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2016. 8. 4. 20:06 from 카테고리 없음


1. 

이 책을 먼저 읽은 적 있는 독서회 친구 S와 J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 책... 잘 쓰였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불편해..'

그 불편함을 역시 먼저 책을 읽은 남자 회원들은 '취향이 아닌거지..'라고 돌려버렸다.


상 받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읽지 않았을 책..

아니.. 읽었더라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책..

한번 읽고 '뭐야? 이거..' 하고 던져 놓았을 책...


불편하게 만드는 그저 그렇고 그런 책...


여성작가들의 책은 나를 좀 불편하게 한다..

(진짜 여성작가들인지 정확하게 말하긴 힘들지만

대체적인 느낌이 그렇다..)


그들 몇몇의 책은 내게 지나치게 섬세한, 접근하기 힘든 자기만의 어떤 세상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마치 초대장을 받지 못한 아이가 닫힌 문앞에서 안쪽을 힐끔거리는 기분...


세상과 동떨어진 하늘거리는 흰옷을 입고 춤추는 것 같은 그런 세계


읽다보면 그들의 감성을 나만 이해 못하는 것 같고

나만 투박한것 같고

나만 탁한 것 같고

나만 부박하니 얕은 것 같다..


마치 어떤 아이가 거칠고 투박하고 마디진 손을 하얗고 가늘고 고운 손 옆에 우연히 두었을 때 느껴지는 부끄러움같은..

그런것..

그 순간 그 하얗고 가늘고 고운 손의 주인은 아무 이유없이 유죄다..


내 마음속의 법정에선 매일 매일 매 순간순간 유죄선고가 내려진다..

나의 어리석음과 나의 얕음과 나의 경박함과 나의 무딤과 나의 거칠음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나의 부끄러움과 나의 질시를 일으키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법봉을 내리친다..

'땅 땅 땅'

'유죄를 선고하노라.. 유죄를 선고하노라..'


2.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인물들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아니.. 인간은 멀리서 보면 알것도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이해 할 수 없다..

초점을 가까이로 옮기면 옮길 수록 타인은 철저하게 낯선 존재가 되어간다..

심지어 작가가 거의 1인칭 화자처럼 초 근접거리에 그들을 가져다놓아도...

작가가 빙의되어 있는 등장 인물들에 공감하지 못하는 생경함은 불편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혜..

남편의 관점에서 볼 때는 있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는데 남편보다 심리적으로 더 가까운 인혜의 관점이 되자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을 이해하라고 들이댄다.. 작가가...

그저 우리 세상에 내 이웃으로, 지인의 지인쯤으로 존재할 수도 있는 채식주의자가

어느틈에 경계를 넘어갔는데 

그 경계를 넘은 인물을 정신병동에서 보았던 수많은 환자중의 한명처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순백의 옷을 입고 나무가 되고 싶어하는 해맑은 그는 어느틈에 나를 가해자의 줄에 세운다..

마치 인혜를 그렇게 했던 것 처럼..

폭력을 방조한것.. 말리지 못한것...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영혜는 모순 없이 존재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투박하고 마디 굵은 손을 가진 나는...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에 대한 잠시 잠깐의 동정심을 뒤로하고 저녁 찬거리로 고기를 장바구니에 넣고..

동물들에 대한 죄책감을 뒤로 한채 '그래도 맛있는 걸.. 영양학적으로 필요해..그러니까 이왕이면 방목해서 키운 육류를

사는 게 좋겠어..'라고 변명을 하며...

모순으로 똘똘 뭉친 자아를 보호한다..


그렇게 순수하게 자기가 믿는 세계로 넘어가버리는 그런...

힘있는 일관성이 나에겐 없다..

그렇게 예민하게 자신이 아닌것을 거부하는 결벽함이 나에겐 없다..


영혜는 그렇게..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하얗고 예쁜 손처럼..결벽하고 예민함으로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래서 유죄...


인혜는..

실은 우리랑 가장 닮은 인간이어야 하는 인혜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장사도 잘하는 인혜는...

그 어마무시한 참을성과 양심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한걸음 뒤에서 보면 인생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가장 무거운 짐을 진 인혜가 부처님 반토막 같은 마음으로 남편을 이해하고

영혜를 돌보고..심지어 영혜에 대해 죄책감까지 갖는다면..


병든 와이프를 버리고 도망쳤다고 평을 듣는..

어찌보면 가장 이해하기 쉬운 인물인 영혜의 남편을 악의 평범한 얼굴로 규정해버린다면..

나는 과연 어느 편에 가서 서야 하는가..

악다구니 한번없이 그 모든 걸 고스란히 감내하는 인혜조차 방조의 죄로 가해자의 편에 서있다면...


구경꾼도 악의 동조자.. 방관자도 가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인혜의 양심...

그래서 유죄..


인간의 모순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 너는 유죄...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