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고문

2012. 12. 8. 12:58 from 생각꼬리

얼마전..한달여전쯤?

H와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았다..

그래...바로 그...

유명한...

'고도를 기다리며..'

 

너무나 유명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는 그 '고도'

나도 한 30년쯤 그 이름을 들어왔던 그 '고도'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라는 한줄짜리 설명을 들은 것 만으로 마치 내가 고도씨를 아는양

착각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고도' 말이다..

 

그 연극을 본후 간단한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부조리극 이란 단어를 접했고..

 

부조리극이란 단어는 또 내게 고등학교 시절 불어를 가르치던

한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줄줄이 엮어 올렸는데..

 

말라르메니 부조리극이니 떠들어도 말이 안통하는 우리를,

심지어 약간의 호기심이나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우리를,

그 선생님이 얼마나 무시와 심지어 멸시의 표정으로 대했는지를 떠올렸고..

 

부르조아에 대한 경멸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편리함과 윤택함에 끌리는

양가감정에 스스로 고뇌하던..

그리고 그 고뇌를 극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날씨 좋은 날이면 학교 건물과 미술 실기동 가는 길 사이 쯤에 있는 벤치에서

온갖 시니컬하고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나 우울해'라는 오라를 온몸으로 뿜으며

머리를 팔에 묻고 앉아 계시곤 했던...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에 대한 약간의 이해와 동정과

한편 그 세련되지 못한 극적이고 과장된 표현 방식에 대한 반감과

속내를 들킨 어른을 바라보는 아이의 교만한 반발심으로

복잡미묘한 감정 속에 있었던...그런 내가 떠올랐었다..

 

그 선생님은 마르고 약간 해골같은 분위기의 얼굴형에

꾀죄죄한 양복과 와이셔츠 밑, 목위와 소매 밑으로 삐져나온 회색 내복에

산발한 머리스타일의 캐릭터이셨는데

어느모로 보나 우리학교와는 참 안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 선생님이 말라르메를 우리에게 소개해주실 때

우리의 경제적 윤택함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오는)과 거기서 오는 천진난만함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셨더라면 아마도 관계가 훨씬 부드럽게 이루어졌을텐데..

 

선생님은 어린 부르조아로 여겨지는 우리를 자신의 지식을 무기삼아 경멸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경제적 열등감과 빈곤으로 부터 오는 모멸감을 치환하려고 하신듯 하다.

 

결국 1년인지 2년만에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어 던지듯 다른 학교로 떠나셨다..

 

이 기억은 사실관계와 관계없이 온전히 나의 인상에 의거 한다는 것을 밝혀두며..

다시 고도로 돌아오면..

 

한달 여 전 쯤 그 유명한 '고도'를 이제 비로소 실제로...

아주 재미있고 즐겁게 관람했고

당시에도 많은 말과 느낌들이 내 안에서 휘돌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잡아내어 표현하지 못했고...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이미 따끈 따끈한 현재에서 살짝 빗겨난 과거의 기억으로 막 묻어 두려는 시점...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들추다 고도가 살짝 올라왔다..

올것이라고 믿는 어떤 것..

누군가는 그걸 희망이라고도 했고

또 각자 각자의 생각만큼이나 많은 고도의 의미가 있다고도 했는데..

 

그게 바로 희망 고문이었구나...

디디와 고고가 그렇게 하루 하루를 연명하게 하는것

오지 않는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며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건..내가 볼땐 희망도 아니고 메시아도 아니고

그냥 사람을 말라 죽게 만드는 고문일 뿐이다..

희망 고문..

 

그런가하면..

그 희망 고문도 없으면 어찌 살까 싶은 처지라면..

어찌 할까 싶기도 한게...

참 어렵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