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한올'에 해당되는 글 58건

  1. 2017.01.22 작은 말..
  2. 2017.01.21 한가한 오후..
  3. 2017.01.07 또 꿈이야기
  4. 2016.12.27 꿈이야기.. 두개...
  5. 2016.02.15 순응자
  6. 2016.02.01 일기
  7. 2015.11.27 2015년의 날씨..
  8. 2015.06.28 연민을 배울 수 있을까?
  9. 2015.06.25 아름다운 결말
  10. 2015.06.13 6월 일기

작은 말..

2017. 1. 22. 12:12 from 기억한올

#

치료실이라는 공간은 나를 반박자쯤 느려지게 해서 

무언가에 대한 반응도 숨 한번 짧게 쉬고 나서 하게끔 한다..

섣부른 대응으로 실수하지 않으려고..

뭔가 사소하고 작은 생채기 내지 않으려고...


대상에 대한 반응이야 그렇다치고..

치료실 안에서 받은 전화에도 공간이 영향을 미치는가 싶다...


상담을 마치고 아이를 돌려보내고

뒷 정리를 하고 간단히 일지를 적고 있는데 걸려 온 YS의 전화...


일상적인 안부와 우리를 한데 엮었던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K의 이야기..

YS와는 사실 K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연락을 주고 받지도 않을 것 같은데...

이 친구가 좋거나 싫어서가 아니고...

그냥 뭔가 연결이 안된 것 같은 느낌이라..

만나면 반갑지만 굳이 만나려고 서로 애쓰지 않는 그런 정도의 사이...

그런데 어쩌다보니 K라는 공통분모가 생겨서..

그리고 지난 봄 홀연히 세상을 버린 K


'대체불가능한 친구였지.. K는...'

YS의 적절한 표현...

대체불가능한 친구였다.. 대체불가능한 사람이었다.. K는...


일년에 한, 두번.. YS와 같이 보는 대학동기였다..

그렇게 만나기 시작한 것도 몇년 안되었다..


그렇게 몇 년... 반갑고 어색서먹하게 만남을 이어갔다...

대학 시절 농담처럼 가깝게 지냈던 남자 동기...

개족보에 큰오빠라고 이름을 올리고 장난치던 사이...


몇십년 만에 다시 만나 어린 시절 꽃미모는 다 잃었어도

깐족 깐족 얄미운 투로 정답게 말하는 버릇은 여전하던 친구...


홀홀 단신 외로운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사무친 줄은 몰랐다..

진짜 오빠처럼 사소하고 다정하게 챙겨주어서

그냥 응석부리듯 받기만 했다...


한번을 먼저 챙긴적 없어서..

그래서 너무 미안했다...


일년에 한두번 만나던 친구인데...

그 한두번이 너무 필요한 한두번이라...

그 맘때가 되면 사무치게 그리운

대체불가한 친구...


날 풀리면 K에게 한번 다녀오자고 YS와 이야기했다..

반박자쯤 쉬고 천천히 다정하게 이야기했다..

공간의 영향인건지 내용의 영향인건지..

솔직해도 편안했던 통화였다...




#

내가 상담을 하는 이유를 가끔 생각해본다..

실은...

내가 누군가를 돕고자 함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의 나를 느끼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그럴 것이다..

나는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데 반박할 생각이 없고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확인해야하는 것..

그건 그저 일반적인 일이고..

나 역시 그렇다...



J 엄마: J야, 너 어릴 때 여기 왔었잖아.. 언어 치료 받았던 거.. 생각 안나?

J: 생각나..

나: 아.. 그랬구나.. J 여기 왔었구나..선생님은 J가 여기 처음인줄 알았네?

J 엄마: 그래.. 여기 이방 생각나지?

J: 응..근데 달라졌어...그리고...

 선생님이 다르잖아...


J는 지난 주에 처음 만난 아동인데 지난 주 간단한 심리검사를 하고 간단한 그림을 한장 그리고 돌아갔다..

이번 주 만나 일주일간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즐거웠던 일에 대해 묻자

그림을 그렸던 일이라고 했다..

다시 한번 확인을 하니 일주일 전 나와 만나 그림을 그렸던 일이 생각나는 가장 즐거웠던 일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다르잖아.'가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묻지 않아도 알수있는 그런 게 있다..

그런 것들이 나를 기쁘게 한다..

그런 작은 말들...


그래서 상담을 한다..

이기적인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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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오후..

2017. 1. 21. 13:55 from 기억한올

한가한가? 평소처럼 할 일은 즐비하다... 

단지 엄마를 보러 가는 일이 면제되었을 뿐...


시동을 켜놓고 차 위에 소복히 쌓여있는 눈을 털어내고 있는 중

다시 눈발이 날린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꼼짝할 수 없다...

전화를 했더니 '오지 마~ 날도 추운데 뭘 오니?' 한다..

'눈 오면 못 움직이고 내일이나 모레나 눈 안 오면 갈께~' 했더니 

'날 풀리면 와..추운데 뭘..'한다..

'나 다음 주에 미국가는데?' 하자

'그래..다녀와서 날 따듯해지면 와..괜히 추운데 고생하지 말고...'한다...

'그러면 한달도 넘는건데...'는 마음 속으로 삼키고...

'그러면... '하다가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할께...'라고 하고 말았다...


왜... 그 배려가...

마음이 상할까? 


지난 주 늦은 아침, 잠자리에서 밍기적거리고 있을 때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날 추우니까 오지 말라고..

'알았어.. 그럼 그럴께..' 해버렸다...


엄마의 배려는 진심인걸까?

아니면 그냥 흔하디 흔한 겸양의 표현인 걸까...

늘 의심스럽다..

이중메시지...라고 생각하는 건 나의 편견인 걸까?

그냥 진심으로 받기로 했다...

빠릿 빠릿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딸에게 느끼는 서운함은 엄마의 몫..


그런데 왜 내가 화가 나는건지...

이중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 행간을 읽는 수고를 해야하는 데서 오는 짜증...

행간을 제대로 읽어내야 받을 수 있는 칭찬...

눈치빠른 아이로 자라게 만든데 대한 분노...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느껴질 죄책감...


배려를 배려로 받지 못하는 부분, 감사를 모르는 부분은 나의 문제다..

그냥 고맙게 받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이시간은 망중한....


그새 눈이 그치고 해가 나니 마음이 슬몃 불편하지만...

뭐... 그거야 내 탓은 아닌거고....



#

창신동 골목길...


새로 상담을 시작한 센터는 창신동 어디쯤에 있다..

지하철역에서 4~500m 쯤 골목을 따라 올라가는데

초입은 완만한데 마지막 1/3쯤은 꽤나 가파르다..


창신동은 내게 이름으로만 남아있다..

어렸을 때.. 최대로 잡아 초등학교 저학년때 정도 쯤..

작은집이 창신동이었다..


어릴 때는 특히 학교 다니기 전까지는 우리 형제들.. 그중 특히 나는 

친척집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또래의 사촌들, 언니, 오빠 들이 많아서 명절이나 제사때 모이면 왁자하게 놀다가

자기 집 가는 사람들의 치마꼬리에 붙어서 

'우리 집 가서 놀래?' 한마디에 강아지 새끼모냥

줄래 줄래 따라나서기도 참 많이 했었다...

며칠씩 자고 오고 그게 길어져서 한달씩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자고 오는 일도 있었다..


어쨋든...

창신동은 그 무렵 작은 집이 있던 동네였고.. 

나랑 언니랑? 혹은 나랑 남동생이랑? 정확하진 않지만 사촌들이랑 놀다가 차마 못헤어져서 

같이 놀러 갔었다..


그리고 한 밤중에 다 같이 연탄가스를 마셨다...

아마도 어른들이 머리가 아파서 먼저 깨시고 

한 방에 죽 누워자던 아이들을 다 흔들어 깨우셨는데..

그리고 얼른 방 밖으로 탈출하여 동치미 국물 원샷을 했는데..

나보다 어린 동생 둘을 포함하여 모든 아이들이 곧 부숭부숭 일어났는데

유독 나만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듯하다..


작은 아빠가 나를 들쳐업고 작은 엄마는 잠옷 바람에 스웨터만 걸치고

창신동 골목길 언덕을 내달아 달려 한 길가에 불켜진 의원을 찾아 헤매고 다니셨다...

워낙 일찍 잠자리에 들던 시절이라..(8시면 불 끄고 누웠으니까..) 한 잠 자고 난 것 같은데도 

몇 시 안 되었던 건지..(9시쯤?) 아니면 밤 새 여는 병원이라도 찾으셨던 건지 확실치 않지만..

(느낌상 전자였던 듯...)어쨋든 다행히 한 병원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난 난생 처음 입원이란 걸 해봤고...

링겔이란 것도 맞아봤는데 양쪽 팔에 아무리 찾아도 혈관이 안 나와서 

주사 바늘을 몇차례씩 찔렀다가 결국 발목 복숭아 뼈 아래 쯤에 바늘을 꽂았다.. 

한번씩 찌를 때마다 간호사가 미안한 얼굴로 칭찬을 늘어놓던 걸 기억한다...


작은 엄마는 가끔  그 때 얼마나 놀래고 가슴을 쓸어내렸던지 이야기를 하시지만 

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게도 그 밤 풍경이 의외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작은 엄마의 분홍색 원피스 잠옷과 그 위에 걸쳤던 큰 꽃무늬가 있는 스웨터까지 기억이 

날 지경이다..


등에 업혀있을 때 밤거리를 내달리는 작은 아빠의 가쁜 숨소리와 

비탈진 어둑한 골목길.. 큰 찻길을 따라 불꺼진 거리를 다급하게 헤매면서

셔터가 내려진 작은 병원들을 두들기던 일.. 두들김에 챙그랑 챙그랑 철문이 흔들리던 것들..

어둑한 거리에 뿌옇게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지나다니던 버스들..

밝고 환하던 한 병원...


아! 나를 들쳐업고 집을 나설 때 졸린 눈을 비비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란히 서서 작은 엄마, 아빠와 나를 배웅해주던 

사촌들과 내 형제들.. (지금 생각하니 언니는 확실히 있었던 듯 하다.. 언니가 제일 나이가 많아 작은 엄마가 아이들만 

두고 집을 비우며 뭔가 신신당부를 했던 듯..)


뭐 그런 그런 장면들이 안개에 싸인듯 뿌옇지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창신동 골목길을 걷다보니 그 기억이 떠오른다..

뭐 지금 내가 오르내리는 창신동 골목길은 40년도 더 전 그때 그 곳은 전혀 아닌듯 싶지만...



#

1월의 책들..


방학을 맞아 제일 즐거운 일은 역시 읽고 싶었던 소설들을 읽는 것...

여행 준비물로 크레마를 찾다가 열린 책들 세계문학전집 180권을 함께 주는 프로모션을 발견했다..

앗싸... 득템...


그 동안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거미여인의 키스>를 지면으로 읽었고

<원수들, 사랑이야기>를 재독 (엄밀히 말하자면 삼독) 했고..

크레마로 <캉디드>와 <여인의 초상(상,하)>를 읽었다...


이북도 볼만하다... 적어도 크레마로는....

썩 마음에 든다...

그렇다고 종이 책을 사는 걸 멈추지야 않겠지만..

확실히 엄청나게 줄일 수는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여행 짐이 간편해졌다..


요즘 왜 바쁜가 했는데..

물론 실습이며 스터디며 방학이래도 여전히 해야하는 일과 하고 있는 일들이 있긴 하지만...

내가 책을 읽고 있구나...

흠... 바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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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꿈이야기

2017. 1. 7. 18:14 from 기억한올

며칠 전에 꾼 꿈이다. (17년 1월 초)

역시나 아이가 나오고 범죄자가 등장하고 쫓기는 기분과 도망치는 상황 등..

같은 패턴이 되풀이 되고 있어서 기록에 남겨둔다.

상담을 받게 되면 쓸수 있는 자료가 될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집이었는데 일렬로 방이 한칸 있고 사이에 거실이 있고 그 옆에 다시 방이 하나 있는 구조다. 

(이 구조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

한 방에 남자들이 책상 같은 것을 앞에 두고 두 세 명 앉아있다. (회의실 같은 분위기)

역 U자 같은 느낌으로 내쪽에서 마주보이는 곳에 중요한 인물이 앉아있다. 

나는 바깥에서 방안을 들여다보는 느낌인지.. 방안에 있는건지는 확실치 않고 작은 남자아이와 같이 있다.

회의 같은 걸 하는 분위기였는데 중요인물의 오른쪽 뒷편 구석에 어떤 남자가 숨어 있다. 

그 앞에 큰 화분같은 게 가리고 있었던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어쨋든 한 남자가 숨어있다.

숨어있는 남자가 섬뜩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데 그 남자는 악당이다. 

나는 그 남자를 발견하고 중요한 인물에게 소리를 질러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알려준다. 

(중요인물은 남편인것 같기도 하다.)

그 남자의 존재에 대해 알려주고 위험성을 알려주는데 중요 인물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고

그 나쁜 남자가 구석에서 나와서 공격을 감행한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방에서 나와서 거실에 있다. 티비가 켜있고 옆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티비소음에 내 소음을 숨겨서 옆방으로 간다. (꿈속에서 소음이 묻히도록 조심함.)

안에서 나쁜 남자를 제압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창문으로 나가는데 베란다같은 큰 창문으로 나가면 도로와 연결이 된다. 연결된 길을 잘 따라가면 도로를 건너

길 건너편으로 연결이 된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와서 대각선 뒷편으로 집(커다란 건물-아파트 같은 것으로 바뀜)이 있고 앞쪽에는 오르막 경사인데 가장 높은 부분에 육교가 있다. (멀리 정면에 에펠탑같은 것이 보임)


육교를 건너야 하는 상황인데 아이가 신발을 신지 않고 있다. 돈이 조금 있어서 아이에게 저렴한 신발을 사 신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육교를 건너는 것이 가장 위태로운 상황인데 언덕 위이고 육교가 높아서 누군가에게 가장 잘 눈에 띌수 있는 위치이다. (뒷편의 높은 건물에서 보일 것 같다. 육교만 건너고 나면 안전해질 것 같은 느낌.)

아이가 맨발이라 안고 육교를 오르는데 무겁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내려서 스스로 걷겠다고 함.

육교를 건너서 내려가야 하고 내려가기만 하면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짐. 

아이가 여자아이로 바뀜.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이가 시간을 끌어서 마음이 조금 초조해지는 와중에 꿈이 깸.




Posted by labosque :

꿈이야기.. 두개...

2016. 12. 27. 15:10 from 기억한올

#

언젠가 남편이 해주었던 이야기 중에 '념.망.해'라는 게 있었다.


먼저 생각한다. 골똘히 생각한다. 

그리고 잊는다.. 잊을 만큼. 잊어도 좋을만큼 깊이 생각하고 나서 

깨끗이 잊어버린다..

그리고나면 사고는 스스로 진행된다. 그리고 문제가 풀린다....


말하자면 꿈이 그런 역할을 한다.

사고는 내가 의식 중에 잊고 있어도 무의식 중에 스스로 진행하고 있고

그걸 보여주는 바로미터는 '꿈'이다.


지난 학기 말 마지막 시간에 발표했던 '임상적 클라인' 우울적 자리 중에서...

발표를 해야하기 때문에 제법 꼼꼼히 읽고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모든 부분을 다 깨알같이 이해하고 갈 수 는 없었기에 대충 넘겼던 부분이 있다. 


사례 중에 한 남자가 꿈속에서 자신의 부모를 돌보려고 드는 내용이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해석과 설명으로 <회복의 과정은 그의 외적 대상, 실제 부모가 실제로 건강할 때 더 강하게

활성화 됨.>-(나중에 이렇게 써놓은 부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내용이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대충 발표하고 넘어갔었다.


며칠 후 꿈을 꿨는데 꿈 속에 엄마가 나왔다. 

호피무늬 코트를 입은 젋고 건강한 엄마로 혼자서 미국여행을 올 정도였다. 

(꿈 속에 나는 미국에 있었고 엄마가 혼자서 왔고 혼자 여행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


꿈에서 깨고나자 현재의 엄마가 떠오르며 늙고 손상된 엄마에게 죄책감이 느껴졌다..(그로인한

우울감도 가중되었으리라.)


즉, 내 꿈은 사례의 꿈과는 반대로 사례속에서 남자는 현실보다 늙고 약한 부모를 만나 돌보려고 애쓰다가

깨어나 꿈보다 젊고 건장한 부모를 만나며 자신의 (공격성으로 인한)죄책감과 우울감에서 회복되지만

나는 반대로 꿈속의 건강하고 믿을만한 엄마를 현실에서 만나지 못하고 더 늙고 힘이 없는 대상으로 

경험하며 죄책감과 우울감이 가중된다.


이렇게 기가 막히게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제대로 풀어서 설명해주는 꿈이라니...



#

이 꿈은 12월 16일에 꾼 꿈이다. 


어렸을 때는 놀라울 정도로 꿈에 대한 기억이 선명했었고 

한동안 꿈을 꿨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정도로 

꿈에 대해 완벽히 잊어버렸었는데 

요즘은 적어도 꿈을 꿨다는 정도는 기억한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꿈도 드물지만  있다.


꿈에 어떤 건물 안에 있었는데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지는 않았지만 문을 열고 나온것 같은 느낌.)

내가 들어선 공간은 커다란 사무실 같은 모양이었고 한쪽 편에 책상과 가슴 높이 정도 오는 선반(책꽂이 같은 것들)이 있었다. (꿈 속에 약간 학교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린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아이가 내 아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뭔가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나는 아이를 한쪽 벽에 붙어있는 책장 같은 곳에 선반들 사이에 숨겼다. 

소리내지 말고 일어서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잘 숨어있으라고.


나도 그 아이가 숨은 장소와 가까운 곳에 박스 더미 같은 것으로 몸을 가리고 숨었다. 

공간의 복도가 되는 부분에 한 남자가 (아마도 핸드폰을 받으며) 뒤쪽으로부터 걸어왔다. 

느낌 상 그 사람은 테러리스트였다. (shooting spree를 할 사람)

왜인지 아이가 일어서 있었고 그 사람에게 발견되었다. 

아이가 '나를 보호하기위해' 그 사람에게 용감히 맞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곧 그 사람에게 발각되었다. 


싸울 수 밖에 없다라고 생각이 들었고 힘을 내어 맞섰다.

뭔가 굉장히 잔혹하고 호러스러운 장면들이었다. (목을 조르고 삽으로 내리치고.. 등등)

어느 순간 그 자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 되었는데 

아이를 거의 반쯤 삼켰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 자를 죽이고 반쯤 삼켜진 아이를 그자에게서 꺼냈다.

아이는 더 이상 사람이라고 보기에 어렵고 마치 고깃덩어리 같이 세토막으로 나뉘어졌다.

나는 그 덩어리들을 안고 119에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아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맞섰다.'라고 생각을 했다.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


잠을 거의 안잔것 같은 기분으로 꿈에서 깼는데 순간 범죄의 희생자가 된다는 것이 어떠한 기분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범죄의 혹은 사건 사고의 트라우마에서 회복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껴졌다. 

이 기분을 잊지 않는다면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 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을 남겨놓는다. 



Posted by labosque :

순응자

2016. 2. 15. 18:59 from 기억한올





# 모처럼 M과 모모에 갔다..

'어느 영화든 상관없어.' 라고 했지만 실은 [순응자]가 보고 싶었는데 다행이 시간도 마침맞았다...

포스터의 스틸 사진을 보고 '내가 아는 영화가 아닐까?' 잠깐 생각했지만

오프닝 크레딧에서 도미니크 산다의 이름을 찾지 못해서 '곧 아닌가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도미니크 산다'가 등장했다..

도미니크 산다의 영화를 본 기억은 없다...

어쩌면 봤나? 어쩌면 아닌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쨋거나 난...

도미니크 산다를 좋아했다... 








# 중고등학교 때... 영화배우들에 대한 책이 있었다..

사진이 많이 들어 있고..씨리즈로 적어도 세권은 나온 것 같다..

클라크 게이블, 게리 쿠퍼,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비비안 리...

헐리우드 유명 배우들 뿐 아니라 마리네 디트리히, 그레타 가르보같은 무성영화 시대의 배우들..

그리고 간간이 껴있는 유럽 배우..

알랑 들롱, 브리짓트 바르도, 카트리느 드뇌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탈리 들롱..(그닥 우리에게 알려진 영화가 없다..)

그리고 도미니크 산다... 역시나 아는 영화가 없었던...

각 챕터는 인물에 대한 전기 형식의 간단한 글과 사진, 연보 스타일로 정리된 출연작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때 내 눈엔 도미니크 산다가 그렇게 예뻐 보였다..

그리고 책에 실린 인터뷰 부분이 기억에 있다..

'왜 도미니크 산다라는 예명을 지었는가?'

'글쎄.. S의 발음을 좋아해서 그냥 지었다..'

뭔가 인상적이었나보다..


어쨋거나...

그 도미니크 산다가 이 영화로 유명해졌다고 하며 같이 실렸던 사진이다..

당시 책에 실려 있던 영화의 제목은 [순응자]는 아니었다..

뭐였는지까진 기억에 없지만...확실히...

두 장면 다 인상적이라 이 영화가 참 보고 싶었었다...


그리고 46년만에 보게 되었다..(만들어진지 46년인데 우리나라 최초 상영이라고 한다..

내가 보고 싶었던 시절로 부터도 확실히 30년 이상 지난 듯)

영화는...

몹시 훌륭하고

이런 영화를 통해서라면 도미니크 산다가 유명해진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그렇지만 영화 자체보다 이런 사소한 기억들이 나를 더 만족시킨다...

내 과거의 어느 순간이 그저 사라진 것만은 아니라는 위안...




덧) 남자 주인공 장 루이 트레디냥은 <남과 여>에도 나왔었다...

<남과 여>는 중 3때? 혹은 고1때? 머리 풀고 사복입고 언니랑 같이 가서 본 영화..(미성년자 관람불가...)


-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 개봉 되었던 건 79년... 흠..난 중2, 언니는 고2 였나보다...


Posted by labosque :

일기

2016. 2. 1. 06:39 from 기억한올

# 시차


작년까지도 시차에 대해선 특별한 걱정이 없었는데 올해는 조금 다르다..

이젠 나이가 더 이상 시차를 누르지 못한다...

미국에 가서도 보통의 수면리듬을 찾기까지 꽤나 한참 걸려서 닷새가 지난 후에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른이 되어 있었다..

평소의 나처럼 12시 넘어 잠자리에 들고 아침 8시 넘어까지 밍기적 거리고 있는 건 

귀국 전날 간신히 이루어졌다.. 

차라리 평소의 수면 습관을 찾지나 말것이지...

돌아오니 또 다시 같은 상황의 반복이다..

하루만에 시차적응 완료니 뭐니.. 

전에 되던 일들이 이젠 안된다..

적어도 여기선 다른 식구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불을 켤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화장실...

따위의 어려움은 없으니 다행..(시차덕에 뉴욕 호텔 화장실에서 '사피엔스'를 거의 다 읽었다..)

모처럼의 새벽 시간을 즐길수도 있으니까.. 



# 귀국에 대한 느낌


여행에서 돌아오면 시차뿐 아니라 뭔가 적응하기까지 멍한 상태를 좀 견디어야 하는데

그건 일종의 낯설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단 2주만의 귀향인데도 생활의 연속성이 깨진달까.. 적응에 약간의 공백이 필요하다..

어느 곳에 가든 그 곳에 만족한다는 나를 보고 친구가 '너무 적응 잘하는 거..그것도 병이야..'

했었는데.. 그럴지도 모르겠다..

아들과 있는 2주 동안 거의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서 밥만 해줬다...

딱히 달리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생각해보면 전에 아들과 같이 4년 동안 미국에서 살때도 그랬던 것 같다..

더 없이 단순한 생활에 특별한 불만이 없다..

그냥 좋아서 그랬다.. 애 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이번에도 역시나...

난 한꺼번에 두가지는 못할 거 같다..

능력도 안되고..

엄마 노릇 할때는 오롯이 엄마 노릇밖에...

혼자 두고 오려니 안쓰럽고 눈물났지만 집에 오니 안심이 되기도 한다..

여기선 나로 살수 있으니..

애가 눈 앞에 있었으면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진 못했을 거다..

엄마로 오래 살아봤으니 이제 다시 나로 사는 게 실은 조금 더 좋긴하다...

어찌보면 여기선 혼자 있는 아들걱정.. 거기에선 덧없이 사라져 가는 내 인생을 걱정해야 하는게 맞는데

눈 앞에 안 보이는 건 까맣게 잊는다.. 

흠 다행이다..



# 아버지


아버지 돌아가신 후 감정의 수도꼭지 같은 게 생겼다..

언제라도 틀면 눈물이 나는 건 아니지만 금새 눈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울컥거린다...

그리고 정말 '매일 매일 보고싶다..'

한번도 안 오시더니 그제 밤에 처음으로 꿈에 오셨다..

꿈속의 꿈으로 아버지가 누워계셨는데 (마치 임종시 같은 모습으로..)

꿈에서 내 느낌은 주무신다는 거였고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생각을 했고..

그러다가 꿈 속에서 한 꿈을 깨고 나서 언니와 엄마에게 꿈 이야기를 하는데 

언니가 계속 질문을 하며 꿈 해석을 해주려 했고

젊고 (60~70대) 건강하신 아버지가 환하고 다정한 얼굴로 들어오셔서 방안에 앉으셔서 

같이 꿈 해석을 해주시는데 난 처음엔 아무 생각 없다가 

잠시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에게 가서 팔을 잡고 

'아버지..아버지..'하고 부르며 하염없이 울었다.. 너무 그리워서...너무 보고싶어서..

너무 생생하고 환하고 다정한 아버지 모습 뵈어서 좋았다..



# 엄마


미국 가 있는 동안 엄마는 한차례 또 입원을 하셨다가 퇴원을 하셨다.. 

정기검진에서 폐쪽으로 뭔가가 이상해서 조직검사를 한다고 했다가 

혈관이 검사부위와 너무 가까와 개복으로 수술을 한다고 하여 걱정했는데

폐기능이 너무 안좋아 개복 수술도 불가능 하다고 하고

PET-CT로 대체

PET-CT결과는 오히려 암이 아닌쪽으로... 하여 한숨 돌렸다..

수술했더라면 어쩔 뻔 했을지...

삼개월 후 검사 받을 때까지는 일단 모든 것을 일시 정지시키고 즐겁게 살기로 마음 먹었다..



# 외숙모


청주 외숙모가 91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

작년 2월 엄마 아버지 모시고 청주 외삼촌 장례식장에 다녀왔는데..

그 새 정정하시던 아버지가 그렇게 급하게 떠나시고

다시 외숙모..

이제 외가 쪽으로 남은 분은 막내 외숙모와 엄마뿐.. 

6남매와 그 배우자 들이 다들 떠나시고 한 세대가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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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의 날씨..

2015. 11. 27. 00:29 from 기억한올

선린중학교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난 왜 먼지가 풀풀날린다고 생각했을까..

만재도에서 신문지를 태워 불을 피울 때 마치 눈처럼 소복히 날리던 하얀먼지..

그렇게 먼지가 날리고 있다고 멍하니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생각인지 문득 정신을 차리니 눈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먼지처럼 어처구니 없이 눈이 왔다..



2015년은 만약 우리나라의 날씨가 앞으로도 쭉 올해만 같다면...

서안해양성 기후의 원년이 될거라고 봄부터 쭉 말해왔다...

부엌 창밖을 내다보다 기막혀하며 내뱉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저 말도 안되게 파란 하늘.. 뭐야 이거..여기 캘리포니아야?


그렇게 가물었더랬다..

하늘은 파랗고 기후는 건조하고 좋았는데 그렇게 말할 수 없이 가물었더랬다..

올 봄...여름 동안...

그리고 그날부터.. 아버지 돌아가신 날부터 사흘동안 그렇게 미친듯이 비가 쏟아졌더랬다...


언니와 엄마는 아버지 모시고 강남성모병원으로 가고

난 간병인 아주머니를 짐을 챙겨 보내드려야 했었다..

비도 내리기 시작하고..또 마침 조금만 돌아가면 되는 길이라 성남 어디어디메까지 

태워다 드렸다..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가로등 불빛에 빗줄기가 굵은 화살처럼 내리꽂히고 있었다...


소양강댐 바닥이 쩍쩍 갈라질 정도로 가물었었는데...

그날 저녁부터 사흘동안 그렇게 정신없이... 온국민이 기다리던 단비가...

아마도 그날 잊지말라고...

우리야 장례식장에 있느라고 바깥에 천둥이 치는지 벼락이 치는지 장대비가 쏟아져도 몰랐지만..

조문 오시는 분들 사흘 내내 그렇게 생고생 시키더니..

발인날은 반짝 개어서.. 비한방울 안맞게 하고..

비 싫어하던 아버지.. 당신도 한방울 안맞으시고...

장지에 갔더니 유달리 쨍하게 빛나던 하늘...

그 자리만 유독 양지바르고...

뭐냐... 진짜... 잊어먹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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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한번으로 약속된 모임 하나는 마냥 즐겁기만 한건 아니다..

의무감이 70%쯤...

약속장소에 나가는 발걸음이 께느른하다...


목적도 분명하고, 같이 어울리기에 불편한 사람들도 아닌데..

그래서 틀림없이 어느 정도의 즐거움은 보장되어 있는데

언제나 변수는 견디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


틀림없이 그 순간이 올 것이고

그 순간의 길이와 그 순간 나의 대응이 그날의 대차대조표가 된다..


어제도 역시 그랬다..

시작은 평이했다..

오랫만의 갤러리 순례는 신선했다..


저녁을 먹을 때쯤 L선생이 합류했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술 친구가 생긴 Y대표는 흥이 올랐다..

C와 나는 C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있었고

때로는 다같이 때로는 따로 따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역시 그 순간이 시작되었다...

노인이 된다는 것..그래서 판단이 흐려진다는 것 그런 이야기 중이었다..


Y가 말했다..'난 정말 그 마음 이해가 가.. 나도 그럴거 같아..

누군가 나를 이해해주는 여자..나를 알아주고 나를 이해해주고...

그게 제일 중요해..'


C가 눙을 쳤다...'그래서 그렇게 바에 가는 거지요?'


'남자는 그렇죠.. 나를 알아주면 정말 좋죠..' L이 거들었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한테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이뻐하는 남자한테...'

 Y가 87번쯤 했던 이야기를 한번 더 시작했다...


'다른 사람한테 인정 받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해요?' 내가 그만 못참고 정색을 하고 말해 버렸다..

두 눈을 똑바로 마주보고...


'그래야 살아있는 것 같거든요... 생생하고...' Y가 울부짖듯 말했다...

이 이야기도 88번쯤 되풀이 되는 이야기이다...



#


이야기는 이어졌다..

모두가 좋아했던 K선생 이야기로 해서..나이 듦에 대해서...

각자의 실제 가족들로 해서 세대차이에 관한 이야기들 등 등 등...


그리고 L이 나에게 몸을 돌리고 이야기했다..

'이 선생.. 그러니까 해봐요..'


'아 글쎄 그럴 깜냥이 안된다니까요..'


'아니..그러니까 그런 건 그냥 덤벼야한다니까요? 다들 그렇게 저지르는 거예요..'

C가 거들었다..


'아이..진짜 또 나왔네... 바람잡기의 여왕님이라니까...'내가 말했다...


밀고 당기는 싱갱이가 계속 되었고

Y가 나섰다...


'L선생은 말야... 여자만 있으면 꼭 저렇게 둘이만 이야기하려고 든다니까..

그래서 술 친구로 좋은데 또 좋지 않아..'


'저도 남자니까 여자가 좋죠...' L이 웃으면서 넘겼다..


웃는 얼굴 밑에 은은한 정색의 낯빛을 깔고 이야기들은 계속 됐다..


'K 선생은 말야... 그러다가도 중간에 악살을 넣고 그러면 눈치 빠르게 알아차리고...

중간에 자리도 바꿔주고 그랬어.. 근데 L선생은 말야..'


'아..제가 그랬나요? 앞으로는 안 그러겠습니다..'

Y는 농담처럼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L은 자칫 어색해질 수도 있는 순간을 웃으면서 잘 넘긴다..



#


Y대표는 늘 그런 식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벗어날 줄 모른다..


옆에서 보기엔 안타깝다.. 

한걸음만 벗어나면 더 이상 돌리지 않아도 될 바퀴에서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숨을 헐떡 거리며 고단한 다리를 놀리며 나를 좀 봐달라고...

Y대표가 돌리는 쳇바퀴는 지독한 열등감과 허무감이다...


그런데 Y는 혼자만 힘든 게 아니다...

즐겁자고 모인 자리마다 자신의 그 쳇바퀴쇼를 어김없이 보여준다..

쇼가 끝날 때까지는 뿔뿔이 흩어져 제 갈길을 갈 수 조차 없는 구경꾼들이다..


L이 마무리 짓는 방식이 아니었다면 씁쓸한 뒷맛으로 남았을 저녁이었다..

누가봐도 정색의 공격을 (비록 농담의 탈을 썼지만..)

유연하게 잘 수습하는 모습은 그의 연륜인걸까? 성품인걸까?


사회적 기술이라도 그렇고 성격이라도 그렇고...

어느쪽이라도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유연하게 대처하는 사회적 기술..

연민을 느끼는 따듯한 마음...

어느 쪽도 '그만하면 충분'하게 여겨지지 않는 나라서...


그만하면 충분히 좋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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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결말

2015. 6. 25. 23:49 from 기억한올


# 기쁨의 순간은 은밀해서 함께 나누기 힘들다...


오늘 낮, 광화문...

버스에서 내려서 세종문화회관 사이길로  흥국생명 빌딩까지 걸어가는데

알수없는 즐거움과 기쁨..

그런 순간은 너무 사소하고 은밀해서 누군가와 나누기 힘들다..

그렇지만 결국..순수한 기쁨은 대충 그런것..

한 순간 밀려오는 아주 사적인 기억들이다...



# 영화를 보았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한 여정의 마무리인셈...


영화는 괜찮았다...

그만하면... 소설의 이야기를 영화라는 포맷에 맞게 그런대로 잘...

짜맞추어 넣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다가 나를 정신없이 몰입시켰던 순간들...

그런 순간들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까진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아마데우의 성격 표현이 조금 마음에 안들었다..

내가 읽은 아마데우는 거침없는 인물이란 말이야..

영화 속 아마데우는 뭔가..소심하다...


문두스(라이문드 그레고리우스)는 책에서의 인상보다는 조금 융통성 있어 보이고

다른 인물들... 생략 된 많은 인물들과 이야기들도 납득이 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스테파니아가 마음에 들었다..(영화에서는 스테파니아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상상한것처럼 예뻤다..


# 이 영화를 SH와 본건 탁월한 선택이다..

리스본 여행을 같이 했던 친구다...

영화 곳곳에 여행의 흔적이 묻어 있어서 마치 기억날듯한 장소들이 나온다..

호시우광장..호텔 옆 기차역..알파마 지구..코메르시우광장..아우구스타 거리..

테주 강..4월25일 다리...신트라...트램...상조르제 성...


내가 권하는 책을 같이 읽어주고

같은 곳에 가서 같이 책에 대한 상상을 이어가고

또 돌아와서 같은 영화를 보고 기억을 되살릴수 있어서 좋았다...

뭐랄까... 친구가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을 다 나눈..

마치 우정의 교본같은 경험이랄까?

흠...이만하면 만족스럽다...


# 시간이 약이라는 건 불문가지인셈...

여행 후반부의 피곤함과 불편함 덕에 껄끄러워진 관계를 더 식게 두는데

여러달 걸렸다..

그냥 식게 두었다..바쁘다는 핑계가 좋은 방어막이 되어주었다..

시간이 지나니 더 이상 떨어질 온도가 없다...

어느틈에 정상 체온이다..


#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책을 우연히 만나고..

리스본에 가게 되고..

여행 후 친구와 소원해지고..

다시 영화를 같이 보고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고...

걸린 시간은 총 2년...


한권의 책으로 떠난 여행 치고는 그럴듯 하다..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 덧) 생각해보니 이 모든 여행의 밑바탕에는 <리스본 삼부작>이 있었다...

리스본 삼부작의 밑바탕에는 한 친구의 리스본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하하...세상에 이처럼 인과관계가 분명한 일이라니...

알파와 오메가가 한줄로 꿰어지는 이처럼 청량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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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일기

2015. 6. 13. 13:31 from 기억한올

# 6월 하고도 15일이 지나도록 한 권의 책도 읽지 못하고 있다..

아니, 고르지 못하고 있다..

뭔가 쉬운 책, 편안한 책, 책 위에 몸을 뉘일 수 있는 그런 책이 읽고 싶다...


# 6월은 메르스로 흉흉하다..

2015년은 유래없는 가뭄으로, 또 전염병으로 두고 두고 기억될 것이다..

잘 됐다, 개인적인 기억도 그 위에 얹혀져 갈 것이다..


# 온통 예민하다.. 

예민하고 뾰족하다..

이럴 때 도움이 될까하고 시작했던 명상은 3주째 방치되어 있다..


마음이 도통 내려 앉지 못하는 때는 명상도 별 소용이 없다..

마음을 내려앉히려고 명상을 하는건 조금 더 차원 높은 사람들 이야기..

마음이 일단 어딘가 주저 앉아야 명상도 시작된다..

마음이 '붕..붕...붕' 벌떼처럼 쏘다닌다...


# 새로운 단어를 두개 배웠다..

비말.. 시조명..

비말이란 단어는 국어사전에서 검색 가능하다..

그렇지만 시조명은 국어 사전엔 빠져있다..

eponym이란 영어 단어 옆에 이름의 시조라고 씌여있다..

흠.. 아버지가 걸린 병은 어려운 말로 하자면 운동신경원 질환이고

시조명을 보자면 루게릭이다.. 


#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 계신지 6개월인 친구가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했다..

'슬픈건지 안 슬픈건지 모르겠어.. 어머니가 계신건지 안계신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이 상태가 너무 어정쩡해서 그게 힘들고 괴로운데..

이젠 그만 보내드리는 게 어머니를 위해서도 좋은 것 같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못하는거라고...

이미 기도삽관을 하고 호흡기를 달고 있기때문에 누구에게도 그 장치를 제거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이 가장 가깝게 와 닿는다..

솔직히..

내가 어떤 마음인건지..

혹은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 엄마가 언니에게 매일 매일 자신을 쏟아낸다..

그리고 언니가 우리에게 엄마에 자신을 보태서 또 쏟아낸다..

우린 그 시점에서 이미 4차 감염자들이다...


# 강한 산은 강한 알칼리로 중화 가능한건가?

어제 아침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시댁에서 다급한 전화..

충돌, 고성, 때려부심, 밀침, 공포............... 출동

어제는 머리가 아팠지만 

한잠 자고난 오늘은 차라리 태도를 정하기에 쉽다...


그래... 인생은 이렇게 계속 되는 거야...

그리고 한가지 기분에 계속 빠져 있는다는 건 너무...

작위적이야...


마른 하늘이 오늘은 밝고 명랑하다...

물론 비가 와주길 바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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