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꼬리'에 해당되는 글 65건

  1. 2018.06.06 버닝
  2. 2018.04.13 다시... 시작...<길 위에서>
  3. 2016.12.13 12월 13일
  4. 2016.08.04 죽을 사람들...
  5. 2016.07.27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6. 2016.03.02 윤일
  7. 2016.02.16 일기3
  8. 2016.02.14 일기 2
  9. 2016.01.03 새해 첫 잡상
  10. 2015.12.31 송구영신

버닝

2018. 6. 6. 14:36 from 생각꼬리

# 지나고 나서 드는 생각


생각해보니 영화는 철저하게 1인칭 시점이다. 종수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은 단 한 장면도 없다. 모든 장면 안에는 종수, 혹은 종수의 시선이 있다. 즉 모든 사건은 철저히 종수의 시점으로 재구성된다는  뜻.

우리는 종수가 선택한 혹은 선택적으로 기억한 것들만 보면서 역시나 다시 한번 우리의 기억에 의해 선택적으로 편집하여 받아들인다. 


이 부분에서 포크너.. 

영화 속에서 벤이 종수에게 묻는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고.

종수는 포크너를 좋아한다고 하고 벤은 다시 묻는다. 왜?

뭐라고 했더라... 종수는 아마도 나와 비슷해서? 뭐 이런 맥락의 말을 한다. (워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다..)

그 장면을 보며 '포크너의 소설에서 나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건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포크너의 소설은 단 한권 읽어보았다. [소리와 분노]

그 소설을 읽고 너무 좋다. 더 읽고 싶다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쉽게 다른 책에 대해 욕심을 내지 못했다. 

소리와 분노는 철저하게 의식의 흐름을 따랐음에도 그 파편적인 글쓰기때문에 쉽게 동일시 하기 힘들다.

서사없이 누군가의 내면의 분절적 소리 사이로 자신의 내면을 일치시키는 건 많은 상상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경험이 나를 그 장면에서 약간 멈칫하게 한 것 같다. 

포크너의 주인공들과 자신이 유사하게 느껴지는 건 어떤 경험일까?

내가 포크너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봐야할 필요가 절실해진다. 

그래서 벤도 포크너의 단편소설집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 물론, 포크너에 대해 아는척 하지만 실제로 읽어본적이 없는 벤의 허위적인 교양을 폭로하기 위한 장치일수도 있지만.. 적어도 종수에 대한 관심은 분명해 보인다.)


# 영화를 보고나서 든 생각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불을 켜주지 않는, 그래서 강제적으로라도 영화에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극장 아트나인..

불이 들어오고 나서 든 생각은 '뭐지?' 였다. 약간의 씁쓸함과 함께..

'칸이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네.'  여우는 포도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잠시 검색. 버닝= 분노라는 부분이 마음속으로 쏙 들어온다.


영화를 보는 나의 관점을 다시 보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으로는 영화를 쫓지만 머리속은 혼자 돌아가는 기계처럼 계속 돌고 있었다.

뭔가 이런 ... 어마어마한 영화를 만날 때 종종하는 짓이다. 

뭔가가 있을 거야. 뭔가를 나도 발견해야해. 그 의미를 나도 찾아야해..

그레이트 헝거가 되서 머릿속에서 의미모를 춤을 추고 있다. 


내 시선은 종수보다 한걸음 먼저가려고 애쓰고 있다. 

종수가 저렇게 뛰는 건 왜 그러는 걸까? 그의 마음엔 어떤 게 있는 걸까? 그가 혜미를 찾는 건 어떤 의미인걸까?

 메타포.. 그래 메타포라고 했어..이 안에 어떤 메타포들이 있는거야? 

처음 칼 장면이 나올 때 그게 복선이라고 생각했어. 어때 결국 맞았지? 

끝부분으로 치달릴수록 허망하다. 그래서.. 이게 뭔데? 이게 결국 어떤 의미인건데?

그레이트 헝거의 춤...


누군가의 해설이 내 궁금증을 풀어준건 아니다.

종수가 어떻든, 벤이 어떻든.. 하루키의 세상과 포크너의 세상이 어떻든...

서로 대치되는 세상이 어떻든...

내겐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마지막 장면 종수의 행동....분노...


그래. 분노였다.. 누가봐도 확연한 분노.

벤이 혜미를 죽였는지 아니었는지..

그 모든게 종수의 오해인지 상상인지 혹은 아예 종수의 창작인지...

그 방법이 옳은지 아닌지...

기-승-전-결이 도대체 있는건지 서사가 있는지 미스테리가 풀린건지...

뭐 그런것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분노가 있다...

분노... 표현되어진 분노...


그리고 종수가 되어 생각해보면 난 그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

난 종수와 함께 모욕당했고 종수와 함께 의혹을 품었으며 종수와 함께두려움을 느끼고 방어할 수 밖에 없었다..

난 그들을 질시하고 그들을 경멸하며 그들로 부터 소중한걸 지키고 싶고 그들에게 짓밟히고 싶지 않다..

난 종수가 되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그걸 보여주었다.. 그냥..

표현되어진 분노...


옳고 그름. 감정에 옳고 그름이 어디있어..

표현방식의 옳고 그름.... 그런걸 영화에서 따질 이유가 어디있어...


그냥 그렇다..

그게 현실이다...

감정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그 존재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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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보니... 이렇게 뭉텅 기억이 잘라지는 순간이 오는구나..

흔하디 흔한 일상이 아니라 그래도 어떤 특정한 순간인데 

내 머리 속 기억을 도무지 캘린더와 맞출 수가 없다..

모든 개인적인 것들은 주관적인 세계속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채 객관적인 세상과 만나지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마운트 샤스타-나파밸리

여행에 대한 기억은 있으되..배경이 되는 시간에 대한 기억이 없다..

도대체가 이천십...몇년이었나? 

이렇게 잊어먹어도 되나 싶다..


추측해보건데.. 2012년에 씽잉볼을 시작했었고 (그런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2014년에 아들과 시카고에서 코네티컷으로 이사하는 여행을 했고...

그렇다면.. 2013년쯤이라야 맞을 거 같은데... 

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어딘가 컴퓨터 안에 흩어져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찾아보는건데...

좀 귀찮다.. 나중에....


그래서 다시 끄적거려야할 분명한 이유를 하나 찾는다...

뒤죽박죽 된 기억들을 좀더 가지런히 정렬시키기 위해 기댈 날짜의 골격이 필요하다...

적어도 어느 해 어디로 여행을 갔었는지 정도는 기억했으면 좋겠다..


올해 (2018년)

난 벌써 세군데를 다녀왔다..


2월 인도 라자스탄(델리-우다이푸르-자이푸르-아그라)

3월 남도 봄꽃 구경(장흥-강진-고흥)

4월 일본 가족여행(요나고 돗토리)


언제 어디 갔었는지 정도는 짝을 맞추고 살았으면 좋겠다.. 진짜...


#

갑자기 샌프란시스코 여행의 기억에 대한 추적에 나서게 된 건 케루악의 <길 위에서>때문이다.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처음 들어본 게(엄밀히 말하면 '들은 게' 아니고 눈으로 '본 게') 

샌프란시스코 여행 책자였다.


가이드북에 '비트 문학의 산실인 어쩌구 저쩌구 지역'(노스 비치 지역의 시티 라이츠 서점)에 대한 정보가 흥미를 

끌었지만 소개되어 있는 작가들을 하나도 모른다는 점 때문에 굳이 찾아가지는 않았었다..

긴즈버그니 케루악이니.. 그런 이름들 그때 처음 들어본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면..

한 번쯤 읽어봐야지...

그때도 마음만 그렇게 먹었었다...


작년(2017년) 말쯤? 우연히 데인 드한이라는 배우의 얼굴을 보게되었다..

아.. 이런 얼굴이라면 몬스터의 주인공을 하면 딱일텐데...

만화를 영화화하며 주인공을 캐스팅하려는 오래 전 공상 습관이 발동했다..

필모그래피를 보다가 <Kill Your Darling>을 발견했고 

영화평 몇개를 찾아읽고 곧바로 영화도 보았다..


바로 그 세대... 비트 제너레이션 대표선수들의 영화였다..

그들이 아직 비트세대로 명명되어 지기 이전에 어떻게 그런 정신이 태동되는가 정도의...

간추려 말하자면 프롤로그나 프리퀄 정도?


흠.. 이렇게 비트문학 중심주의의 관점에서 말하는 건 한사람의 인생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진다...

사실 영화는 비트문학의 중심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비트문학과는 전혀 무관한 

한 사람의 인생스토리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누군가의 인생...


결과적으로 무명으로 남은 한 인간, 루시엔 카의 인생에 

결과적으로 유명해져버린 여러 인물들, 긴즈버그나 케루악, 버로스 등이 끼어든 것 뿐이다...


어쨋든 영화 속에는 후에 비트문학 그 자체가 되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

다시 한번 비트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나는 원래 시(긴즈버그)와는 별로 안 친하니..

그래.. 소설(케루악)은 읽을 수 있겠지?

그렇게 뭘 읽을지까지 정해두고 다시 밀쳐두고...


그리고 3월(2018) 독서모임..

선정된 도서는 <더 글라스 캐슬> 저넷 월스라는 여성 편집자의 유년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이다..

저넷의 부모에 대해 '도대체가 어떤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사는가.. 이런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가...'

를 최대한 이해하려고 들다가 비트 세대를 떠올렸다...

저넷의 부모들이 결혼한 날짜를 보니 얼추...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비로소...<길 위에서>를 주문했다...


#

...딘은 다른 사진도 꺼냈다. 이런 사진을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 부모들이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사진 안에 들어갈 만한 인생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자랑스럽게 인생의 보도를 걸어갔다고 생각하게 될까.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진짜 인생이, 진짜 밤이, 그 지옥이, 무의미한 악몽의 길이 거친 광기와 방탕으로 가득했단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의 내면은 끝도 시작도 없이 공허하다. 무지가 갖가지 슬픔을 빚어낸다. “안녕, 안녕.” 딘은 길게 뻗은 붉은 어스름 속을 걸어갔다. 기관차가 연기를 뿜으며 그의 위에서 흔들렸다. 그의 그림자가 그를 쫓아가면서 그의 걸음을, 생각을, 존재를 흉내 냈다. 그는 뒤돌아서서 수줍은 듯이 손을 흔들었다. 제동수의 발차 신호를 보내고는 펄쩍 펄쩍 뛰면서 뭐라고 외쳤지만 들리지 않았다. 원을 그리며 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점 구름다리의 콘크리트 모퉁이로 다가갔다. 마지막 신호를 보냈다. 나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갑자기 딘이 자신의 인생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나의 날들이 무미해진 것을 바라보았다. 이 앞에도 또 끔찍하게 긴 길이 있지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도, 누구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다. 버려진 누더기처럼 늙어가는 것밖에 알지 못한다. 그럴 때 나는 딘 모리아티를 생각한다. 끝내 찾아내지 못했던 아버지, 늙은 딘 모리아티도 생각하면서, 딘 모리아티를 생각한다...

 

#

<길 위에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많은 케루악 연구자들이 인용하는 "로마 꽃불"의 구절일 것이다.. 나도 동의한다..

딘 모리아티(닐 캐시디)가 될 수 없다면 샐 파라다이스(잭 케루악)가 되고 싶을 테니까...


...나는 내 관심을 끄는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처럼 휘청거리며 그들을 쫓았다. 왜냐하면 내게는 오로지 미친 사람, 즉 미친듯이 살고 미친듯이 말하고 미친듯이 구원받으려 하고 뭐든지 욕망하고 절대 하품이나 진부한 말을 하지 않으며......다만 멋진 로마 꽃불이 솟아올라 하늘의 별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그런 사람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

<더 글라스 캐슬>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길 위에서>를 읽으며 난 이미 저 위의 인용문.. 

즉 사진 속에 들어간 나이라는 걸 깨닫는다...

로마 꽃불을 쫓기에는 눈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벌써 숨이 가쁘다...


나는 이미 사진 속에 들어가 있는데...

평온하게 굳어있는 한 장의 사진... 

그 이면의 반전이 없는 인생..

그냥 보이는 그대로의 삶이었다는게 

왠지 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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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2016. 12. 13. 13:12 from 생각꼬리

#

많이도 살았는데 이 단조로움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미움..

엄마를 향한 미움..

남의 엄마를 향한 미움...


모성을 향한 미움...


아무리 보기 좋게 포장을 해봐도 결코 감싸안아지지 않는 

생생한 미움...


이 어처구니 없는 미움...




#

바쁜 척하고 살아봐도 찰나의 순간은 피할 수 없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눈이 시뻘개질 때까지 TV를 봤네..


..만사 걱정이 없는데


왜 자막이 올라가는 


그 짧디 짧은 시간 동안에는


하물며 광고에서 광고로 넘어가는


그 없는 거나 


다를바 없는 시간 동안에는.....


그러게...

일년이나 바쁜척하고 책상 위의 잡동사니 산더미처럼 죄 쌓아두고

외면한채로 잘도 살아오고..


이제 겨우 하루 맘편히 푹 쉬어보자고

채널 돌리는 시간처럼 마음먹고나니...


이렇게...


그때 그노래처럼...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장기하... 노래 정말 좋구나...



#

고치는 것은 과거인가? 미래인가?


어릴 때는 쉬웠던 것 같다.


앞으로 이렇게 하면 돼..


앞으로 이러면 안돼..


앞으로.. 앞으로...


이미 많이 앞에 온 지금은 


그닥 앞으로 어떻게 바뀔거라는 기대가 없어진 지금은...


과거로 돌아가서 바로잡으려 한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지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과거를 고칠 수 있나?


이러다 전생도 바로잡겠다...

Posted by labosque :

죽을 사람들...

2016. 8. 4. 17:11 from 생각꼬리

1.

'어르신.  종양 있으신 건 알고 계시죠?'

'어르신. 이게 별로 좋지 않아요. 악성이세요.'

'어르신, 암이세요.'


여러번 바꿔 말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자 의사는 부드러우나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네에에?'


그제서야 알아들은 할아버지는 여태까지 주고 받은 이야기가 무색하게 화들짝 놀랐다. 

말에도 무게가 있다면...... 마치 철거를 할 때 쓰는 길다란 쇠줄에 달린 쇠공같은 것이, 뒤로 한껏 당겨졌다가 

놓아진 것 같은 속도와 무게로 할아버지를 한대 후려친 것 같았다.

실제로 그 말을  듣는 순간 보이지 않는 말의 쇠공에 맞은 듯 몸이 휘청 하는게 보였다.



2.

하필 그 순간일게 뭐람...

지난주 일수도 있었고 다음주 일수도 있었다..

아니.. 방학 동안 차일 피일 미루었으면 나는 그저 개학하고 난 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소식을 들었을 터였다..


기름을 넣고 세차장을 통과하는 차 안에서 K샘께 카톡을 보냈다.

'샘~. 이번 일요일이나 다음 일요일에 메쎄나 폴리스에서 차나 한잔 해요~'

'샘..저 내일 입원해요..암이래요..'


뒤이어진 통화에서 K샘은 위암 4기이고 이미 손쓸수 없이 퍼졌고 의사가 2개월~6개월 이라고 했다고...

그 소식을 오늘 아침 들었다고.. 신장이 막혀서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데 정리할게 있어서 내일 입원하기로 했다고...


'샘.. 샘이 오늘 연락안했으면 통화안됐을텐데...'

'어떡해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말도 안돼요.. '

여름 감기에 걸려 잔뜩  쉰 목소리로  엉엉 울고 있는 나한테 담담하게 응대하는 K샘...


'나 너무 착하게 살았는데... 남한테 해꼬지 한적도 없는데...지난 학기 정말 열심히 했는데..

앞으로 좋은 일도 정말 많이 하고 싶은데... 샘도 너무 착하게 살지 마요.. 나 너무 착하게..참고 살아서 병 걸린거 같아..'


'너무 담담하게 말하지 마요' 고함치듯 말하는 나에게

'아침에 소식듣고 너무 많이 울었어요.. 이제 온 몸에 수분이 다 빠져 나간거 같아요..'


왜 하필...

이 순간... 되도 않는 오지랍으로..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될 인사를 챙기느라고...

왜...


이 사람과의 무슨 인연인건가...



Posted by labosque :

아이가 와 있는 두 주가 친구 S의 방문기간과 많이 겹쳤다..

아이가 오기 며칠전에 귀국한 S와 거의 오자마자 얼굴을 보고 두주간 완전 방치..

갑작스러운 시아버지의 병환이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지만 

그 이유가 카톡도 전화도 까맣게 잊게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꼭 필요한 볼일을 제외하곤 거의...

집에서 아이와 함께 뒹굴었다..

아이도 같이 시간을 보낼만한 친구들이 이제 더 이상 한국에 남아있지 않다..

밀린 티비프로그램을 보며 집에서 뒹구는 걸 제일 좋아라한다..


같이 거실에 누워 뒹굴면서 

나는 이미 다 본 프로그램을 다 다시 보면서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아이가 다시 돌아갈 날을 생각하면서..


생각한다.. 

아이가 돌아가서 다행이라고...

아이가 돌아가지 않으면 아마도..

나로 살아가기 참 힘들거 같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나는 아이를 참 좋아하긴 하는데..

참 이상한 엄마라고..

다른 엄마들처럼 뭘 해먹이느라 애쓰지 않는다..

집밥이 그립다소리도 않하긴 하지만

그렇게 짐작하고 엄마 밥 한끼라도 먹이려는 다른 엄마들처럼

부엌에서 동동거리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거의 밥을 안해먹였다..

그냥 간단히 있는 반찬 차려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배달음식 시켜먹고

나가서 맛있는 것 사 먹이고...


내가 음식하고 요리하는 걸 그닥 좋아라하지 않긴하지만...

그래도 에미의 모성이 있다면 난 왜 이런걸까..

생각을 하다가...


그 생각이 났다..

난 떨어져 있기 싫은 거다...

같이 있고 싶다...

아이가 티비보는 동안 부엌에 가서 혼자 있기 싫다..

그냥 시켜먹고 아이랑 붙어있고 싶다...

뭐 이런 말도 안되는 핑계...


어쨋거나 그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갑자기 20여년전 쯤 본 영화 <파리 텍사스>가 생각났다..

거기에서 남편이 와이프를 너무 사랑해서 일도 안나가고 하루종일 붙어있으려는 집착증 같은걸 보였었는데...

하는 뭐 아주 쓸데없는 생각...


나도 아이에 대해서 뭐 그렇다고 해두자..

거실바닥에 나란히 누워

티비보다가 아이얼굴 보다가 하는 순간이

더할나위없이 행복했으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난.. 

같이 있어주는 엄마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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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

2016. 3. 2. 00:25 from 생각꼬리

# 실은 윤일에는 뭐래도 한 줄 쓰고 싶었더랬다..

어쨋거나 다른 날들보다 4배 귀한 날인데..

마음은 그랬다..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간 하루였지만...


# 실은 일기를 쓰고 싶은 날들이 꽤나 많이 휙휙 지나긴 했다.. 

그 사이에...

한 일주일도 안되는 기간동안 꽤 많은 사건과 사고들..

여러가지 감정들과 생각들...


또 막상 붙잡으려니 그래서 뭐하랴 싶기도 했던...

그렇게 또 이러저러한 일들이 사라지는데..

지나고보면 또 뭐 별것도 아니다..

크게 보면 또 그게 일상..

중요할게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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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3

2016. 2. 16. 13:59 from 생각꼬리

# 아침에 눈 뜨기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이 제일 우울하다.. 침대 속에 오래 누워있으면 누워있을수록 더 우울하다..

그래서 바쁠 때는 우울함을 모르고 여유가 있을 때 더 가라앉는다...

비몽 사몽 간에 생각해보니 죽음에서 일어나는 일이 쉬울리가 없다..

하루의 잠을 한번의 작은 죽음에 비유한 글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우리 몸 상태가 일종의 작은 죽음과 같은 상태에 빠졌다가 나오는 거라고..(물론 과장이 있겠지만..)

부활이 쉬울리 없다..

한번 더 태어나야 하는데서 오는 걱정과 우울이 없으면 이상한 걸수도 있다..




# 아사독과 하디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 <테스>를 읽었고 하디는 그저 그런 작가였다..

테스를 이해하기도 싫었고 엔젤 클레어는 더 더욱...

어린 내 눈엔 그저 찌질남이었으니까...


최근 아사독때문에 <이름없는 주드>를 읽었고 하디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

최근 읽은 소설 중 손에 꼽을 만 하다..


영화 <테스>는 기억에 남아있는데 나타샤 킨스키가 워낙 인상적으로 예쁘기도 했고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표현이 출중한 몇몇 장면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테스가 그 남자(알렉)를 살해하는 장면.. 

이층에서 칼에 찔려서 엎어져 있는 남자의 시신으로부터 나오는 피가 바닥에 고이다가

점차 일층의 천정에 얼룩을 그리면서 점점 더 얼룩이 커지고...(아래 층엔 노파가 살았던거 같다.. )


서둘러 도망쳐간 테스와 엔젤 클레어가 도달했던 스톤 헨지와 저녁 노을...

지쳐 있던 테스와 엔젤 클레어의 아득한 심정이 순간 크게 다가왔던 기억..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듯한 막막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장면은 엔젤 클레어가 테스를 연모하며 물이 불어난 개울을 안아서 건네주는 장면..

테스를 건네주기 위해 같이 일하는 다른 여자들을 다 안아서 건네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던 순정남...

(뭐.. 그래서 배신감이 더 컸지만...찌질한 놈...)


여기엔 같이 딸려오는 곁다리 기억도 하나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친구들과 같이 당일치기 낚시여행을 갔었는데

비슷한 상황에서 발을 적시지 않고 싶었던 여자 아이들을 병수가 발을 벗고 개울에 들어가서 한명씩 업어서 건네 주었다..

그때 그 상황이 영화 <테스>에 나왔던 장면과 유사하다는 건 그때도 이미 했었던 생각이고.. (속으로만...)


영화 <테스>가 81년 10월 개봉이라니까 나 고1때...

영화 보기 전 소설을 읽은 기억이 확실하니까.. 소설은 고등학교 초반이나 중학교 때 읽었을테고...

낚시 여행은 84년 봄 (아마도 4월쯤?)

기억의 퍼즐이 이렇게 순차적으로 맞춰지다니...(상쾌하다...)




# 위로의 타이밍 혹은 진정성


우정의 효용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과연 우정은 왜 필요한 것인가?'

언뜻 떠오르는 생각은 상투적인 표현대로 즐거움도 슬픔도 (혹은 어려움도) 같이 나누기 위해서...

(같이 나누는 것은 즐거움을 배가 시키고 어려움을 감소 시킨다..라고 한다...)

또 우정이란 타인들이 서로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감격스럽게 느꼈던 순간의 기억도 떠오르고..)


소소하게는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을 서로 편하게 나누며 즐거움과 위로의 원천이 되는 인간관계를 제공하기 때문에..

결국 같은 말의 반복이구나..

지금 내 머리 속에선 더 이상은 안나온다...


어쨋거나...

친구들에게 일상적인 여러가지 어려움을 호소하고 공감과 지지와 위로와 조언을 받는 것은 친교의 아주 기본적인 일중 하나인데..

때로는 그 일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때로는 그렇지 않다..


왜일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진정성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저 단순한 타이밍의 문제 아닌가?

주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어떤 게 또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진심은 통한다.' 따위의 단선적인 믿음에 매달릴만큼 순진하지도 독선적이지도 않아서...

진심도 안 통할 수도 있고, 상투적인 말에도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며, 내 진심과 네 진심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같은 대상에 대한 같은 태도, 같은 내용도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다 다르게 작동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코드가 일치하는 순간.. 타이밍의 문제가 아닐까?


이렇게 또, 하나의 순간이 우리의 의지를 배반하고 통제불가능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듯 하다가...



지난 번 M에게 받았던 조언이 내 안의 무엇인가를 풀어버렸다...

M은 나에게 유별난 공감도 지지도 조언도 표현하지 않고 그냥 내 상대의 입장에 자신을 투영하여 '자신이 그 상황일때

어떠했다.'라는 감정적 입장만을 전달해주었는데...

사실.. 이런 일은 흔한 일이라.. 나도 혹은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일이고 M이 유별나게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비슷한 상황,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중에 유독 M의 이야기만 내 마음 속의 무언가를 치고.. 풀어버렸을까?

그건 역시 그냥 타이밍의 문제인건가?


아니면 역시... 유달리 진지한 M의 태도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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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2

2016. 2. 14. 01:23 from 생각꼬리

# 로쟈의 저공비행에서...


"그래서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 흐름을 거스르는 보트들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리면서도."

익사하지 않기 위해 계속 헤엄을 친다는 것은 비단 이 작품에서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읽을 수 있는 피츠제럴드 자신의 인생관이었다. 물론 그러다 언젠가는 기운이 빠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날'이 올 것이다. 

"개츠비가 수영장에서 죽은 바로 그날처럼 우리가 선착장 끄트머리에 도달하고 물에 빠져 죽는 그날이."



# 코스모스에서...


'퀘이사의 에너지원이 무엇이든 간에 적어도 한가지는 확실하다. 즉 전대미문의 거대한 파괴가 퀘이사 내부에서 진행 중이라는 사실 말이다.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분출되는 퀘이사 하나하나에서 수백만 개에 이르는 세상들이 철저하게 파괴되고 있을 것이다. 파괴되는 세상 중에는 생물과 그 파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생물이 살고 있는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이 파괴되는 순간에도 에너지의 분출과 대 혼란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고민할 것이다. 고통 또한 인식 기능이 감내해야 할 의무가 아닌가. 우리는 외계 은하들을 연구함으로써 우주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벌어지는 격렬한 혼돈의 폭력 역시 우주의 한 속성이다. 우주는 자연과 생명의 어머니인 동시에 은하와 별과 문명을 멸망시키는 파괴자이다. 우주는 반드시 자비롭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적의를 품지도 않는다. 우주 앞에서 우리의 생명, 인생, 문명, 역사는 그저 보잘것 없는 존재일 뿐이다.'



전 우주적 입장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숙명 앞에 얼마나 작은 존재이며 

익사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버둥거려야 하는가...

하지만 하루 살이에게는 하루도 충분히 긴 일생일지도 모른다-라고 한다면 

우리의 그 긴 버둥거림에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감사라는 것도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긴하다..

(우주가 저토록 무심한데 우리의 감사의 대상이 도대체 누구 혹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를 '위한'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는게 얼마나 스스로를 중요하게 위치시키는 생각인건지..말이다.. )


어쨋거나 버둥거림이 즐겁지 아니한가?




# 아주 작은 일상...


우주의 일은 우주에게 맡기고 나는 열심히 버둥거린다..

가령 이런 작고 작은 문제들의 바다 속에서 (익사할 위험이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별개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성격이나 감정의, 동기나 상태나 과정 등을 이해할 수 있어도 

여전히 내 '호오'의 문제는 남는다..

왜 일까?

그건 결국 내 문제일까?

나는 왜 이렇게 형성된걸까?

난 결국 심술궂은 할머니로 늙어갈까?


무위의 버둥거림 속에서 느끼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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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잡상

2016. 1. 3. 22:47 from 생각꼬리

<왜 책을 읽는가?>


재작년인가? 샤를 단치의 <왜 책을 읽는가>를 읽었다.. 답으로 삼을 만한 많은 공감 가는 구절들에 밑줄도 그었었다.. 지금은 하나도 기억안나지만.. 난 책 읽기를 좋아하면서도 그게 꽤나 도피적이라고 생각했고 도대체 내가 왜 책을 읽는지 때로 궁금했었다... 더 정확하게는 왜 그렇게나 자주 책 속으로 도망가고 싶어하는지... 책읽기에는 종종 죄책감이 따라오기도 했었다..책을 읽는 것은 내게는 그것으로 뭔가를 생산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온전히, 아주, 매우, 철저히, 소비적인 일로만 여겨졌으니까...


재작년, 작년..꽤 많은 책을 읽었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독서에 집중한 것은 꽤 오랜만의 일이다.. 아니 이렇게 작심하고 책을 읽어댄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그리고 한가지 답은 스스로 얻었다.. 나는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한...어쩌면 단치의 책의 한 챕터에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어쩌면 책 귀를 접어놓거나 줄을 잔뜩 그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쨋거나 그런 가능성들을 모두 열어둔채 스스로 찾았다고 여겨지는 답은 세상에 대한 내 태도를 확고히 하고 싶어서 라는 거다..

가치관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겠지..내가 책으로 부터 배우는 것은 그것들이다.. 세상에 대한 나의 태도를 구축하는 일.. 그것은 단순히 지식을 얻거나 좋은 구절들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인용하는 것들과는 조금 다르다.. 막연하고 주관적인 느낌들을 통해서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막연하던 느낌과 생각들을 구체화하고 다듬어 세상에 반응하는 방식.. 책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 알고.. 결국 책이 나를 만든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새해 첫 독서는 아사독 주제 도서이다...이번 달 강의를 들을 예정인... 사실 별 재미는 없다.. 책의 주제나 내용과 상관없는 감상 하나는 사람들이 서로 이렇게 많이 소통하며 살기 시작한 건 의외로 얼마되지 않았다라는 거.. 등장 인물들의 사랑과 구애의 과정이 하도 황당해서 (뭐 서로 한 번 마주치거나 얼굴만 멀리서 보고 사랑에 빠지는 형국이라..)내가 알고 기억하고 있는 비슷한 시대, 배경의 소설들을 머리속에 떠올리다 보니 지난 시대에는 가족 외에는 그다지 사교가 없었을 법도 하고... 가족 외의 사람들과의 교제가 꽤나 제한적이기도 했겠다 싶기도 하고... 가족들 조차도 뭘 그리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살았겠나 싶기도 한게...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소통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 생각해보니 유사 이래 최고로 소통수단이 발달한 시대이기는 하다.. 근데 왜 그렇게 다들 더...더....더...외로워 하는 건지... 왜 그렇게 소통하라고 난리인건지.. 마치 여태 안그러다가 갑자기 소통이 안되는 불통과 단절의 시대에 살고 있기라도 한것처럼... 결국 외로움의 문제는 소통의 문제와는 별개일 수도 있다.. 과거의 사람들은 물리적 소통 자체가 어려웠음을 잠깐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데.. 그들은 안 외로웠나? 당연히 외로웠겠지만 당연하다 여기니 불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우리 시대의 외로움의 문제는 아무도 그 외로움을 당연하다 여기지 않는 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소울 메이트 따위가 있을 리가 없잖아..외로움이 당연하다.' 받아들이면 견디는 법을 배울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애시당초 외로움의 문제라는 걸 아무도 생각조차 안한다면... 그 감정에 이름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그런 감정이 있는 줄도 몰랐을텐데..

타인에 대해 기대도 하지 않았을텐데...이름이 붙은게 문제인건가? 사람들은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법을 좀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왜 여행을 하는가?>


시사인에서 짧은 칼럼을 읽었는데 위와 같은 제목이었다.. 사람들이 원하는 여행의 방식은 그 사람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에 따라 각기 다르니 우선 자신의 유형을 파악하고 자신에게 맞는 여행 방식을 찾으라는 내용.. 나는 약간 외향적에 개방적인 쪽의 유형이라고 짐작되는데 뭐... 잘 모르겠다.. 역시나 여행을 한다면.. (뭐 여행은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으나..) 난 왜 여행을 할까? 결국은 이것도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와 관련이 있는 문제...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매사에 정치가 아닌일이 없다더니 매사에 정체성과 연관되지 않은 이야기가 없다.. 그러게... 평생 그걸 찾아가는 게 태어나서 해야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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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2015. 12. 31. 18:22 from 생각꼬리

2015년은 내게 날씨로 기억될 거 같다..

유달리 가물었던 봄날... 캘리포니아 날씨 같았던 파란 하늘과 

고진한 선생님 장례식장이 있는 인천으로 가는 길에 들러서 간 윤중로 흐드러진 벚꽃 길..


습기 하나 없던 긴 긴 가뭄 끝에 태풍을 동반한 나흘 간의 단비

빈소를 강남 성모 병원에 마련하여 언니와 엄마는 영구차로 출발하고

나는 간병인 아주머니를 모셔다 드리느라고 들렀던 성남 어느 골목..

해 저문 가로등 불빛 아래 철사줄 같이 쏟아지던 여름 비..


발인 날 아침, 언제 폭우가 몰아쳤나 싶게 뚝 그쳐버린 비..

비 싫어하시는 아버지 한 방울도 안맞으시게..맑게 개어버린 날씨..

아버지 묘소에 갈때면 오던 비도 그치고 갑자기 쨍하니 빛나던 햋빛..


길지도 덥지도 않았던 여름과 길었던 가을...

따듯함이 끝나지 않을 듯 했던 가을과 고대 구로 병원...


소각장의 재처럼 풀풀 날리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첫눈..

대신 기억하고 싶은12월 3일의  설경..


뭐 대략, 그랬다..

날씨는 참... (더할나위없이) 순했다..




2015. 12. 3







#

내년에 어쨋거나 신분이 바뀐다.. 

이제 앞으로 한동안은 혹시 어디 직업이라도 쓸라치면 학생이라고 써도 될 듯하다..

여태 학생이 아닌적은 별로 없었으나 이번엔 정식으로 공인된 학생..

흠...

누군가 젊은 친구의 한자리를 차지했으니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조금 새삼스럽게...

설레기도 한다...


그리하여..

아마도 내년엔 책 읽기를 놓아야 할 듯...

우선 순위 아랫번호로 당분간 밀어낼 수 밖에...

책읽기 목표는 한달에 두권 이상 읽지 않기...

전공관련 읽기도 바쁠 듯...

개학 전까지만 실컷 놀자..


진짜 뭔가 새로운 새해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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