盡緣

2012. 12. 13. 15:24 from 기억한올

# 부음

 

오랜만에 감기로 모든 일정을 없애버리고 세수도 안한채 빈둥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바로 이 블로그에 올릴 시시껍절한 글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10년 동안 알아온..얼마전 '다들 바쁘니 올해 송년 모임은 없을거라' 단체문자를 보냈던

사진모임 반장 동생이 전화를 했다..

내년에나 보자더니 심심했나 싶어 반갑게 전화를 받았지만 목소리가...이상하다..

'은영언니...'말을 못잇는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소식은

언제나...

늘...

너무...

이르다...

 

 

# 인연

 

처음 만난지 벌써 10년..

2002년 봄..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스튜디오 촬영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만나게 되었다..

처음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은 아마도 20여명쯤 되지 않을까?

첫 두,세번의 강의 이후엔 토요일마다 한겨레 신문사 옥상 스튜디오에

다같이 모여서 촬영수업을 했다..

한 공간에 복닥복닥 네댓시간씩 몰려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모델도 되어주며

그렇게 토요일마다 같이 보내길 3개월쯤..

그 사이에 엠티도 가고 출사 모임도 하고..

그러다보니 어느틈에 훅...친해져 있었다...

20대 초반부터 30대 끝물까지 열 몇살 차이가 무색하도록...

 

수업이 끝나고.. 

애초부터 다른 사람들은 한번 갈리워 나가고..

해마다 한,두명씩 잃어가면서도

남은 사람들은 한해, 두해...

정을 폭폭히 쌓아나갔었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그렇게 편하다고 생각할만큼...

 

 

# 그녀의 가계(家係)

 

때로 '드라마 같다, 드라마 보다 더 하다' 라고 이야기들 하지만..

인생은...

드라마 같은 일도 있고 드라마보다 더 슬픈 일도 물론 있지만...

드라마 같진 않다..

드라마에는 '극적인..'모든것들이 압축되어

극적으로 감정이 고조되어 극적인 재미를 불러 일으키는

모든 장치들이 한자리에 있지만..

 

인생은...

그저 길게 늘어질 뿐이다..

모든 일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서..

그렇지만 드라마보다 더 불운하게...  더 슬프게...

 

언니의 나이 20대 중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했다..

간암..

언니가 보여주던 흑백사진에는 젊고 예쁜 엄마와 유복하고 단란한 가정의 느낌이 있었다..

 

그 몇년 후..

남동생이 죽었다..했다...

역시 간 질환

언닌 담담하게 말했었다..

'엄마 돌아가시고 남동생이 너무 슬퍼서 술도 많이 먹고 그랬어..그래서 그랬어..'

 

우리가 알고 지낸 10년..

언니네 장례식이 두번쯤 있었다..

막내 남동생..

우린 결혼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오래 만난 예쁜 아가씨를 두고

또 그렇게...

간암으로 동생이 떠났다...

 

언제인가 쓰러지셔서 오래 병석에 계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었다..

막동이 동생이랑 순서가 바뀌어서 차라리 모르셨음 더 나았을걸 싶었지만..

 

 

# 소식

 

작년이었다..

언니가 삼성병원에 입원했다고 소식듣고 찾아 갔던게..

밝고 명랑한 모습으로 대해줬지만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이 손님 가고 나면 밤새 그렇게 운다고...

왜 안그렇겠어...같이 눈물이 났다..

 

하나 남은 언니의 피붙이..

언니의 언니와 마석으로 이사를 갔다..

둘다 결혼도 안해서 세상에 둘만 남은 자매..

 

봄에 한번, 여름에 한번..

또 올께 라고 이야기하고 가을에 한번..

가려고 가려고 생각만 하고 미루고 있었다..

마음에 걸려 있었는데..

 

천장이 높은 예쁜집..

그렇지만 난방비 많이 나와 추운 집..

이번 겨울을 따듯히 잘 보내려나 약간은 걱정되게 만들었던 집...

눈 오기 전에 가야하는데 마음에 걸려 있었는데...

 

같이 문상 가는 차안에서 현숙언니가 말했다..

'우리 마음 편하자고 하는거지..'

그러게..그렇게 얼굴 한번 더 봤으면 그나마 마음이 조금 편안했을까?

 

 

# 빈소

 

더 많이 죽는 날..좀 덜 죽는 날..

혹시 그런 통계도 있으려나?

장례는 2일장이라 했고 혹시나 살풍경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마음과는 다르게

빈소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런데 의아했던 건

여태 다녔던 장례식중에 이렇게 텅텅 빈 느낌은 처음이었다는 것..

삼성병원이었다..

어디 외진 곳도 아니고..

 

접객실이 벽으로 막혀 있지 않고 그냥 높은 칸막이로 구획지어 있어서

이쪽 접객실에 손님이 넘치면 옆 접객실까지 쓸수 있는 합리적인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저 끝까지 몇개나 되는 영안실의 접객실들이 불꺼진 채 텅비어 있는 모습을 보는건

좀 이상했다..

 

오늘따라..죽는 사람도 별로 없구나...

나 죽는 날은 다른 사람도 같이 많이 죽는게 좋을까? 덜 죽는게 좋을까?

 

빈 탁자만 놓여진 텅빈 불꺼진 접객실과 빈소를 보는건 좀 쓸쓸했지만

너무 북적거리지 않고 호젓이 하늘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종교가 없다는게...

좀 불편한 한 순간이 바로 이런 순간이었는데..

언니를 어디로 어떻게 보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

 

언니가 기독교 였으니

하나님 옆으로 보내주십사 기도를 했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