게를 더 둔다...쯤으로 해두자..

 

어쨋거나...

 

 

난 사실 '현재를 살자'라는것에 강세를 두고 말을 하곤 하는데

현재를 살지 못하는 나쁜 예로 '나중에..'를 대화중에 일삼는 친구를 종종 언급하면서...

 

모순되게도...

 

 

'지금, 여기'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은근 비난해왔지만..

나는 참 많은 순간 과거 지향적 사람이었고...

그 부작용이 어쩌면 일상 중의 많은 것을 놓치는 사람...쯤으로 나타나고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무래도...

 

 

나는 미래 지향형 쪽 보다는 과거 지향형에 너그러운 편인데

미래 지향형 사고와 과거 지향형 사고에는 차이가 있다...

 

생각해보니...

 

 

뭐...이것 저것 많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언뜻 떠오르는 한가지...

과거와 미래는 실체화되서 내재화 된것과 그렇지 않은 것..즉 실체를 가지지 못한 것...

 

과거의 것들은 실제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고 있지만 미래의 것들은 대부분(실은 전부) 허상에 근거 한다는 것..

가능성이라는 토대위에 자리 잡고 있다하더라도..어쨋거나 미래라는 시점 자체가 허상이다..(올 수도 안 올 수도 있는...)

 

그래서...

 

 

미래의 가능성을 위하여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의 방식을 싫어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과거 지향형의 사고 매커니즘은  지나간 것들을 반짝 반짝 예쁘게 채색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 일단 현재를 과거화 시키는 것...

 

현실에 즉각적인 반응을 유보하고 대신 한바퀴 휘돌아 나올때까지 묵묵히 어느 구석에 저장 시키고...

기억에 많이 의존하고 집착하고...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지금..여기...에 더 집중한다면..

그래서 더 많이 느끼고 즐거워하고 겪고 살아낸다면...

감정이 더 많이 살아있다면...

 

좋지 않을까?...싶기도 하다...

 

그래서...

 

필요한건..

매처럼 찬찬한 눈썰미와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

 

그리고...이구아나의 집중력...

Posted by labosque :

#

가끔... 아주 가끔...

아무 이유도 없이...

울컥....

할 때가 있다..

 

마음에 집히는 콩알 반쪽만한  이유도 없이

가슴이 싸아~하고 먹먹하고

속 깊은 곳에서 울음이 울컥 울컥 올라오고...

 

그럴때면

알지 못하는 끈으로 연결된 누군가에 무슨일이 있어서

강력한 텔레파시 같은 무언가로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영화를 너무 많이 본게지..

 

그렇지만 가끔..

아주 가끔..

그런 순간이 있을 때면..

비록 나는 알지 못하는...

아마도 평생 알지 못하고 죽을수도 있는...

내 소중한 누군가가 지구 한편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이에게 무언가 슬픈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생각을 하며...

 

그 순간을 보낸다...

 

 

##

아주 사소한 작은 일이 하나 떠올랐는데

가령..

중학교 들어가서 첫 봄에 읽었던 책..

(중학교 들어가서 처음 읽었던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지식의 '하얀 길'이라는 단편모음집이었는데

내 생각엔 그 책에서 처음..

'신작로'란 단어를 배운듯 하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냥 그랬던 거 같은 기분.. ^^

 

신지식이라는 사람은..

어떤 작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하얀 길'이라는 책을 냈고

또 중학교 시절 내내 좋아했던 '앤' 씨리즈의 역자이기도 했다.

 

당시 앤 씨리즈 10부작이 5권의 책으로 나와있었는데

아마도 일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중역본이었던거 같다.

 

또 그 '하얀 길'을 떠올리면 같이 떠올라오는 친구가 있는데

중학교 1학년 처음 들어가서 내 옆번호였던 친구..

키 순으로 번호를 정했는데 난 22번..그 친구는 21번 아니면 23번..

그래서 한주씩 걸러가며 짝을 했는데

스위스 소녀같이 예쁘게 생긴 아이였다..

 

하얀 피부에 핑크빛 볼

갈색 눈에 갈색 고수머리..

그리고 어린 눈에도 묘하게 육감적이던 입술..

 

하얀길에도 화자와 화자의 친구가 나오는데

화자는 영리하게 생겼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화자의 친구는 예쁘다라는 말을 듣는다고 묘사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묘하게 맞아 떨어져서

하얀길을 떠올리면 언제나 그 친구가 같이 따라온다..

그리고 그 예뻣던 봄날...

 

난 정말 별걸 다 기억해...

 

 

 

 

Posted by labosque :

어느틈에  묵은 일이 되어 버렸는데 더 이상 묵혔다간 날라가 버릴거 같아서 기억을 붙잡아 맨다..벌써 3주 쯤 전 일이다..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그새 제법 많고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일기같은 블로그를 들여다 볼 새가 없다..

 

# 내 머리속...

4주쯤 전에 어릴때 유학 갔던 친구(록포드의 여인 )가 왔고 3주쯤 전에 그 친구를 환영하는 모임이 두건 있었다..둘 다 즐거웠고 흥겨웠고...언제나 그렇듯 타임머신 타고 휘리릭~ 다녀왔고...그중 고등학교 동창 모임...그닥 가까이 만나지 않던 친구들이 여럿 나왔는데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근자에 (5년 안쪽이면 근자라고 할만하다) 한두번씩 본 친구들도 있었고 그중 한 친구는 정말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이었다. 어쨋든..워낙 조용하고 내성적인 친구라 그닥 가깝지는 않았었는데 어느 한 날의 기억이 있다..밤이었고 미술 실기실이었다..창밖에는 내가 좋아했던 가는 눈썹달이 떠 있었고 그 옆에 별까지 하나 같이 떠서 완벽했던 저녁 하늘..그 친구는 학과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실기는 정말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그래서 늘 실기실에 늦게까지 남아있었고... 난 그런 애가 아닌데 집에 안가고 뭐하고 있었나 사실 잘 모르겠고..어쨋든 그런 밤..그 친구랑 나랑 둘이 실기실에 있었고..그 친구는 담배를 피우며 화가(조각가)로서의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 했고..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그 친구가 열정을 다해 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만큼 나도 열정을 다해 그런 화가들을 관조하고 후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그때부터도 난...화가로서의 열정은 부족하다고 깨닫고 있었나보다...어쨋거나 그 친구를 다시 만나니 그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왔고 난 폭탄 선언을 해버렸다..'이제는 말할 수 있다..너 그때 실기실에서 담배폈던거 기억나?' 젠장... 미안하다..옥아...그런식으로 말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너 순간 당황하더라..당황하면서 이렇게 말하더라..'어? 나 사람들 앞에선 잘 안폈는데..' 얼굴까지 살짝 빨개져서 나도 순간 당황했지만.. 30년전 에피소드로 간략히 웃음으로 때워버리고 말았지만...내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위의 글이었어...하지만 이런게 워낙 말로하면 오글거리잖니... 이해...해라.... ㅠ.ㅠ

 

# KG의 기억 속...

KG는 고등학교 2학년쯤 학교를 그만둔 친군데 몇년전 TS 결혼식에서 본적있었다..남자들끼리는 계속 연락하고 있었는지 부인에 애들까지 데리고 결혼식장에 왔던 기억이 있고 두달쯤 전 친구 전시회 오픈때 다시 만났다.. 난 기억을 하고 있는데 KG는 TS의 결혼식장에선 워낙 사람들도 많고 여러명과 만났던지라 날 못 봤단다.. 30년만에 다시 만나 반갑다며 알은체를 한다..길거리에서 만나면 못 알아보겠다고 하더니 금새 하나도 안 변했다고 한다.. 그래..나도 그 모순 된 문장들을 아무 생각없이 턱턱 뱉을 수 밖에 없는 그 상태.. 이해한다.. 워낙에 동창들 얼굴이란게...그렇더라...그러다가 자기랑 나랑 짝을 했었다며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그랬나? 기억이 가물 가물하다.. 그 친구도 워낙에 말수가 적고 조용했다..고 1때 였다는데...'미안하지만 잘 생각이 안난다..'흠...그랬다.. 그리고나서 다시 본게 록포드의 여인 환영식...전체적으로 타임머신 타는 분위기라 같이 막 타고 가다보니 그이야기도 한번 더 나오고..나도 휘리릭 떠오르는 게 있다.. 고 1 때였고.. 학기초 쯤이었던 거 같고.. 내가 주번이어서 학교에 미친듯이 일찍 나왔던 적이 있는데..그때 그 친구는 벌써 나와있었던지 아님 두번째쯤으로 나왔던지..그랬던거 같다.. 그래서 정확한 상황은 기억 안나지만 어쨋거나 아침에 텅빈 교실에서 같이 있었던 적이....그냥 그거였다..그게 다다..그 친구랑 짝이었는지 어쨋는지 그다지 말을 섞은 기억도 없는데 그냥 그날 아침에 나보고 '너도 일찍 오는구나?' 해서 속으로 사실은 난 그런애가 절대 아닌데 생각했던걸 보면 그냥 오해하게 놔두었나 싶기도 하고..나도 말수가 적은 아이였나보다.. -.-;;

 

# SD의 기억 속...

역시 같은 날..SD도 타임 머신 타고 가다 줏은 기억을 하나 툭 던진다.. SD 역시도 고등학교때 정말 말 한마디나 해보았나 싶을 정도로 말수 적고 내성적이고... 나뿐만 아니라 아마 우리반 여학생들 대부분이 SD의 목소리를 모르지 싶을 정도로 수줍던 소년이었다.. 그냥 무지 무지 착했다..혹은 그럴것 같았다 라는 게 내게 남은 SD에 대한 지배적인 기억이다..지금은 자분 자분 이야기도 잘하고 '그때 왜 그랬니?' 라고 하자 '그러게..그때 왜 그랬지? 너무 아쉬워'라고 조용히 눙을 칠수 있는 점잖은 아저씨지만..

어쨋거나 SD의 기억은 추억의 522 (아달달 혹은 오달달)번 버스에서 터졌다.. 나도 522 버스를 주로 타고 다녔는데 TS가 버스에서 날 만나는 날은 '아! 오늘은 지각이구나!' 한다고 그랬다고..고 3때는 지각한 사람들이 남아서 청소를 했는데 매번 걸리는 애들이 비슷하니까 나중엔 애들이 청소 전문 업체 직원 같이 됬다고..옆반 청소 30분 걸리는 거 우리반은 10분이면 끝난다고..막 그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SD도 버스에서 날 만난 이야기를 한다.. '너도 지각 많이 했니?' 아니란다.. 집이 멀어서 학교에 정말 일찍 왔다고..그럼 아마도 내가 미친척하고 일찍 간 날들 이었나보다.. 어느날.. 버스를 같이 타고 오다가 학교 앞에서 내렸는데 내가 먼저 내리고 뒤에 내리다가 그만 내 치마를 밟았단다..치맛단이 좌악 틑어졌다고..그래서 너무 미안했다고..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도 볼도 빨개졌을것이다..그만큼 수줍고 착한 소년이었으니까.. 너무 너무 미안해서 그 기억이 남아 있다고.. 흠...역시나 난 기억이 안난다.. '내가 혹시 화를 냈니?' 라고 하자 아니란다..휴..다행이다..그때도 그닥 지랄맞진 않았나보다... *^^*

 

# 친구의 소설...

며칠전 문서저장을 하려다가 찾은 폴더 하나에 오래전 친구가 보내준 소설 파일이 하나 들어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인데 어릴 때는 그런대로 친했던 친구이다..좀 특이한 구석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특이한 구석이 있는 친구..전문으로 글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냥 계속 쓰고 있는 듯 한데..몇편 보내줘서 읽어보았는데 흠..별 재미는 없었다.. 몇년전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다시 만나서 내가 나오는 소설을 쓴것도 있다길래 보내 달라고 해서 읽고 저장해 놓았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였다.. 실화, 실명에 바탕한 기억에 허구를 추가해서 썼다는데 소설적인 관점에서의 평가와 전혀 관계없이 그 친구가 가진 나에 대한 기억과 인상이 참 흥미로왔었다..그 친구랑은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의 기억이 전부인데 그 시절의 기억을 그렇게 잘 간직하고 또한 정돈되게 저장할 수 있다는건 참 놀라운 능력이다..가장 놀라웠던 건 관찰력인데 그 친구는 이미 그때 내 손이 아름답다고 인지하고 있었나보다..내가 내 손이 이쁜 편이라고 느낀게 대학 무렵인거 같은데...엄청나게 조숙한 아이였나보다..어쨋거나 다시 읽어봐도 그럴듯하다..그의 눈에 비친 내가...그래서 그 친구에게 참 고맙다...그때의 나를 그렇게 기억해줘서...그리고 그 기억을 그렇게 잘 저장해줘서...

밥이라도 한끼 사야겠다..10년쯤 늦었지만.. (소설 받은지...)  (_ _)

 

 

# 이 블로그에 나오는 친구들의 이름을 대부분 이니셜로 하고 있는데 나중에 읽어보면 누가 누군지 기억할 수 있을까? 글쎄다..

그때는 암부호로 이루어진 난수표처럼 느껴 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니셜 각주

KG = 경귀

SD = 수돌

TS = 태성

Posted by labosque :

나의 사랑, 나의 딸

2012. 8. 18. 11:51 from 생각꼬리

이제와서 딸을 바란다는건 참 가당치 않기도 하다..

그렇지만 문득 문득 딸 가진 사람들이 부러운 순간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 시댁 둘째 형님네는 딸만 둘인데

얼마나 싹싹하고 다정하고 엽엽한지 모른다..

뭐하나 버릴 구석, 나무랄 구석이라곤 없는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그 집 자매들은

명절에 엄마들이 주방에서 일하고 있으면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오자마자 부엌에 들어와서

앞치마 치고 손을 씻고 자기 엄마를 다정하게 빽허그 하며 이렇게 말한다

'엄만 힘들었으니까 이제 좀 쉬어..내가 할께..'

 

이런 제기랄..

우리 아들? 소파 껌딱지로 부엌엔 물 떠먹을때 외엔 발걸음도 안한다..

뭐..가스 키면 폭발하는 줄 아는 아빠 밑에 자라서

비록 써먹진 않지만 요리학원도 한달 다닌

자랑스러운 아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침에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식구들 먹을 오렌지 쥬스랑 우유를 사오지 않나

산책을 갔다가 스타벅스에 들렀다며 와이프 커피를 전화로 주문받지 않나 하며

날 놀래켰던 작은 아주버님, 다른 형제들과는 참 다른게 신기하여 형님께 물어본적 있었다..

'아주버님은 원래 자상하신 거예요? 아님 딸 키우다보니 자상해 지신거예요?'

'원래 성격도 없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딸들 키우다보니 아기자기하고 자상해진거겠지..'

 

이런 젠장..

우리 남편? 딸 없는 시어머니께 딸노릇 하느라 바빠서 집에선 왕노릇한다..

우리 시어머니는 삼형제중 우리 남편이 젤 자상한 줄 안다..

자기 가족에게 그리 자상하고 몸 가볍고 다정한 울 작은 아주버님은

자기 가족 챙기느라 너무 바쁘셔서 미처 시어머니 챙길 정신이 없으니까..

 

주변에서 봐도 스물 몇살 먹은 딸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다정해져서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늘 함께 있는듯 문자도 자주 오고 '까똑 까똑' 쉴새없이 울려대는데

스물 몇살 먹은 아들넘은 붙잡고 있으면 주변에서 욕 먹는다. 올가미냐고..

근데..사실 붙잡히지도 않고 붙잡으려 들다가 괜히 맘만 상한다..

 

얼마전 혼자서 영국 여행을 다녀 온 아들..

전화로 얼마나 재밌었는지, 스코틀랜드가 얼마나 멋졌는지 이야기해주었지만

문득 문득 혼자라서 쓸쓸했다는 순간들

친구들과 같이 왔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싶었다는 순간들...

그 순간에 내가... 없다...

 

충분히 이해는 가는게..

나라도 같은 순간 우리 엄마랑 있고 싶진 않을테니까...

그렇긴해도 나는 예의상 그렇게 펄쩍 뛰진 않았다 아들아..

두 어머니 들께 맞춰드리느라고 참 많은 양보와 희생을 했건만

너에게 그런걸 바랄 순 없는거겠지?

 

만약 딸이 있었더라면

더 많은 걸 같이 나누는 순간 들이 더 길게 이어질수도 있었겠지만..

더 길게 딸의 양보와 희생을 받아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그러한 순간... 스코틀랜드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풍경을 보며 숨을 삼키고

누군가 살짝 그리워지는 그런 쓸쓸한 순간이 온다면

나는 나의 딸이 되어야겠다..

 

내가 나에게 엄마도 되어주고 딸도 되어주고 누이도 되어주고 아내도 되어주고...

내가 나의 절친이 되어 스코틀랜드에 가보고 싶다...

 

 

 

 

Posted by labosque :

알파는 외로워

2012. 8. 5. 18:51 from 생각꼬리

#몇해 전 부터 8월 4일이면 대학 동기들 모임이 있어 왔다..우리가 84학번 이므로 그때 그때 날짜를 새로 잡을 게 아니라 아예

8월 4일을 지정일로 만들어버리면 다들 알아서 그 날짜를 되도록 비워둘거라는깜찍한 발상이었다..(똑똑한 것들..) 올해는 4일이

토요일인 관계로 3일로 하루 당겨서 모임을 했다..

 

#난 대학 동기 모임과는 인연이 조금 박한게 여름엔 다들 그렇듯이 휴가철과 겹치기도 하거니와 휴가 정도는 실상 조금 빗겨가게 할수도 있지만 외국에 장기 출타하거나 피치 못할 사정등이 특히나 대학 동기 모임과 그 궤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렇지만 아마도 불참의 가장 큰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를 해서라도' 참석할 합당한 이유를 찾아내는데 온 힘을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모임을 벌써 두어번 걸렀고 올해는 특히 졸업 이후 한번도 본적 없는 미국 사는 친구가 왔다고 해서 참석했었다..늘 연락하느라고 애쓰는 친구가 기뻐하도록 꽤나 많은 친구들이 모였는데 다들 모아놓고 보니 참 출중하다.. 고등 모임, 중학 모임을 가도 우리 친구들이 동안에, 미모에..나이에 비해 어디가서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해 왔는데 대학동기들은 한마디로 '알파'다.. 대부분 외모면 외모, 능력이면 능력 뭐 하나 빠지지 않는다.. 외모도 빼어나고 직업도 좋고 배우자도 잘 만난 애들이 자식까지 잘 키웠는데 거기다 술도 잘마시고 노래까지 잘한다.. 그런 애들이 즐비하다...

 

#그 모임에 가면 난 직업이 없어서 한번 주눅 들고, 술을 잘 못 마셔서 두번 주눅들고, 노래 시킬까봐 불안에 떨며 세번 주눅든다..그래서 한쪽 귀퉁이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나랑 똑같이 술 안마시고 일찍 일어서는 친구와 조용히 퇴장한다..퇴장할때는 인사도   남기지 말아주는게 예의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모임에 나가는 걸 거르거나 가도 조용히 있다가 일찍 퇴장하는 이유는 이렇게 자명하다.. 일적으로 얽힌 일이 없으니 화제거리도 별로 없고, 옛 추억을 노닥 노닥 수다떨기엔 얽힌 추억이 별로 없으며, 아무 생각없이 음주가무를...난 즐기는 타입이 아니다..즐기고 싶어도 일단 안된다...ㅠ.ㅠ   그러다보니 형식적으로 얼굴을 내밀고, 형식적으로 안부를 묻고, 형식적으로 적당한 시간이  흐르면, 뜨듯하게 뎁혀진 자리를 뒤로 하고 집에 가는걸 기꺼워하며 귀가길에 오르는거다...

 

#그렇다고 이 모임에 나오는 친구들이 자랑질이나 해대는 삼척동자, 진상들이냐..그런건 아니다..그렇게 멋모르는 인간들.. 아니다.. 하나 하나 뜯어봐도 별로 나무랄게 없는 일반적인 인격을 지닌 사람들이다.. 다만 문제는 20여년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피차 개인적인 친밀한 관계를 맺기에는 공통점도 없고, 공유해야만 할 어떤 무엇도 없는데, 거기에 그닥 끌리는 점도 없다는 거다..나도 그들에게 관심이 없고 그들도 내게 관심이 없다..

 

#20여년전..수업을 같이 듣고 과제를 같이 하며 같이 시간을 보냈음에도 끈끈한 무언가를 쌓는데 실패했는데 서로의 생활이 많이 달라진 지금..그게 가능할리가 없지 않은가..

 

#왜 그 친구들과의 관계맺기에 성공하지 못했을까? 지금이야 생활이 달라졌으니 새삼스레 새로 관계를 맺는다는게 서로 많이 끌리거나, 필요하거나, 그래서 노력하거나 하지 않으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당시 적당한 관계를 맺어놓았더라면 그리고 유지해왔더라면 그 중 몇몇은 나의 절친중 하나였을 수도 있는데...절친으로 두고 싶을만큼 외형적으로는 충분히 매력있는 아이들인데...

 

#그렇게 겉돌기만 했던건 아니다..나랑 같이 모임에서 일찍 일어섰던 친구들과 따로 커피타임을 가졌다..그 친구들은 대학 시절   대부분의 수업을 같이 듣고, 거의 매일 얼굴을 보고, 같은 선배 들을 쫓아다니며 밥 사달라고 조르고, 우리 남편과 그 친구 무리    들과도 같이 어울렸던 실상 '절친'이 될수도 있는 친구들이었다. 졸업 후 20 여년 동안 일년에 한 번이든 2~3년에 한 번이든..얼굴보고  소식 물으며 살던 친구들이기도 하고..

 

#술도 잘 안마시고 노래도 못하고 그나마 나랑 제일 비슷하기도 하고 서로 가장 편안하기도 한 친구들이지만 왠일인지 그 긴 세월이 지나도 '절친'은 아직 아닌 친구들..

 

#언제나처럼 많은 이야기들을 했는데  이 친구들과의 대화를 보자면 서로 가식적인 것도 아니고, 숨기는 것도 아니지만 늘상 '여기까지~' 비슷한 느낌이 있다..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절대 넘어서지 않는 느낌..누구와 해도 할수 있는 이야기들을 친근함과 편안함이란 양념으로 살짝 버무려서 '우정'이란 포장안에 넣어놓은 듯한...서로의 가족도 알고 이리 저리 얽힌 추억들도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친구가 우리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물었다..'너넨 속내를 털어 놓을수 있는 친구가 있어?' 질문을 한 그 친구는 같은 종교를 가지고 20여년 같이 겪고 지내온 몇몇과 속내를 나눌만하다 하였고 다른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나는?   나는 당당히 '있어..몇몇...' 흠..나는 있다...다행이도..

 

#내가 내 대학 동기들에게 관심없는 이유의 핵심이 바로 이게 아닐까? 속내를 나누기까지 너무나 오랜 세월이 걸린다..어렵고 힘든일, 속상하고 부끄러운 일, 약점들과 자존심 다치는 수많은 기타 등등들...그것들을 혼자서 인내하며 참고 견딘다...다른 사람들에겐 늘 좋고 편안하고 반듯한 모습들만 보여준다..

 

#삼십년 전부터 이 친구들은 그런 느낌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묵묵하고 참을성있고 반듯하고 모범적이다..성실하고 근면하고 목표를 열심히 추구해가느라 좀 바빠서 쓸데없이 낭비할 시간도 별로 없다..일년에 한두번 밥 한끼 먹으면서 아무에게도 해가   안되는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 나누는 관계라면 가장 이상적..

 

#사실..이 친구들에겐 나도 똑같을거다..그래서 이 친구들도 내게 관심이 없다..우린 서로 서로 관심이 없다...

Posted by labosque :

첫 인상

2012. 7. 24. 18:52 from 기억한올

그곳은 별 특징없는 가게였어..

별 특징없는 상가의, 별 특징 없는 가게..

가게 라는 말이 더도 덜도 아니게 그저 딱 어울리는 그런 곳..

팬시한 장식도 인테리어도 없이 딱 동네 옷수선집 같은 그런 분위기였는데

하나 다르다면 유난히 좀 널직해서 시원스런 느낌이 있었지..

 

SH를 따라 가게에 들어설때 사람들 몇몇으로도 가게는 북적 거리고 부산스러웠어..

친구야 그곳이 익숙했겠지만 난 처음이니까 누가 주인인지 누가 손님인지 뭔지

도대체 이곳의 아줌마들은 어떤 관계인지 모르니까 그저 조용히 따라 들어섰을 뿐인데..

 

눈초리들이 느껴졌어...

나를 파악하기 위해서 살피는...

아니..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 원피스가 예쁘다고 '저런 것도 만들 수 있어요?'라고 한 여자가 입구에서 마치 금방 갈듯 나서다가

멈춰서서 말하면서 조금씩 정리가 되기 시작했어..

 

'만들수 있죠..뜯어보게 해주면...'

내 친구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주인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돌려 세워 원피스 뒤쪽의 레이블을 살폈어..

'명품은 본이 달라..이거 어디꺼예요?' '명품 아닌데요? 그냥 메이커이긴 한데..'

잠시의 수다가 이어지고 가게를 나서던 사람들이 갈길 가고 나자

가게는 잠시 한적해졌어..

친구와 선생님은 이런 저런 그들이 아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조신하게 걸려있는

핸드메이드 가방들과 옷들을 구경하며 풍경을 살폈어..

 

'청담동 며느리 스타일이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생님은 딱히 나에게 하는 말도 아닌 말들을 툭툭 던지며

나를 이야기 속에 끌어넣었어..

왜냐면 대답은 친구가 했거든..

 

이야기들은 그렇게 따갑게 이어졌어..

'그럼 친구도 같은 학교야?' '네..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예요..이 친구는 산디 전공..'

'상위 10% 네.. 얼굴도 이쁜것들이 공부도 잘해..'

친구와는 물론 허물없이 농담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이이겠지만

난 이런 상황이 조금씩 어색해지고 있었어..

초면에 어디까지 날 보여야 할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난 늘, 항상 무척 낯을 가리며 조심하는 편이거든..

 

이 사람이 나를 간보고 있네...싶은 생각이 들었어..

그렇다고 불쾌하진 않은게 뭐...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으니까..

나는 나대로 이 사람의 유형을 어딘가에 끼워 맞추면서 파악하기 놀이를 하면 되니까...

다만 처음 이 사람의 눈초리의 정체가 뭐였을까 궁금하긴 했어..

그냥 덤덤하고 무심한 첫 눈빛이 아니었거든..

약간의 경계, 약간의 반감, 약간의 뭔가.. 그런 느낌이었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나도 몇마디 거들 정도로 살짝 거리감을 좁히고..

친구와 선생님은 동대문 시장에 같이 나갈 계획들을 말하고 있었어..

그러다가 나를 보고 '친구도 내일 별일 없으면 같이 나오면 어때요?'라고 조용한 초대를 했어..

 

순간..'아..처음의 그 눈빛이 관심이었나보다...'싶었어...

관심...탐색...호감과 반감의 경계에서 약간은 호감쪽으로...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난 그 사람에게 인상을 남긴거 같아...

아니...사실은 그 사람이 나에게 인상을 남긴거겠지...

 

합리적 추론이란 말을 좋아하는데 예를 들어 셜록 홈즈처럼..

누구라도 잘 관찰하면 알수 있는 드러난 증거들을 수집하여 어떤 사람에 대해 합리적 추론을 하는거야..

관찰하고 사고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그 사소하고 일상적인 징후들이 그 사람에 대해 뭔가 말을 해주겠지..(more or less)

그 분은 직업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을 만날테고(아무래도 여자들..특히 주부들) 그러다보니 사람들에 대해 살피는 경향이나

딱 보면 안다라는 일종의 자신감도 있을테고..

누구를 처음 만나면 자기도 모르게 살피게 되고..또 점장이같이 툭툭 던져서 자신의 추론이 정말 정확한지 확인해보는걸

즐기고..흠...그런거 같아...

 

나는 사실,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이나 첫 인상을 안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노력해야 한다라는건 사실은 그런것이 있다라는 반증이거든..

난..그런게 있어..

그리고 역시나 그 선생님처럼..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그런말 듣는걸 좋아하기도 하고..

다만 티를 안내려 들거나, 무관심하거나, 굳이 믿으려 들지 않거나, 혹은 무심히 잊어버리는 것 뿐이지..

 

누군가를 그렇게 살피는 사람을 만난건 참 오랜만이야..

내가 마무리를 셜록 홈즈의 합리적 추론을 거론해가며 짓는건 그 사람의 눈초리의 정체가

호의적 관심이었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겠지?

어쨋거나...그 누군가 나를 살폈다는건 기분 나쁠일은 아닌거야..

그 사람이 만약 끝까지 반감을 고수했더라도...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