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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이렇게 뭉텅 기억이 잘라지는 순간이 오는구나..

흔하디 흔한 일상이 아니라 그래도 어떤 특정한 순간인데 

내 머리 속 기억을 도무지 캘린더와 맞출 수가 없다..

모든 개인적인 것들은 주관적인 세계속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채 객관적인 세상과 만나지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마운트 샤스타-나파밸리

여행에 대한 기억은 있으되..배경이 되는 시간에 대한 기억이 없다..

도대체가 이천십...몇년이었나? 

이렇게 잊어먹어도 되나 싶다..


추측해보건데.. 2012년에 씽잉볼을 시작했었고 (그런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

2014년에 아들과 시카고에서 코네티컷으로 이사하는 여행을 했고...

그렇다면.. 2013년쯤이라야 맞을 거 같은데... 

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어딘가 컴퓨터 안에 흩어져 저장되어 있는 사진을 찾아보는건데...

좀 귀찮다.. 나중에....


그래서 다시 끄적거려야할 분명한 이유를 하나 찾는다...

뒤죽박죽 된 기억들을 좀더 가지런히 정렬시키기 위해 기댈 날짜의 골격이 필요하다...

적어도 어느 해 어디로 여행을 갔었는지 정도는 기억했으면 좋겠다..


올해 (2018년)

난 벌써 세군데를 다녀왔다..


2월 인도 라자스탄(델리-우다이푸르-자이푸르-아그라)

3월 남도 봄꽃 구경(장흥-강진-고흥)

4월 일본 가족여행(요나고 돗토리)


언제 어디 갔었는지 정도는 짝을 맞추고 살았으면 좋겠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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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샌프란시스코 여행의 기억에 대한 추적에 나서게 된 건 케루악의 <길 위에서>때문이다.

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처음 들어본 게(엄밀히 말하면 '들은 게' 아니고 눈으로 '본 게') 

샌프란시스코 여행 책자였다.


가이드북에 '비트 문학의 산실인 어쩌구 저쩌구 지역'(노스 비치 지역의 시티 라이츠 서점)에 대한 정보가 흥미를 

끌었지만 소개되어 있는 작가들을 하나도 모른다는 점 때문에 굳이 찾아가지는 않았었다..

긴즈버그니 케루악이니.. 그런 이름들 그때 처음 들어본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면..

한 번쯤 읽어봐야지...

그때도 마음만 그렇게 먹었었다...


작년(2017년) 말쯤? 우연히 데인 드한이라는 배우의 얼굴을 보게되었다..

아.. 이런 얼굴이라면 몬스터의 주인공을 하면 딱일텐데...

만화를 영화화하며 주인공을 캐스팅하려는 오래 전 공상 습관이 발동했다..

필모그래피를 보다가 <Kill Your Darling>을 발견했고 

영화평 몇개를 찾아읽고 곧바로 영화도 보았다..


바로 그 세대... 비트 제너레이션 대표선수들의 영화였다..

그들이 아직 비트세대로 명명되어 지기 이전에 어떻게 그런 정신이 태동되는가 정도의...

간추려 말하자면 프롤로그나 프리퀄 정도?


흠.. 이렇게 비트문학 중심주의의 관점에서 말하는 건 한사람의 인생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진다...

사실 영화는 비트문학의 중심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비트문학과는 전혀 무관한 

한 사람의 인생스토리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누군가의 인생...


결과적으로 무명으로 남은 한 인간, 루시엔 카의 인생에 

결과적으로 유명해져버린 여러 인물들, 긴즈버그나 케루악, 버로스 등이 끼어든 것 뿐이다...


어쨋든 영화 속에는 후에 비트문학 그 자체가 되는 인물들이 대거 등장...

다시 한번 비트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나는 원래 시(긴즈버그)와는 별로 안 친하니..

그래.. 소설(케루악)은 읽을 수 있겠지?

그렇게 뭘 읽을지까지 정해두고 다시 밀쳐두고...


그리고 3월(2018) 독서모임..

선정된 도서는 <더 글라스 캐슬> 저넷 월스라는 여성 편집자의 유년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이다..

저넷의 부모에 대해 '도대체가 어떤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사는가.. 이런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가...'

를 최대한 이해하려고 들다가 비트 세대를 떠올렸다...

저넷의 부모들이 결혼한 날짜를 보니 얼추...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비로소...<길 위에서>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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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은 다른 사진도 꺼냈다. 이런 사진을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 부모들이 아무 일 없이 평온하게 사진 안에 들어갈 만한 인생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 자랑스럽게 인생의 보도를 걸어갔다고 생각하게 될까.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진짜 인생이, 진짜 밤이, 그 지옥이, 무의미한 악몽의 길이 거친 광기와 방탕으로 가득했단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의 내면은 끝도 시작도 없이 공허하다. 무지가 갖가지 슬픔을 빚어낸다. “안녕, 안녕.” 딘은 길게 뻗은 붉은 어스름 속을 걸어갔다. 기관차가 연기를 뿜으며 그의 위에서 흔들렸다. 그의 그림자가 그를 쫓아가면서 그의 걸음을, 생각을, 존재를 흉내 냈다. 그는 뒤돌아서서 수줍은 듯이 손을 흔들었다. 제동수의 발차 신호를 보내고는 펄쩍 펄쩍 뛰면서 뭐라고 외쳤지만 들리지 않았다. 원을 그리며 달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점점 구름다리의 콘크리트 모퉁이로 다가갔다. 마지막 신호를 보냈다. 나도 손을 흔들어 답했다. 갑자기 딘이 자신의 인생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나의 날들이 무미해진 것을 바라보았다. 이 앞에도 또 끔찍하게 긴 길이 있지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도, 누구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한다. 버려진 누더기처럼 늙어가는 것밖에 알지 못한다. 그럴 때 나는 딘 모리아티를 생각한다. 끝내 찾아내지 못했던 아버지, 늙은 딘 모리아티도 생각하면서, 딘 모리아티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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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많은 케루악 연구자들이 인용하는 "로마 꽃불"의 구절일 것이다.. 나도 동의한다..

딘 모리아티(닐 캐시디)가 될 수 없다면 샐 파라다이스(잭 케루악)가 되고 싶을 테니까...


...나는 내 관심을 끄는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처럼 휘청거리며 그들을 쫓았다. 왜냐하면 내게는 오로지 미친 사람, 즉 미친듯이 살고 미친듯이 말하고 미친듯이 구원받으려 하고 뭐든지 욕망하고 절대 하품이나 진부한 말을 하지 않으며......다만 멋진 로마 꽃불이 솟아올라 하늘의 별을 가로지르는 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그런 사람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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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라스 캐슬>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길 위에서>를 읽으며 난 이미 저 위의 인용문.. 

즉 사진 속에 들어간 나이라는 걸 깨닫는다...

로마 꽃불을 쫓기에는 눈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벌써 숨이 가쁘다...


나는 이미 사진 속에 들어가 있는데...

평온하게 굳어있는 한 장의 사진... 

그 이면의 반전이 없는 인생..

그냥 보이는 그대로의 삶이었다는게 

왠지 좀 서글프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