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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8.04.13 다시... 시작...<길 위에서>
  3. 2017.01.22 작은 말..
  4. 2017.01.21 한가한 오후..
  5. 2017.01.07 또 꿈이야기
  6. 2016.12.27 꿈이야기.. 두개...
  7. 2016.12.13 12월 13일
  8. 2016.08.04 채식주의자
  9. 2016.08.04 죽을 사람들...
  10. 2016.07.27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버닝

2018. 6. 6. 14:36 from 생각꼬리

# 지나고 나서 드는 생각


생각해보니 영화는 철저하게 1인칭 시점이다. 종수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은 단 한 장면도 없다. 모든 장면 안에는 종수, 혹은 종수의 시선이 있다. 즉 모든 사건은 철저히 종수의 시점으로 재구성된다는  뜻.

우리는 종수가 선택한 혹은 선택적으로 기억한 것들만 보면서 역시나 다시 한번 우리의 기억에 의해 선택적으로 편집하여 받아들인다. 


이 부분에서 포크너.. 

영화 속에서 벤이 종수에게 묻는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고.

종수는 포크너를 좋아한다고 하고 벤은 다시 묻는다. 왜?

뭐라고 했더라... 종수는 아마도 나와 비슷해서? 뭐 이런 맥락의 말을 한다. (워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다..)

그 장면을 보며 '포크너의 소설에서 나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건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포크너의 소설은 단 한권 읽어보았다. [소리와 분노]

그 소설을 읽고 너무 좋다. 더 읽고 싶다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쉽게 다른 책에 대해 욕심을 내지 못했다. 

소리와 분노는 철저하게 의식의 흐름을 따랐음에도 그 파편적인 글쓰기때문에 쉽게 동일시 하기 힘들다.

서사없이 누군가의 내면의 분절적 소리 사이로 자신의 내면을 일치시키는 건 많은 상상이 필요하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경험이 나를 그 장면에서 약간 멈칫하게 한 것 같다. 

포크너의 주인공들과 자신이 유사하게 느껴지는 건 어떤 경험일까?

내가 포크너의 다른 소설들을 읽어봐야할 필요가 절실해진다. 

그래서 벤도 포크너의 단편소설집을 읽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 물론, 포크너에 대해 아는척 하지만 실제로 읽어본적이 없는 벤의 허위적인 교양을 폭로하기 위한 장치일수도 있지만.. 적어도 종수에 대한 관심은 분명해 보인다.)


# 영화를 보고나서 든 생각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도록 불을 켜주지 않는, 그래서 강제적으로라도 영화에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극장 아트나인..

불이 들어오고 나서 든 생각은 '뭐지?' 였다. 약간의 씁쓸함과 함께..

'칸이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네.'  여우는 포도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잠시 검색. 버닝= 분노라는 부분이 마음속으로 쏙 들어온다.


영화를 보는 나의 관점을 다시 보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으로는 영화를 쫓지만 머리속은 혼자 돌아가는 기계처럼 계속 돌고 있었다.

뭔가 이런 ... 어마어마한 영화를 만날 때 종종하는 짓이다. 

뭔가가 있을 거야. 뭔가를 나도 발견해야해. 그 의미를 나도 찾아야해..

그레이트 헝거가 되서 머릿속에서 의미모를 춤을 추고 있다. 


내 시선은 종수보다 한걸음 먼저가려고 애쓰고 있다. 

종수가 저렇게 뛰는 건 왜 그러는 걸까? 그의 마음엔 어떤 게 있는 걸까? 그가 혜미를 찾는 건 어떤 의미인걸까?

 메타포.. 그래 메타포라고 했어..이 안에 어떤 메타포들이 있는거야? 

처음 칼 장면이 나올 때 그게 복선이라고 생각했어. 어때 결국 맞았지? 

끝부분으로 치달릴수록 허망하다. 그래서.. 이게 뭔데? 이게 결국 어떤 의미인건데?

그레이트 헝거의 춤...


누군가의 해설이 내 궁금증을 풀어준건 아니다.

종수가 어떻든, 벤이 어떻든.. 하루키의 세상과 포크너의 세상이 어떻든...

서로 대치되는 세상이 어떻든...

내겐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마지막 장면 종수의 행동....분노...


그래. 분노였다.. 누가봐도 확연한 분노.

벤이 혜미를 죽였는지 아니었는지..

그 모든게 종수의 오해인지 상상인지 혹은 아예 종수의 창작인지...

그 방법이 옳은지 아닌지...

기-승-전-결이 도대체 있는건지 서사가 있는지 미스테리가 풀린건지...

뭐 그런것들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분노가 있다...

분노... 표현되어진 분노...


그리고 종수가 되어 생각해보면 난 그 분노를 이해할 수 있다...

난 종수와 함께 모욕당했고 종수와 함께 의혹을 품었으며 종수와 함께두려움을 느끼고 방어할 수 밖에 없었다..

난 그들을 질시하고 그들을 경멸하며 그들로 부터 소중한걸 지키고 싶고 그들에게 짓밟히고 싶지 않다..

난 종수가 되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그걸 보여주었다.. 그냥..

표현되어진 분노...


옳고 그름. 감정에 옳고 그름이 어디있어..

표현방식의 옳고 그름.... 그런걸 영화에서 따질 이유가 어디있어...


그냥 그렇다..

그게 현실이다...

감정에는 이유가 없다..

그냥 그 존재만 있을 뿐이다...


Posted by labosque :

#

살다보니... 이렇게 뭉텅 기억이 잘라지는 순간이 오는구나..

흔하디 흔한 일상이 아니라 그래도 어떤 특정한 순간인데 

내 머리 속 기억을 도무지 캘린더와 맞출 수가 없다..

모든 개인적인 것들은 주관적인 세계속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채 객관적인 세상과 만나지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마운트 샤스타-나파밸리

여행에 대한 기억은 있으되..배경이 되는 시간에 대한 기억이 없다..

도대체가 이천십...몇년이었나? 

이렇게 잊어먹어도 되나 싶다..


추측해보건데.. 2012년에 씽잉볼을 시작했었고 (그런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2014년에 아들과 시카고에서 코네티컷으로 이사하는 여행을 했고...

그렇다면.. 2013년쯤이라야 맞을 거 같은데... 

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어딘가 컴퓨터 안에 흩어져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찾아보는건데...

좀 귀찮다.. 나중에....


그래서 다시 끄적거려야할 분명한 이유를 하나 찾는다...

뒤죽박죽 된 기억들을 좀더 가지런히 정렬시키기 위해 기댈 날짜의 골격이 필요하다...

적어도 어느 해 어디로 여행을 갔었는지 정도는 기억했으면 좋겠다..


올해 (2018년)

난 벌써 세군데를 다녀왔다..


2월 인도 라자스탄(델리-우다이푸르-자이푸르-아그라)

3월 남도 봄꽃 구경(장흥-강진-고흥)

4월 일본 가족여행(요나고 돗토리)


언제 어디 갔었는지 정도는 짝을 맞추고 살았으면 좋겠다.. 진짜...


#

갑자기 샌프란시스코 여행의 기억에 대한 추적에 나서게 된 건 케루악의 <길 위에서>때문이다.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처음 들어본 게(엄밀히 말하면 '들은 게' 아니고 눈으로 '본 게') 

샌프란시스코 여행 책자였다.


가이드북에 '비트 문학의 산실인 어쩌구 저쩌구 지역'(노스 비치 지역의 시티 라이츠 서점)에 대한 정보가 흥미를 

끌었지만 소개되어 있는 작가들을 하나도 모른다는 점 때문에 굳이 찾아가지는 않았었다..

긴즈버그니 케루악이니.. 그런 이름들 그때 처음 들어본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면..

한 번쯤 읽어봐야지...

그때도 마음만 그렇게 먹었었다...


작년(2017년) 말쯤? 우연히 데인 드한이라는 배우의 얼굴을 보게되었다..

아.. 이런 얼굴이라면 몬스터의 주인공을 하면 딱일텐데...

만화를 영화화하며 주인공을 캐스팅하려는 오래 전 공상 습관이 발동했다..

필모그래피를 보다가 <Kill Your Darling>을 발견했고 

영화평 몇개를 찾아읽고 곧바로 영화도 보았다..


바로 그 세대... 비트 제너레이션 대표선수들의 영화였다..

그들이 아직 비트세대로 명명되어 지기 이전에 어떻게 그런 정신이 태동되는가 정도의...

간추려 말하자면 프롤로그나 프리퀄 정도?


흠.. 이렇게 비트문학 중심주의의 관점에서 말하는 건 한사람의 인생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진다...

사실 영화는 비트문학의 중심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비트문학과는 전혀 무관한 

한 사람의 인생스토리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누군가의 인생...


결과적으로 무명으로 남은 한 인간, 루시엔 카의 인생에 

결과적으로 유명해져버린 여러 인물들, 긴즈버그나 케루악, 버로스 등이 끼어든 것 뿐이다...


어쨋든 영화 속에는 후에 비트문학 그 자체가 되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

다시 한번 비트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나는 원래 시(긴즈버그)와는 별로 안 친하니..

그래.. 소설(케루악)은 읽을 수 있겠지?

그렇게 뭘 읽을지까지 정해두고 다시 밀쳐두고...


그리고 3월(2018) 독서모임..

선정된 도서는 <더 글라스 캐슬> 저넷 월스라는 여성 편집자의 유년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이다..

저넷의 부모에 대해 '도대체가 어떤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사는가.. 이런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가...'

를 최대한 이해하려고 들다가 비트 세대를 떠올렸다...

저넷의 부모들이 결혼한 날짜를 보니 얼추...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비로소...<길 위에서>를 주문했다...


#

...딘은 다른 사진도 꺼냈다. 이런 사진을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 부모들이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사진 안에 들어갈 만한 인생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자랑스럽게 인생의 보도를 걸어갔다고 생각하게 될까.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진짜 인생이, 진짜 밤이, 그 지옥이, 무의미한 악몽의 길이 거친 광기와 방탕으로 가득했단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의 내면은 끝도 시작도 없이 공허하다. 무지가 갖가지 슬픔을 빚어낸다. “안녕, 안녕.” 딘은 길게 뻗은 붉은 어스름 속을 걸어갔다. 기관차가 연기를 뿜으며 그의 위에서 흔들렸다. 그의 그림자가 그를 쫓아가면서 그의 걸음을, 생각을, 존재를 흉내 냈다. 그는 뒤돌아서서 수줍은 듯이 손을 흔들었다. 제동수의 발차 신호를 보내고는 펄쩍 펄쩍 뛰면서 뭐라고 외쳤지만 들리지 않았다. 원을 그리며 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점 구름다리의 콘크리트 모퉁이로 다가갔다. 마지막 신호를 보냈다. 나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갑자기 딘이 자신의 인생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나의 날들이 무미해진 것을 바라보았다. 이 앞에도 또 끔찍하게 긴 길이 있지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도, 누구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다. 버려진 누더기처럼 늙어가는 것밖에 알지 못한다. 그럴 때 나는 딘 모리아티를 생각한다. 끝내 찾아내지 못했던 아버지, 늙은 딘 모리아티도 생각하면서, 딘 모리아티를 생각한다...

 

#

<길 위에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많은 케루악 연구자들이 인용하는 "로마 꽃불"의 구절일 것이다.. 나도 동의한다..

딘 모리아티(닐 캐시디)가 될 수 없다면 샐 파라다이스(잭 케루악)가 되고 싶을 테니까...


...나는 내 관심을 끄는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처럼 휘청거리며 그들을 쫓았다. 왜냐하면 내게는 오로지 미친 사람, 즉 미친듯이 살고 미친듯이 말하고 미친듯이 구원받으려 하고 뭐든지 욕망하고 절대 하품이나 진부한 말을 하지 않으며......다만 멋진 로마 꽃불이 솟아올라 하늘의 별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그런 사람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

<더 글라스 캐슬>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길 위에서>를 읽으며 난 이미 저 위의 인용문.. 

즉 사진 속에 들어간 나이라는 걸 깨닫는다...

로마 꽃불을 쫓기에는 눈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벌써 숨이 가쁘다...


나는 이미 사진 속에 들어가 있는데...

평온하게 굳어있는 한 장의 사진... 

그 이면의 반전이 없는 인생..

그냥 보이는 그대로의 삶이었다는게 

왠지 좀 서글프다...






Posted by labosque :

작은 말..

2017. 1. 22. 12:12 from 기억한올

#

치료실이라는 공간은 나를 반박자쯤 느려지게 해서 

무언가에 대한 반응도 숨 한번 짧게 쉬고 나서 하게끔 한다..

섣부른 대응으로 실수하지 않으려고..

뭔가 사소하고 작은 생채기 내지 않으려고...


대상에 대한 반응이야 그렇다치고..

치료실 안에서 받은 전화에도 공간이 영향을 미치는가 싶다...


상담을 마치고 아이를 돌려보내고

뒷 정리를 하고 간단히 일지를 적고 있는데 걸려 온 YS의 전화...


일상적인 안부와 우리를 한데 엮었던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K의 이야기..

YS와는 사실 K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연락을 주고 받지도 않을 것 같은데...

이 친구가 좋거나 싫어서가 아니고...

그냥 뭔가 연결이 안된 것 같은 느낌이라..

만나면 반갑지만 굳이 만나려고 서로 애쓰지 않는 그런 정도의 사이...

그런데 어쩌다보니 K라는 공통분모가 생겨서..

그리고 지난 봄 홀연히 세상을 버린 K


'대체불가능한 친구였지.. K는...'

YS의 적절한 표현...

대체불가능한 친구였다.. 대체불가능한 사람이었다.. K는...


일년에 한, 두번.. YS와 같이 보는 대학동기였다..

그렇게 만나기 시작한 것도 몇년 안되었다..


그렇게 몇 년... 반갑고 어색서먹하게 만남을 이어갔다...

대학 시절 농담처럼 가깝게 지냈던 남자 동기...

개족보에 큰오빠라고 이름을 올리고 장난치던 사이...


몇십년 만에 다시 만나 어린 시절 꽃미모는 다 잃었어도

깐족 깐족 얄미운 투로 정답게 말하는 버릇은 여전하던 친구...


홀홀 단신 외로운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사무친 줄은 몰랐다..

진짜 오빠처럼 사소하고 다정하게 챙겨주어서

그냥 응석부리듯 받기만 했다...


한번을 먼저 챙긴적 없어서..

그래서 너무 미안했다...


일년에 한두번 만나던 친구인데...

그 한두번이 너무 필요한 한두번이라...

그 맘때가 되면 사무치게 그리운

대체불가한 친구...


날 풀리면 K에게 한번 다녀오자고 YS와 이야기했다..

반박자쯤 쉬고 천천히 다정하게 이야기했다..

공간의 영향인건지 내용의 영향인건지..

솔직해도 편안했던 통화였다...




#

내가 상담을 하는 이유를 가끔 생각해본다..

실은...

내가 누군가를 돕고자 함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의 나를 느끼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그럴 것이다..

나는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데 반박할 생각이 없고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확인해야하는 것..

그건 그저 일반적인 일이고..

나 역시 그렇다...



J 엄마: J야, 너 어릴 때 여기 왔었잖아.. 언어 치료 받았던 거.. 생각 안나?

J: 생각나..

나: 아.. 그랬구나.. J 여기 왔었구나..선생님은 J가 여기 처음인줄 알았네?

J 엄마: 그래.. 여기 이방 생각나지?

J: 응..근데 달라졌어...그리고...

 선생님이 다르잖아...


J는 지난 주에 처음 만난 아동인데 지난 주 간단한 심리검사를 하고 간단한 그림을 한장 그리고 돌아갔다..

이번 주 만나 일주일간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즐거웠던 일에 대해 묻자

그림을 그렸던 일이라고 했다..

다시 한번 확인을 하니 일주일 전 나와 만나 그림을 그렸던 일이 생각나는 가장 즐거웠던 일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다르잖아.'가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묻지 않아도 알수있는 그런 게 있다..

그런 것들이 나를 기쁘게 한다..

그런 작은 말들...


그래서 상담을 한다..

이기적인 이유로...




Posted by labosque :

한가한 오후..

2017. 1. 21. 13:55 from 기억한올

한가한가? 평소처럼 할 일은 즐비하다... 

단지 엄마를 보러 가는 일이 면제되었을 뿐...


시동을 켜놓고 차 위에 소복히 쌓여있는 눈을 털어내고 있는 중

다시 눈발이 날린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꼼짝할 수 없다...

전화를 했더니 '오지 마~ 날도 추운데 뭘 오니?' 한다..

'눈 오면 못 움직이고 내일이나 모레나 눈 안 오면 갈께~' 했더니 

'날 풀리면 와..추운데 뭘..'한다..

'나 다음 주에 미국가는데?' 하자

'그래..다녀와서 날 따듯해지면 와..괜히 추운데 고생하지 말고...'한다...

'그러면 한달도 넘는건데...'는 마음 속으로 삼키고...

'그러면... '하다가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할께...'라고 하고 말았다...


왜... 그 배려가...

마음이 상할까? 


지난 주 늦은 아침, 잠자리에서 밍기적거리고 있을 때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날 추우니까 오지 말라고..

'알았어.. 그럼 그럴께..' 해버렸다...


엄마의 배려는 진심인걸까?

아니면 그냥 흔하디 흔한 겸양의 표현인 걸까...

늘 의심스럽다..

이중메시지...라고 생각하는 건 나의 편견인 걸까?

그냥 진심으로 받기로 했다...

빠릿 빠릿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딸에게 느끼는 서운함은 엄마의 몫..


그런데 왜 내가 화가 나는건지...

이중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 행간을 읽는 수고를 해야하는 데서 오는 짜증...

행간을 제대로 읽어내야 받을 수 있는 칭찬...

눈치빠른 아이로 자라게 만든데 대한 분노...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느껴질 죄책감...


배려를 배려로 받지 못하는 부분, 감사를 모르는 부분은 나의 문제다..

그냥 고맙게 받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이시간은 망중한....


그새 눈이 그치고 해가 나니 마음이 슬몃 불편하지만...

뭐... 그거야 내 탓은 아닌거고....



#

창신동 골목길...


새로 상담을 시작한 센터는 창신동 어디쯤에 있다..

지하철역에서 4~500m 쯤 골목을 따라 올라가는데

초입은 완만한데 마지막 1/3쯤은 꽤나 가파르다..


창신동은 내게 이름으로만 남아있다..

어렸을 때.. 최대로 잡아 초등학교 저학년때 정도 쯤..

작은집이 창신동이었다..


어릴 때는 특히 학교 다니기 전까지는 우리 형제들.. 그중 특히 나는 

친척집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또래의 사촌들, 언니, 오빠 들이 많아서 명절이나 제사때 모이면 왁자하게 놀다가

자기 집 가는 사람들의 치마꼬리에 붙어서 

'우리 집 가서 놀래?' 한마디에 강아지 새끼모냥

줄래 줄래 따라나서기도 참 많이 했었다...

며칠씩 자고 오고 그게 길어져서 한달씩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자고 오는 일도 있었다..


어쨋든...

창신동은 그 무렵 작은 집이 있던 동네였고.. 

나랑 언니랑? 혹은 나랑 남동생이랑? 정확하진 않지만 사촌들이랑 놀다가 차마 못헤어져서 

같이 놀러 갔었다..


그리고 한 밤중에 다 같이 연탄가스를 마셨다...

아마도 어른들이 머리가 아파서 먼저 깨시고 

한 방에 죽 누워자던 아이들을 다 흔들어 깨우셨는데..

그리고 얼른 방 밖으로 탈출하여 동치미 국물 원샷을 했는데..

나보다 어린 동생 둘을 포함하여 모든 아이들이 곧 부숭부숭 일어났는데

유독 나만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듯하다..


작은 아빠가 나를 들쳐업고 작은 엄마는 잠옷 바람에 스웨터만 걸치고

창신동 골목길 언덕을 내달아 달려 한 길가에 불켜진 의원을 찾아 헤매고 다니셨다...

워낙 일찍 잠자리에 들던 시절이라..(8시면 불 끄고 누웠으니까..) 한 잠 자고 난 것 같은데도 

몇 시 안 되었던 건지..(9시쯤?) 아니면 밤 새 여는 병원이라도 찾으셨던 건지 확실치 않지만..

(느낌상 전자였던 듯...)어쨋든 다행히 한 병원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난 난생 처음 입원이란 걸 해봤고...

링겔이란 것도 맞아봤는데 양쪽 팔에 아무리 찾아도 혈관이 안 나와서 

주사 바늘을 몇차례씩 찔렀다가 결국 발목 복숭아 뼈 아래 쯤에 바늘을 꽂았다.. 

한번씩 찌를 때마다 간호사가 미안한 얼굴로 칭찬을 늘어놓던 걸 기억한다...


작은 엄마는 가끔  그 때 얼마나 놀래고 가슴을 쓸어내렸던지 이야기를 하시지만 

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게도 그 밤 풍경이 의외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작은 엄마의 분홍색 원피스 잠옷과 그 위에 걸쳤던 큰 꽃무늬가 있는 스웨터까지 기억이 

날 지경이다..


등에 업혀있을 때 밤거리를 내달리는 작은 아빠의 가쁜 숨소리와 

비탈진 어둑한 골목길.. 큰 찻길을 따라 불꺼진 거리를 다급하게 헤매면서

셔터가 내려진 작은 병원들을 두들기던 일.. 두들김에 챙그랑 챙그랑 철문이 흔들리던 것들..

어둑한 거리에 뿌옇게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지나다니던 버스들..

밝고 환하던 한 병원...


아! 나를 들쳐업고 집을 나설 때 졸린 눈을 비비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란히 서서 작은 엄마, 아빠와 나를 배웅해주던 

사촌들과 내 형제들.. (지금 생각하니 언니는 확실히 있었던 듯 하다.. 언니가 제일 나이가 많아 작은 엄마가 아이들만 

두고 집을 비우며 뭔가 신신당부를 했던 듯..)


뭐 그런 그런 장면들이 안개에 싸인듯 뿌옇지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창신동 골목길을 걷다보니 그 기억이 떠오른다..

뭐 지금 내가 오르내리는 창신동 골목길은 40년도 더 전 그때 그 곳은 전혀 아닌듯 싶지만...



#

1월의 책들..


방학을 맞아 제일 즐거운 일은 역시 읽고 싶었던 소설들을 읽는 것...

여행 준비물로 크레마를 찾다가 열린 책들 세계문학전집 180권을 함께 주는 프로모션을 발견했다..

앗싸... 득템...


그 동안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거미여인의 키스>를 지면으로 읽었고

<원수들, 사랑이야기>를 재독 (엄밀히 말하자면 삼독) 했고..

크레마로 <캉디드>와 <여인의 초상(상,하)>를 읽었다...


이북도 볼만하다... 적어도 크레마로는....

썩 마음에 든다...

그렇다고 종이 책을 사는 걸 멈추지야 않겠지만..

확실히 엄청나게 줄일 수는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여행 짐이 간편해졌다..


요즘 왜 바쁜가 했는데..

물론 실습이며 스터디며 방학이래도 여전히 해야하는 일과 하고 있는 일들이 있긴 하지만...

내가 책을 읽고 있구나...

흠... 바쁠만 하다...



Posted by labosque :

또 꿈이야기

2017. 1. 7. 18:14 from 기억한올

며칠 전에 꾼 꿈이다. (17년 1월 초)

역시나 아이가 나오고 범죄자가 등장하고 쫓기는 기분과 도망치는 상황 등..

같은 패턴이 되풀이 되고 있어서 기록에 남겨둔다.

상담을 받게 되면 쓸수 있는 자료가 될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집이었는데 일렬로 방이 한칸 있고 사이에 거실이 있고 그 옆에 다시 방이 하나 있는 구조다. 

(이 구조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

한 방에 남자들이 책상 같은 것을 앞에 두고 두 세 명 앉아있다. (회의실 같은 분위기)

역 U자 같은 느낌으로 내쪽에서 마주보이는 곳에 중요한 인물이 앉아있다. 

나는 바깥에서 방안을 들여다보는 느낌인지.. 방안에 있는건지는 확실치 않고 작은 남자아이와 같이 있다.

회의 같은 걸 하는 분위기였는데 중요인물의 오른쪽 뒷편 구석에 어떤 남자가 숨어 있다. 

그 앞에 큰 화분같은 게 가리고 있었던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어쨋든 한 남자가 숨어있다.

숨어있는 남자가 섬뜩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데 그 남자는 악당이다. 

나는 그 남자를 발견하고 중요한 인물에게 소리를 질러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알려준다. 

(중요인물은 남편인것 같기도 하다.)

그 남자의 존재에 대해 알려주고 위험성을 알려주는데 중요 인물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고

그 나쁜 남자가 구석에서 나와서 공격을 감행한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방에서 나와서 거실에 있다. 티비가 켜있고 옆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티비소음에 내 소음을 숨겨서 옆방으로 간다. (꿈속에서 소음이 묻히도록 조심함.)

안에서 나쁜 남자를 제압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창문으로 나가는데 베란다같은 큰 창문으로 나가면 도로와 연결이 된다. 연결된 길을 잘 따라가면 도로를 건너

길 건너편으로 연결이 된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와서 대각선 뒷편으로 집(커다란 건물-아파트 같은 것으로 바뀜)이 있고 앞쪽에는 오르막 경사인데 가장 높은 부분에 육교가 있다. (멀리 정면에 에펠탑같은 것이 보임)


육교를 건너야 하는 상황인데 아이가 신발을 신지 않고 있다. 돈이 조금 있어서 아이에게 저렴한 신발을 사 신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육교를 건너는 것이 가장 위태로운 상황인데 언덕 위이고 육교가 높아서 누군가에게 가장 잘 눈에 띌수 있는 위치이다. (뒷편의 높은 건물에서 보일 것 같다. 육교만 건너고 나면 안전해질 것 같은 느낌.)

아이가 맨발이라 안고 육교를 오르는데 무겁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내려서 스스로 걷겠다고 함.

육교를 건너서 내려가야 하고 내려가기만 하면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짐. 

아이가 여자아이로 바뀜.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이가 시간을 끌어서 마음이 조금 초조해지는 와중에 꿈이 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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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야기.. 두개...

2016. 12. 27. 15:10 from 기억한올

#

언젠가 남편이 해주었던 이야기 중에 '념.망.해'라는 게 있었다.


먼저 생각한다. 골똘히 생각한다. 

그리고 잊는다.. 잊을 만큼. 잊어도 좋을만큼 깊이 생각하고 나서 

깨끗이 잊어버린다..

그리고나면 사고는 스스로 진행된다. 그리고 문제가 풀린다....


말하자면 꿈이 그런 역할을 한다.

사고는 내가 의식 중에 잊고 있어도 무의식 중에 스스로 진행하고 있고

그걸 보여주는 바로미터는 '꿈'이다.


지난 학기 말 마지막 시간에 발표했던 '임상적 클라인' 우울적 자리 중에서...

발표를 해야하기 때문에 제법 꼼꼼히 읽고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모든 부분을 다 깨알같이 이해하고 갈 수 는 없었기에 대충 넘겼던 부분이 있다. 


사례 중에 한 남자가 꿈속에서 자신의 부모를 돌보려고 드는 내용이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해석과 설명으로 <회복의 과정은 그의 외적 대상, 실제 부모가 실제로 건강할 때 더 강하게

활성화 됨.>-(나중에 이렇게 써놓은 부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내용이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대충 발표하고 넘어갔었다.


며칠 후 꿈을 꿨는데 꿈 속에 엄마가 나왔다. 

호피무늬 코트를 입은 젋고 건강한 엄마로 혼자서 미국여행을 올 정도였다. 

(꿈 속에 나는 미국에 있었고 엄마가 혼자서 왔고 혼자 여행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


꿈에서 깨고나자 현재의 엄마가 떠오르며 늙고 손상된 엄마에게 죄책감이 느껴졌다..(그로인한

우울감도 가중되었으리라.)


즉, 내 꿈은 사례의 꿈과는 반대로 사례속에서 남자는 현실보다 늙고 약한 부모를 만나 돌보려고 애쓰다가

깨어나 꿈보다 젊고 건장한 부모를 만나며 자신의 (공격성으로 인한)죄책감과 우울감에서 회복되지만

나는 반대로 꿈속의 건강하고 믿을만한 엄마를 현실에서 만나지 못하고 더 늙고 힘이 없는 대상으로 

경험하며 죄책감과 우울감이 가중된다.


이렇게 기가 막히게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제대로 풀어서 설명해주는 꿈이라니...



#

이 꿈은 12월 16일에 꾼 꿈이다. 


어렸을 때는 놀라울 정도로 꿈에 대한 기억이 선명했었고 

한동안 꿈을 꿨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정도로 

꿈에 대해 완벽히 잊어버렸었는데 

요즘은 적어도 꿈을 꿨다는 정도는 기억한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꿈도 드물지만  있다.


꿈에 어떤 건물 안에 있었는데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지는 않았지만 문을 열고 나온것 같은 느낌.)

내가 들어선 공간은 커다란 사무실 같은 모양이었고 한쪽 편에 책상과 가슴 높이 정도 오는 선반(책꽂이 같은 것들)이 있었다. (꿈 속에 약간 학교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린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아이가 내 아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뭔가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나는 아이를 한쪽 벽에 붙어있는 책장 같은 곳에 선반들 사이에 숨겼다. 

소리내지 말고 일어서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잘 숨어있으라고.


나도 그 아이가 숨은 장소와 가까운 곳에 박스 더미 같은 것으로 몸을 가리고 숨었다. 

공간의 복도가 되는 부분에 한 남자가 (아마도 핸드폰을 받으며) 뒤쪽으로부터 걸어왔다. 

느낌 상 그 사람은 테러리스트였다. (shooting spree를 할 사람)

왜인지 아이가 일어서 있었고 그 사람에게 발견되었다. 

아이가 '나를 보호하기위해' 그 사람에게 용감히 맞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곧 그 사람에게 발각되었다. 


싸울 수 밖에 없다라고 생각이 들었고 힘을 내어 맞섰다.

뭔가 굉장히 잔혹하고 호러스러운 장면들이었다. (목을 조르고 삽으로 내리치고.. 등등)

어느 순간 그 자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 되었는데 

아이를 거의 반쯤 삼켰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 자를 죽이고 반쯤 삼켜진 아이를 그자에게서 꺼냈다.

아이는 더 이상 사람이라고 보기에 어렵고 마치 고깃덩어리 같이 세토막으로 나뉘어졌다.

나는 그 덩어리들을 안고 119에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아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맞섰다.'라고 생각을 했다.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


잠을 거의 안잔것 같은 기분으로 꿈에서 깼는데 순간 범죄의 희생자가 된다는 것이 어떠한 기분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범죄의 혹은 사건 사고의 트라우마에서 회복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껴졌다. 

이 기분을 잊지 않는다면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 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을 남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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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3일

2016. 12. 13. 13:12 from 생각꼬리

#

많이도 살았는데 이 단조로움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미움..

엄마를 향한 미움..

남의 엄마를 향한 미움...


모성을 향한 미움...


아무리 보기 좋게 포장을 해봐도 결코 감싸안아지지 않는 

생생한 미움...


이 어처구니 없는 미움...




#

바쁜 척하고 살아봐도 찰나의 순간은 피할 수 없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눈이 시뻘개질 때까지 TV를 봤네..


..만사 걱정이 없는데


왜 자막이 올라가는 


그 짧디 짧은 시간 동안에는


하물며 광고에서 광고로 넘어가는


그 없는 거나 


다를바 없는 시간 동안에는.....


그러게...

일년이나 바쁜척하고 책상 위의 잡동사니 산더미처럼 죄 쌓아두고

외면한채로 잘도 살아오고..


이제 겨우 하루 맘편히 푹 쉬어보자고

채널 돌리는 시간처럼 마음먹고나니...


이렇게...


그때 그노래처럼...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장기하... 노래 정말 좋구나...



#

고치는 것은 과거인가? 미래인가?


어릴 때는 쉬웠던 것 같다.


앞으로 이렇게 하면 돼..


앞으로 이러면 안돼..


앞으로.. 앞으로...


이미 많이 앞에 온 지금은 


그닥 앞으로 어떻게 바뀔거라는 기대가 없어진 지금은...


과거로 돌아가서 바로잡으려 한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지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과거를 고칠 수 있나?


이러다 전생도 바로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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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2016. 8. 4. 20:06 from 카테고리 없음


1. 

이 책을 먼저 읽은 적 있는 독서회 친구 S와 J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 책... 잘 쓰였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불편해..'

그 불편함을 역시 먼저 책을 읽은 남자 회원들은 '취향이 아닌거지..'라고 돌려버렸다.


상 받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읽지 않았을 책..

아니.. 읽었더라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책..

한번 읽고 '뭐야? 이거..' 하고 던져 놓았을 책...


불편하게 만드는 그저 그렇고 그런 책...


여성작가들의 책은 나를 좀 불편하게 한다..

(진짜 여성작가들인지 정확하게 말하긴 힘들지만

대체적인 느낌이 그렇다..)


그들 몇몇의 책은 내게 지나치게 섬세한, 접근하기 힘든 자기만의 어떤 세상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마치 초대장을 받지 못한 아이가 닫힌 문앞에서 안쪽을 힐끔거리는 기분...


세상과 동떨어진 하늘거리는 흰옷을 입고 춤추는 것 같은 그런 세계


읽다보면 그들의 감성을 나만 이해 못하는 것 같고

나만 투박한것 같고

나만 탁한 것 같고

나만 부박하니 얕은 것 같다..


마치 어떤 아이가 거칠고 투박하고 마디진 손을 하얗고 가늘고 고운 손 옆에 우연히 두었을 때 느껴지는 부끄러움같은..

그런것..

그 순간 그 하얗고 가늘고 고운 손의 주인은 아무 이유없이 유죄다..


내 마음속의 법정에선 매일 매일 매 순간순간 유죄선고가 내려진다..

나의 어리석음과 나의 얕음과 나의 경박함과 나의 무딤과 나의 거칠음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나의 부끄러움과 나의 질시를 일으키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법봉을 내리친다..

'땅 땅 땅'

'유죄를 선고하노라.. 유죄를 선고하노라..'


2.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인물들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아니.. 인간은 멀리서 보면 알것도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이해 할 수 없다..

초점을 가까이로 옮기면 옮길 수록 타인은 철저하게 낯선 존재가 되어간다..

심지어 작가가 거의 1인칭 화자처럼 초 근접거리에 그들을 가져다놓아도...

작가가 빙의되어 있는 등장 인물들에 공감하지 못하는 생경함은 불편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혜..

남편의 관점에서 볼 때는 있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는데 남편보다 심리적으로 더 가까운 인혜의 관점이 되자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을 이해하라고 들이댄다.. 작가가...

그저 우리 세상에 내 이웃으로, 지인의 지인쯤으로 존재할 수도 있는 채식주의자가

어느틈에 경계를 넘어갔는데 

그 경계를 넘은 인물을 정신병동에서 보았던 수많은 환자중의 한명처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순백의 옷을 입고 나무가 되고 싶어하는 해맑은 그는 어느틈에 나를 가해자의 줄에 세운다..

마치 인혜를 그렇게 했던 것 처럼..

폭력을 방조한것.. 말리지 못한것...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영혜는 모순 없이 존재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투박하고 마디 굵은 손을 가진 나는...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에 대한 잠시 잠깐의 동정심을 뒤로하고 저녁 찬거리로 고기를 장바구니에 넣고..

동물들에 대한 죄책감을 뒤로 한채 '그래도 맛있는 걸.. 영양학적으로 필요해..그러니까 이왕이면 방목해서 키운 육류를

사는 게 좋겠어..'라고 변명을 하며...

모순으로 똘똘 뭉친 자아를 보호한다..


그렇게 순수하게 자기가 믿는 세계로 넘어가버리는 그런...

힘있는 일관성이 나에겐 없다..

그렇게 예민하게 자신이 아닌것을 거부하는 결벽함이 나에겐 없다..


영혜는 그렇게..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하얗고 예쁜 손처럼..결벽하고 예민함으로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래서 유죄...


인혜는..

실은 우리랑 가장 닮은 인간이어야 하는 인혜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장사도 잘하는 인혜는...

그 어마무시한 참을성과 양심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한걸음 뒤에서 보면 인생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가장 무거운 짐을 진 인혜가 부처님 반토막 같은 마음으로 남편을 이해하고

영혜를 돌보고..심지어 영혜에 대해 죄책감까지 갖는다면..


병든 와이프를 버리고 도망쳤다고 평을 듣는..

어찌보면 가장 이해하기 쉬운 인물인 영혜의 남편을 악의 평범한 얼굴로 규정해버린다면..

나는 과연 어느 편에 가서 서야 하는가..

악다구니 한번없이 그 모든 걸 고스란히 감내하는 인혜조차 방조의 죄로 가해자의 편에 서있다면...


구경꾼도 악의 동조자.. 방관자도 가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인혜의 양심...

그래서 유죄..


인간의 모순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 너는 유죄...

Posted by labosque :

죽을 사람들...

2016. 8. 4. 17:11 from 생각꼬리

1.

'어르신.  종양 있으신 건 알고 계시죠?'

'어르신. 이게 별로 좋지 않아요. 악성이세요.'

'어르신, 암이세요.'


여러번 바꿔 말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자 의사는 부드러우나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네에에?'


그제서야 알아들은 할아버지는 여태까지 주고 받은 이야기가 무색하게 화들짝 놀랐다. 

말에도 무게가 있다면...... 마치 철거를 할 때 쓰는 길다란 쇠줄에 달린 쇠공같은 것이, 뒤로 한껏 당겨졌다가 

놓아진 것 같은 속도와 무게로 할아버지를 한대 후려친 것 같았다.

실제로 그 말을  듣는 순간 보이지 않는 말의 쇠공에 맞은 듯 몸이 휘청 하는게 보였다.



2.

하필 그 순간일게 뭐람...

지난주 일수도 있었고 다음주 일수도 있었다..

아니.. 방학 동안 차일 피일 미루었으면 나는 그저 개학하고 난 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소식을 들었을 터였다..


기름을 넣고 세차장을 통과하는 차 안에서 K샘께 카톡을 보냈다.

'샘~. 이번 일요일이나 다음 일요일에 메쎄나 폴리스에서 차나 한잔 해요~'

'샘..저 내일 입원해요..암이래요..'


뒤이어진 통화에서 K샘은 위암 4기이고 이미 손쓸수 없이 퍼졌고 의사가 2개월~6개월 이라고 했다고...

그 소식을 오늘 아침 들었다고.. 신장이 막혀서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데 정리할게 있어서 내일 입원하기로 했다고...


'샘.. 샘이 오늘 연락안했으면 통화안됐을텐데...'

'어떡해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말도 안돼요.. '

여름 감기에 걸려 잔뜩  쉰 목소리로  엉엉 울고 있는 나한테 담담하게 응대하는 K샘...


'나 너무 착하게 살았는데... 남한테 해꼬지 한적도 없는데...지난 학기 정말 열심히 했는데..

앞으로 좋은 일도 정말 많이 하고 싶은데... 샘도 너무 착하게 살지 마요.. 나 너무 착하게..참고 살아서 병 걸린거 같아..'


'너무 담담하게 말하지 마요' 고함치듯 말하는 나에게

'아침에 소식듣고 너무 많이 울었어요.. 이제 온 몸에 수분이 다 빠져 나간거 같아요..'


왜 하필...

이 순간... 되도 않는 오지랍으로..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될 인사를 챙기느라고...

왜...


이 사람과의 무슨 인연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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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와 있는 두 주가 친구 S의 방문기간과 많이 겹쳤다..

아이가 오기 며칠전에 귀국한 S와 거의 오자마자 얼굴을 보고 두주간 완전 방치..

갑작스러운 시아버지의 병환이 좋은 핑계가 되어 주었지만 

그 이유가 카톡도 전화도 까맣게 잊게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꼭 필요한 볼일을 제외하곤 거의...

집에서 아이와 함께 뒹굴었다..

아이도 같이 시간을 보낼만한 친구들이 이제 더 이상 한국에 남아있지 않다..

밀린 티비프로그램을 보며 집에서 뒹구는 걸 제일 좋아라한다..


같이 거실에 누워 뒹굴면서 

나는 이미 다 본 프로그램을 다 다시 보면서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아이가 다시 돌아갈 날을 생각하면서..


생각한다.. 

아이가 돌아가서 다행이라고...

아이가 돌아가지 않으면 아마도..

나로 살아가기 참 힘들거 같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나는 아이를 참 좋아하긴 하는데..

참 이상한 엄마라고..

다른 엄마들처럼 뭘 해먹이느라 애쓰지 않는다..

집밥이 그립다소리도 않하긴 하지만

그렇게 짐작하고 엄마 밥 한끼라도 먹이려는 다른 엄마들처럼

부엌에서 동동거리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거의 밥을 안해먹였다..

그냥 간단히 있는 반찬 차려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배달음식 시켜먹고

나가서 맛있는 것 사 먹이고...


내가 음식하고 요리하는 걸 그닥 좋아라하지 않긴하지만...

그래도 에미의 모성이 있다면 난 왜 이런걸까..

생각을 하다가...


그 생각이 났다..

난 떨어져 있기 싫은 거다...

같이 있고 싶다...

아이가 티비보는 동안 부엌에 가서 혼자 있기 싫다..

그냥 시켜먹고 아이랑 붙어있고 싶다...

뭐 이런 말도 안되는 핑계...


어쨋거나 그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갑자기 20여년전 쯤 본 영화 <파리 텍사스>가 생각났다..

거기에서 남편이 와이프를 너무 사랑해서 일도 안나가고 하루종일 붙어있으려는 집착증 같은걸 보였었는데...

하는 뭐 아주 쓸데없는 생각...


나도 아이에 대해서 뭐 그렇다고 해두자..

거실바닥에 나란히 누워

티비보다가 아이얼굴 보다가 하는 순간이

더할나위없이 행복했으니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난.. 

같이 있어주는 엄마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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