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틈에  묵은 일이 되어 버렸는데 더 이상 묵혔다간 날라가 버릴거 같아서 기억을 붙잡아 맨다..벌써 3주 쯤 전 일이다..

시간이 어찌나 빠른지..그새 제법 많고도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일기같은 블로그를 들여다 볼 새가 없다..

 

# 내 머리속...

4주쯤 전에 어릴때 유학 갔던 친구(록포드의 여인 )가 왔고 3주쯤 전에 그 친구를 환영하는 모임이 두건 있었다..둘 다 즐거웠고 흥겨웠고...언제나 그렇듯 타임머신 타고 휘리릭~ 다녀왔고...그중 고등학교 동창 모임...그닥 가까이 만나지 않던 친구들이 여럿 나왔는데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근자에 (5년 안쪽이면 근자라고 할만하다) 한두번씩 본 친구들도 있었고 그중 한 친구는 정말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이었다. 어쨋든..워낙 조용하고 내성적인 친구라 그닥 가깝지는 않았었는데 어느 한 날의 기억이 있다..밤이었고 미술 실기실이었다..창밖에는 내가 좋아했던 가는 눈썹달이 떠 있었고 그 옆에 별까지 하나 같이 떠서 완벽했던 저녁 하늘..그 친구는 학과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실기는 정말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그래서 늘 실기실에 늦게까지 남아있었고... 난 그런 애가 아닌데 집에 안가고 뭐하고 있었나 사실 잘 모르겠고..어쨋든 그런 밤..그 친구랑 나랑 둘이 실기실에 있었고..그 친구는 담배를 피우며 화가(조각가)로서의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 했고..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그 친구가 열정을 다해 화가가 되고 싶어하는 만큼 나도 열정을 다해 그런 화가들을 관조하고 후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그때부터도 난...화가로서의 열정은 부족하다고 깨닫고 있었나보다...어쨋거나 그 친구를 다시 만나니 그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왔고 난 폭탄 선언을 해버렸다..'이제는 말할 수 있다..너 그때 실기실에서 담배폈던거 기억나?' 젠장... 미안하다..옥아...그런식으로 말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너 순간 당황하더라..당황하면서 이렇게 말하더라..'어? 나 사람들 앞에선 잘 안폈는데..' 얼굴까지 살짝 빨개져서 나도 순간 당황했지만.. 30년전 에피소드로 간략히 웃음으로 때워버리고 말았지만...내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위의 글이었어...하지만 이런게 워낙 말로하면 오글거리잖니... 이해...해라.... ㅠ.ㅠ

 

# KG의 기억 속...

KG는 고등학교 2학년쯤 학교를 그만둔 친군데 몇년전 TS 결혼식에서 본적있었다..남자들끼리는 계속 연락하고 있었는지 부인에 애들까지 데리고 결혼식장에 왔던 기억이 있고 두달쯤 전 친구 전시회 오픈때 다시 만났다.. 난 기억을 하고 있는데 KG는 TS의 결혼식장에선 워낙 사람들도 많고 여러명과 만났던지라 날 못 봤단다.. 30년만에 다시 만나 반갑다며 알은체를 한다..길거리에서 만나면 못 알아보겠다고 하더니 금새 하나도 안 변했다고 한다.. 그래..나도 그 모순 된 문장들을 아무 생각없이 턱턱 뱉을 수 밖에 없는 그 상태.. 이해한다.. 워낙에 동창들 얼굴이란게...그렇더라...그러다가 자기랑 나랑 짝을 했었다며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그랬나? 기억이 가물 가물하다.. 그 친구도 워낙에 말수가 적고 조용했다..고 1때 였다는데...'미안하지만 잘 생각이 안난다..'흠...그랬다.. 그리고나서 다시 본게 록포드의 여인 환영식...전체적으로 타임머신 타는 분위기라 같이 막 타고 가다보니 그이야기도 한번 더 나오고..나도 휘리릭 떠오르는 게 있다.. 고 1 때였고.. 학기초 쯤이었던 거 같고.. 내가 주번이어서 학교에 미친듯이 일찍 나왔던 적이 있는데..그때 그 친구는 벌써 나와있었던지 아님 두번째쯤으로 나왔던지..그랬던거 같다.. 그래서 정확한 상황은 기억 안나지만 어쨋거나 아침에 텅빈 교실에서 같이 있었던 적이....그냥 그거였다..그게 다다..그 친구랑 짝이었는지 어쨋는지 그다지 말을 섞은 기억도 없는데 그냥 그날 아침에 나보고 '너도 일찍 오는구나?' 해서 속으로 사실은 난 그런애가 절대 아닌데 생각했던걸 보면 그냥 오해하게 놔두었나 싶기도 하고..나도 말수가 적은 아이였나보다.. -.-;;

 

# SD의 기억 속...

역시 같은 날..SD도 타임 머신 타고 가다 줏은 기억을 하나 툭 던진다.. SD 역시도 고등학교때 정말 말 한마디나 해보았나 싶을 정도로 말수 적고 내성적이고... 나뿐만 아니라 아마 우리반 여학생들 대부분이 SD의 목소리를 모르지 싶을 정도로 수줍던 소년이었다.. 그냥 무지 무지 착했다..혹은 그럴것 같았다 라는 게 내게 남은 SD에 대한 지배적인 기억이다..지금은 자분 자분 이야기도 잘하고 '그때 왜 그랬니?' 라고 하자 '그러게..그때 왜 그랬지? 너무 아쉬워'라고 조용히 눙을 칠수 있는 점잖은 아저씨지만..

어쨋거나 SD의 기억은 추억의 522 (아달달 혹은 오달달)번 버스에서 터졌다.. 나도 522 버스를 주로 타고 다녔는데 TS가 버스에서 날 만나는 날은 '아! 오늘은 지각이구나!' 한다고 그랬다고..고 3때는 지각한 사람들이 남아서 청소를 했는데 매번 걸리는 애들이 비슷하니까 나중엔 애들이 청소 전문 업체 직원 같이 됬다고..옆반 청소 30분 걸리는 거 우리반은 10분이면 끝난다고..막 그런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데.. SD도 버스에서 날 만난 이야기를 한다.. '너도 지각 많이 했니?' 아니란다.. 집이 멀어서 학교에 정말 일찍 왔다고..그럼 아마도 내가 미친척하고 일찍 간 날들 이었나보다.. 어느날.. 버스를 같이 타고 오다가 학교 앞에서 내렸는데 내가 먼저 내리고 뒤에 내리다가 그만 내 치마를 밟았단다..치맛단이 좌악 틑어졌다고..그래서 너무 미안했다고.. 기억은 안나지만 아마도 볼도 빨개졌을것이다..그만큼 수줍고 착한 소년이었으니까.. 너무 너무 미안해서 그 기억이 남아 있다고.. 흠...역시나 난 기억이 안난다.. '내가 혹시 화를 냈니?' 라고 하자 아니란다..휴..다행이다..그때도 그닥 지랄맞진 않았나보다... *^^*

 

# 친구의 소설...

며칠전 문서저장을 하려다가 찾은 폴더 하나에 오래전 친구가 보내준 소설 파일이 하나 들어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인데 어릴 때는 그런대로 친했던 친구이다..좀 특이한 구석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특이한 구석이 있는 친구..전문으로 글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냥 계속 쓰고 있는 듯 한데..몇편 보내줘서 읽어보았는데 흠..별 재미는 없었다.. 몇년전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다시 만나서 내가 나오는 소설을 쓴것도 있다길래 보내 달라고 해서 읽고 저장해 놓았었는데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였다.. 실화, 실명에 바탕한 기억에 허구를 추가해서 썼다는데 소설적인 관점에서의 평가와 전혀 관계없이 그 친구가 가진 나에 대한 기억과 인상이 참 흥미로왔었다..그 친구랑은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의 기억이 전부인데 그 시절의 기억을 그렇게 잘 간직하고 또한 정돈되게 저장할 수 있다는건 참 놀라운 능력이다..가장 놀라웠던 건 관찰력인데 그 친구는 이미 그때 내 손이 아름답다고 인지하고 있었나보다..내가 내 손이 이쁜 편이라고 느낀게 대학 무렵인거 같은데...엄청나게 조숙한 아이였나보다..어쨋거나 다시 읽어봐도 그럴듯하다..그의 눈에 비친 내가...그래서 그 친구에게 참 고맙다...그때의 나를 그렇게 기억해줘서...그리고 그 기억을 그렇게 잘 저장해줘서...

밥이라도 한끼 사야겠다..10년쯤 늦었지만.. (소설 받은지...)  (_ _)

 

 

# 이 블로그에 나오는 친구들의 이름을 대부분 이니셜로 하고 있는데 나중에 읽어보면 누가 누군지 기억할 수 있을까? 글쎄다..

그때는 암부호로 이루어진 난수표처럼 느껴 질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니셜 각주

KG = 경귀

SD = 수돌

TS = 태성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