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3

2016. 2. 16. 13:59 from 생각꼬리

# 아침에 눈 뜨기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이 제일 우울하다.. 침대 속에 오래 누워있으면 누워있을수록 더 우울하다..

그래서 바쁠 때는 우울함을 모르고 여유가 있을 때 더 가라앉는다...

비몽 사몽 간에 생각해보니 죽음에서 일어나는 일이 쉬울리가 없다..

하루의 잠을 한번의 작은 죽음에 비유한 글을 어디선가 읽은 것 같다..

우리 몸 상태가 일종의 작은 죽음과 같은 상태에 빠졌다가 나오는 거라고..(물론 과장이 있겠지만..)

부활이 쉬울리 없다..

한번 더 태어나야 하는데서 오는 걱정과 우울이 없으면 이상한 걸수도 있다..




# 아사독과 하디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 <테스>를 읽었고 하디는 그저 그런 작가였다..

테스를 이해하기도 싫었고 엔젤 클레어는 더 더욱...

어린 내 눈엔 그저 찌질남이었으니까...


최근 아사독때문에 <이름없는 주드>를 읽었고 하디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

최근 읽은 소설 중 손에 꼽을 만 하다..


영화 <테스>는 기억에 남아있는데 나타샤 킨스키가 워낙 인상적으로 예쁘기도 했고

어린 눈으로 보기에도 표현이 출중한 몇몇 장면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테스가 그 남자(알렉)를 살해하는 장면.. 

이층에서 칼에 찔려서 엎어져 있는 남자의 시신으로부터 나오는 피가 바닥에 고이다가

점차 일층의 천정에 얼룩을 그리면서 점점 더 얼룩이 커지고...(아래 층엔 노파가 살았던거 같다.. )


서둘러 도망쳐간 테스와 엔젤 클레어가 도달했던 스톤 헨지와 저녁 노을...

지쳐 있던 테스와 엔젤 클레어의 아득한 심정이 순간 크게 다가왔던 기억..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는 듯한 막막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장면은 엔젤 클레어가 테스를 연모하며 물이 불어난 개울을 안아서 건네주는 장면..

테스를 건네주기 위해 같이 일하는 다른 여자들을 다 안아서 건네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던 순정남...

(뭐.. 그래서 배신감이 더 컸지만...찌질한 놈...)


여기엔 같이 딸려오는 곁다리 기억도 하나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고등학교 친구들과 같이 당일치기 낚시여행을 갔었는데

비슷한 상황에서 발을 적시지 않고 싶었던 여자 아이들을 병수가 발을 벗고 개울에 들어가서 한명씩 업어서 건네 주었다..

그때 그 상황이 영화 <테스>에 나왔던 장면과 유사하다는 건 그때도 이미 했었던 생각이고.. (속으로만...)


영화 <테스>가 81년 10월 개봉이라니까 나 고1때...

영화 보기 전 소설을 읽은 기억이 확실하니까.. 소설은 고등학교 초반이나 중학교 때 읽었을테고...

낚시 여행은 84년 봄 (아마도 4월쯤?)

기억의 퍼즐이 이렇게 순차적으로 맞춰지다니...(상쾌하다...)




# 위로의 타이밍 혹은 진정성


우정의 효용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과연 우정은 왜 필요한 것인가?'

언뜻 떠오르는 생각은 상투적인 표현대로 즐거움도 슬픔도 (혹은 어려움도) 같이 나누기 위해서...

(같이 나누는 것은 즐거움을 배가 시키고 어려움을 감소 시킨다..라고 한다...)

또 우정이란 타인들이 서로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감격스럽게 느꼈던 순간의 기억도 떠오르고..)


소소하게는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을 서로 편하게 나누며 즐거움과 위로의 원천이 되는 인간관계를 제공하기 때문에..

결국 같은 말의 반복이구나..

지금 내 머리 속에선 더 이상은 안나온다...


어쨋거나...

친구들에게 일상적인 여러가지 어려움을 호소하고 공감과 지지와 위로와 조언을 받는 것은 친교의 아주 기본적인 일중 하나인데..

때로는 그 일들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때로는 그렇지 않다..


왜일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진정성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저 단순한 타이밍의 문제 아닌가?

주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어떤 게 또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진심은 통한다.' 따위의 단선적인 믿음에 매달릴만큼 순진하지도 독선적이지도 않아서...

진심도 안 통할 수도 있고, 상투적인 말에도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며, 내 진심과 네 진심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같은 대상에 대한 같은 태도, 같은 내용도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다 다르게 작동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코드가 일치하는 순간.. 타이밍의 문제가 아닐까?


이렇게 또, 하나의 순간이 우리의 의지를 배반하고 통제불가능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듯 하다가...



지난 번 M에게 받았던 조언이 내 안의 무엇인가를 풀어버렸다...

M은 나에게 유별난 공감도 지지도 조언도 표현하지 않고 그냥 내 상대의 입장에 자신을 투영하여 '자신이 그 상황일때

어떠했다.'라는 감정적 입장만을 전달해주었는데...

사실.. 이런 일은 흔한 일이라.. 나도 혹은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일이고 M이 유별나게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비슷한 상황,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중에 유독 M의 이야기만 내 마음 속의 무언가를 치고.. 풀어버렸을까?

그건 역시 그냥 타이밍의 문제인건가?


아니면 역시... 유달리 진지한 M의 태도인건가?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