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 의 좌표

2012. 4. 3. 18:36 from 생각꼬리

X 라는 친구가 있다.

어렸을때는 - 다분히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나의 시각으로 -

공부만 잘 하는 친구였다.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없었으므로 주관적이라 하기도 그렇고

누군가에게 확인한 바 없으니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아이들의 분포를 좌표상에 마구 위치 시켜 놓았을때 공부는 잘하나 존재감은 그닥...

아이들 사이에서의 역학관계상 그렇게 보인다는 거다...

내게는 그런 이미지인거다..

 

청소년기의 X 와 학창 시절을 같이한 친구를 만났다..(친구 A)

지정학적으로 가까이에 위치했으나 (같은 반..짝 내지는 그 주변..)

기질적, 정서적, 심리적 거리감이 있어보이는  A는

X를 공부만 잘했던 친구 + (-a) 의 연상이 들게끔 표현한다..

딱 그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A가 골라 쓰는 어휘속에서

'남자 답지 못했...' '답답했...' '조용하고, 어리숙하고, 여전히 존재감 없던..'

느낌을 받게끔 한다...

 

X 를 알게 됬을때  X 는 이미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한 위치였다..

'공부만 잘했던' 을 증명하여 우수한 학벌에,

하고 있는 일도 어느정도 궤도에 올려 놓고 있었고

어린 시절 이미지의 최대의 단점이었던 공부 '' 에서 벗어나서

공부'' 잘했던 A 못지 않게 우리 사회가 남자들에게 요구하는

여러가지 사회성의 경우의 수를 다각도로 충족하고 있는듯 보였다..

능력 '도' 있고, 인간 관계의 폭 '도' 넓고, 적절한 사회적 스킬 '도' 갖춘...

당시의 X 에 대한 내 주관적인 평가중 부정적인 부분은 '성공 제일 주의의 가치관' 정도?

다른 사람들의 평가 역시 그런 면에서 일치하는 점이 있었던 걸 보면

X 가 언뜻 언뜻 언행에서 그런식의 가치관이나 엘리트 의식등을 흘렸던 거 같다.

 

그후, 10년..

10년전에 분명히 느꼇던 그런 부분을 어느틈에 못 느낀다..

그 사이 원하는것을 더 많이 채운 (물질적인 부분을 말하는건 아니다..)

 X 가 정신적으로 더 여유로와진건지

아니면 그 사이에 크고 작은 사회적 경험을 통해 역시나 성장하고 성숙해진건지...

X 의 삶의 궤적은 알수가 없지만..

분명한 건 10년전에 내가 느꼈던 무엇은 지금은 없다..

그냥 좀 더 여유있고 현명하게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뿐이다..

그리고 내 머리속에서 X 의 좌표들이 그리는 그래프가 보여진다..

 

Y 가 있다.

10년 전의 Y에 대해 약간의 부정적인 느낌이 있다..

10년 후의 Y가 10년 전쯤 어떤 실수를 했던 B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그 실수로

B를 설명하려는 걸 보고 막았다..

'그건 오래전 일이고 그 친구도 더 이상은 안그래..'

내가 Y 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좁고 단편적이라는 느낌..

10년 후에도 Y는 내게 여전히 그 느낌을 주었고

나는 Y를 더 알아보려는 노력 조차를 안하게 된다..

나 역시도 또 다른 Y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Z 가 있다..

Z는 나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속에서 내가 어떤 좌표들의 궤적을 따라

어떤 모양의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그리려는 그래프의 모양을 따라 좌표를 설정하고

그 좌표들을 찾아 이동해야 하는건 내 몫이다..

 

 

ps.

X 의 경우와 Y 의 경우..

기회의 문제 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X가 10년전에도 지금과 같은 사고를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그걸 알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지금 우연히 난 그걸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에

내 맘속에서 X 의 좌표 이동이 일어난거지

X 가 달라진건 아닐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Y 또한..

Y의 좌표도 어디론가 이동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내게 그걸 알아볼 기회가 없었던 것일수도 있고...

내 스스로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Y 가 B 를 보는 시각으로

Y 를 보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labosque :

나도 대학교때 건축학과 수업을 들은 기억이 있다..

내가 들었던 수업은 영화처럼 낭만적이거나 매력적인 기억이 전혀 없다..

 

나도 건축학과에 아는 남자 아이 하나쯤은 있었다...

역시나 아련하고 예쁜 기억대신 맹숭맹숭하고 살짝 씁쓸한 흐릿한 기억이 하나 있을 뿐이다..

 

나도 누군가의 첫사랑이었을 테고

누군가 또한 내 첫사랑이었다..

다만 우리가 서로의 첫사랑이었는지는 평생 의문이다...(왠지 아닐거라는데 한표)

 

오랫동안 어떤 기억에 매달려 있다가

기여코 확인했던 경험들이 있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어린시절 살던 집..

그 집과 마당과 마당안에 핀 채송화, 나팔꽃, 분꽃등이 그리웠던 어느날..

사실은 엄마 아빠께 야단 맞고 내 행복은 어린시절 그 집과 이별하면서 다 사라졌다고 믿으며

집을 뛰쳐나왔던 어느날 (아마도 중학교 2,3학년 무렵?)

떠나온지 7~8년만에 찾아갔었다..

 

혼자서 가본건 처음이었고,  이사오고 나서 한번 언니랑 놀러갔다 오다가

길을 잃고 고생한 이후로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저녁 어스름에 옛 기억과 알고 있는 정보들을 종함해 찾아 간 우리집...

그 골목길은 내 어릴때 기억보다 세배쯤 더 좁고 남루했다..

 

그런데..

그곳이 내 기억과 어떻게 다른지 내 기억의 미화되고 각색된 부분을 하나 하나 집어가는건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게...

 

우리집은 사라지고 없었다...

 

마당이 너른 편이었던 우리집에..

좁고 불편한 옛집을 모두 헐어버리고 우물과 펌프가 있던 마당을 다 차지하도록

크고 번듯한 새집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던 거다...

 

참 모양없고 본때없게...

 

더 이상 돌아갈 기억도 없어진 나는

하루만의 가출을 마치고 터덜 터덜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물론 아침에 맨몸으로 빈손으로 동전 한 잎 안챙기고 울면서 쌩하니 집을 나가버린

나 때문에 엄마는 그날 하루치 만으로도 마음 고생을 충분히 하셨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한동안은 그리워 할 기억조차 잃어버린게 속상해서 그날의 그 방문을 스스로 원망했었다..

 

 

첫사랑과도..

 

역시나 재회했었다..

한 이틀, 마음이 산란하고 두근거리고 '싱숭 생숭'했지만..

두어번 더 보게 되니 조용히 내려지는 결론..

'우리가 헤어진건 알수 없는 무언가가 안맞기 때문이었어..'

 

헤어질 때, 이유를 정확히 발라내진 못한,

어떤 감정의 손톱만한 무언가가 있었다면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역시 그 부분이 그 사람의 본질이라는거...

 

딱 꼬집어 가르키거나 집어낼수 없는 무언가...

헤어지게 만든 무엇...

서로 안맞는 무엇...

 

그러고나니 그 사람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첫사랑에 대한 근거없는 의미 부여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었다..

 

결국 기억의 확인은 그리움의 종결자인 셈인가?

 

 

 

* 영화는 매우 훌륭했다..

갓 대학생(한명은 재수생)이 된 두 소년이 술 마시고 담배 피고 마치 어른인듯 행동해도

감정과 관계의 서툼에 어찌할바 모르고 쩔쩔 매는 모습들이 참....

예뻣다고 말하는 나는 참으로 늙었구나... 에효~

 

* 한가인이 안 어울린다는건 아닌데..

수지가 정말 좋았고 수지와 전지현이라면 씽크로율 99% 일텐데 라는 아쉬움이 있다..

이제훈과 엄태웅 씽크로율에 비해 수지와 한가인 씽크로율이 좀 떨어지는 게 아쉬워서..

 

Posted by labosque :

아이덴티티

2012. 3. 30. 17:07 from 생각꼬리

H양의 포스팅에 댓글을 남겼다..

H양의 글은 '타인이 무심결에 내 뱉는 말들에 내가 상처 입는것처럼

나도 혹시나 인식 못하는 채로 누군가에게 상처주는 말을 할지 모른다' 라는 거였고

내 댓글 또한 '세상이 지뢰밭인거 같지만 실은 나도 폭탄이었어 ㅠ.ㅠ'라는 동조성 발언..

 

그 구절을 곱씹다가 [아이덴티티]가 떠올라 왔다..

반전의 결말이 너무 강렬하게 각인되어 그동안 눌려 있었던

'자기 인식의 순간'이 갑자기 떠오른것이다..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이 한명씩 한명씩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들은 도대체 누가 범인일까에 대해 의문과 공포에 휩싸인다..

결국 시청자가 주인공급으로 생각해왔던 인물마저 스스로 자기의 존재가 누구라는걸

깨닫자 죽음으로써 살인자의 아이덴티티가 되는것을 거부하려하나.....

 

다시 보고 싶은 영화 목록에 넣어야겠다...

주인공의 각성과 시청자의 각성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는 멋진 영화였는데

 

자기인식이란게 머리속에 불이 번쩍 치듯 일어날 수도 있고

또 그냥 그런 뻔한 이야기 속에서 입에 발린 말, 어디서 들어본 이야기처럼 범상하게 다가올 때도 있고...

그런 자질구레한 순간들도 되도록 싸안고 가고 싶은데..

왜 이리 말이 튀나 모르겠다..

 

어쨋거나 나도 폭탄이다..잊지말자...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