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나의 딸

2012. 8. 18. 11:51 from 생각꼬리

이제와서 딸을 바란다는건 참 가당치 않기도 하다..

그렇지만 문득 문득 딸 가진 사람들이 부러운 순간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 시댁 둘째 형님네는 딸만 둘인데

얼마나 싹싹하고 다정하고 엽엽한지 모른다..

뭐하나 버릴 구석, 나무랄 구석이라곤 없는 명랑하고 붙임성 있는 그 집 자매들은

명절에 엄마들이 주방에서 일하고 있으면 아르바이트에서 돌아오자마자 부엌에 들어와서

앞치마 치고 손을 씻고 자기 엄마를 다정하게 빽허그 하며 이렇게 말한다

'엄만 힘들었으니까 이제 좀 쉬어..내가 할께..'

 

이런 제기랄..

우리 아들? 소파 껌딱지로 부엌엔 물 떠먹을때 외엔 발걸음도 안한다..

뭐..가스 키면 폭발하는 줄 아는 아빠 밑에 자라서

비록 써먹진 않지만 요리학원도 한달 다닌

자랑스러운 아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침에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식구들 먹을 오렌지 쥬스랑 우유를 사오지 않나

산책을 갔다가 스타벅스에 들렀다며 와이프 커피를 전화로 주문받지 않나 하며

날 놀래켰던 작은 아주버님, 다른 형제들과는 참 다른게 신기하여 형님께 물어본적 있었다..

'아주버님은 원래 자상하신 거예요? 아님 딸 키우다보니 자상해 지신거예요?'

'원래 성격도 없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딸들 키우다보니 아기자기하고 자상해진거겠지..'

 

이런 젠장..

우리 남편? 딸 없는 시어머니께 딸노릇 하느라 바빠서 집에선 왕노릇한다..

우리 시어머니는 삼형제중 우리 남편이 젤 자상한 줄 안다..

자기 가족에게 그리 자상하고 몸 가볍고 다정한 울 작은 아주버님은

자기 가족 챙기느라 너무 바쁘셔서 미처 시어머니 챙길 정신이 없으니까..

 

주변에서 봐도 스물 몇살 먹은 딸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다정해져서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늘 함께 있는듯 문자도 자주 오고 '까똑 까똑' 쉴새없이 울려대는데

스물 몇살 먹은 아들넘은 붙잡고 있으면 주변에서 욕 먹는다. 올가미냐고..

근데..사실 붙잡히지도 않고 붙잡으려 들다가 괜히 맘만 상한다..

 

얼마전 혼자서 영국 여행을 다녀 온 아들..

전화로 얼마나 재밌었는지, 스코틀랜드가 얼마나 멋졌는지 이야기해주었지만

문득 문득 혼자라서 쓸쓸했다는 순간들

친구들과 같이 왔더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싶었다는 순간들...

그 순간에 내가... 없다...

 

충분히 이해는 가는게..

나라도 같은 순간 우리 엄마랑 있고 싶진 않을테니까...

그렇긴해도 나는 예의상 그렇게 펄쩍 뛰진 않았다 아들아..

두 어머니 들께 맞춰드리느라고 참 많은 양보와 희생을 했건만

너에게 그런걸 바랄 순 없는거겠지?

 

만약 딸이 있었더라면

더 많은 걸 같이 나누는 순간 들이 더 길게 이어질수도 있었겠지만..

더 길게 딸의 양보와 희생을 받아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그러한 순간... 스코틀랜드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풍경을 보며 숨을 삼키고

누군가 살짝 그리워지는 그런 쓸쓸한 순간이 온다면

나는 나의 딸이 되어야겠다..

 

내가 나에게 엄마도 되어주고 딸도 되어주고 누이도 되어주고 아내도 되어주고...

내가 나의 절친이 되어 스코틀랜드에 가보고 싶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