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말..

2017. 1. 22. 12:12 from 기억한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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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실이라는 공간은 나를 반박자쯤 느려지게 해서 

무언가에 대한 반응도 숨 한번 짧게 쉬고 나서 하게끔 한다..

섣부른 대응으로 실수하지 않으려고..

뭔가 사소하고 작은 생채기 내지 않으려고...


대상에 대한 반응이야 그렇다치고..

치료실 안에서 받은 전화에도 공간이 영향을 미치는가 싶다...


상담을 마치고 아이를 돌려보내고

뒷 정리를 하고 간단히 일지를 적고 있는데 걸려 온 YS의 전화...


일상적인 안부와 우리를 한데 엮었던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K의 이야기..

YS와는 사실 K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연락을 주고 받지도 않을 것 같은데...

이 친구가 좋거나 싫어서가 아니고...

그냥 뭔가 연결이 안된 것 같은 느낌이라..

만나면 반갑지만 굳이 만나려고 서로 애쓰지 않는 그런 정도의 사이...

그런데 어쩌다보니 K라는 공통분모가 생겨서..

그리고 지난 봄 홀연히 세상을 버린 K


'대체불가능한 친구였지.. K는...'

YS의 적절한 표현...

대체불가능한 친구였다.. 대체불가능한 사람이었다.. K는...


일년에 한, 두번.. YS와 같이 보는 대학동기였다..

그렇게 만나기 시작한 것도 몇년 안되었다..


그렇게 몇 년... 반갑고 어색서먹하게 만남을 이어갔다...

대학 시절 농담처럼 가깝게 지냈던 남자 동기...

개족보에 큰오빠라고 이름을 올리고 장난치던 사이...


몇십년 만에 다시 만나 어린 시절 꽃미모는 다 잃었어도

깐족 깐족 얄미운 투로 정답게 말하는 버릇은 여전하던 친구...


홀홀 단신 외로운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사무친 줄은 몰랐다..

진짜 오빠처럼 사소하고 다정하게 챙겨주어서

그냥 응석부리듯 받기만 했다...


한번을 먼저 챙긴적 없어서..

그래서 너무 미안했다...


일년에 한두번 만나던 친구인데...

그 한두번이 너무 필요한 한두번이라...

그 맘때가 되면 사무치게 그리운

대체불가한 친구...


날 풀리면 K에게 한번 다녀오자고 YS와 이야기했다..

반박자쯤 쉬고 천천히 다정하게 이야기했다..

공간의 영향인건지 내용의 영향인건지..

솔직해도 편안했던 통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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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상담을 하는 이유를 가끔 생각해본다..

실은...

내가 누군가를 돕고자 함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의 나를 느끼고자 함이 아닌가 싶다..

그럴 것이다..

나는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는데 반박할 생각이 없고

그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확인해야하는 것..

그건 그저 일반적인 일이고..

나 역시 그렇다...



J 엄마: J야, 너 어릴 때 여기 왔었잖아.. 언어 치료 받았던 거.. 생각 안나?

J: 생각나..

나: 아.. 그랬구나.. J 여기 왔었구나..선생님은 J가 여기 처음인줄 알았네?

J 엄마: 그래.. 여기 이방 생각나지?

J: 응..근데 달라졌어...그리고...

 선생님이 다르잖아...


J는 지난 주에 처음 만난 아동인데 지난 주 간단한 심리검사를 하고 간단한 그림을 한장 그리고 돌아갔다..

이번 주 만나 일주일간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즐거웠던 일에 대해 묻자

그림을 그렸던 일이라고 했다..

다시 한번 확인을 하니 일주일 전 나와 만나 그림을 그렸던 일이 생각나는 가장 즐거웠던 일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다르잖아.'가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묻지 않아도 알수있는 그런 게 있다..

그런 것들이 나를 기쁘게 한다..

그런 작은 말들...


그래서 상담을 한다..

이기적인 이유로...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