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0. 20:41 from 기억한올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하다못해 꽃 구경도...
매화마을 매화꽃 축제에 맞춰 떠난 섬진강 여행은
꽃구경의 측면만 놓고 보자면 한마디로 '꽝'이었다..

꽃구경이란건...
꽃들은 그저 피어 있고, 우리는 그저 봄바람 타고 살랑 살랑 나들이 가면 되는..
그런일이 아니었던 거다..

'꽃구경'이란 말의 도대체 어디에 무게감이 숨어있나..
그저 바람에 나풀 나풀 날릴거 같은데...

여기서 '모든 것은 때가 있다'라는 말의 그 '때'...
그 '때'라는 말이 쓰나미처럼 어마어마한 중량감으로 꽃구경을 덥쳐오는거다..

굳이 생각해보자면..
어긋난 '타이밍' 때문에 황망하고, 먹먹하고, 안타깝고, 씁쓸한 기억 한,두가지쯤은
누구나 있을 터...
'꽝'된 매화 구경 정도는 그저 가뿐하게 내년을 기약해버리면 될 일이다..

너무 일러서..혹은 너무 늦어서...
죽지도, 살지도, 가슴을 치지도...
않을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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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화마을에서 업어온 매화>
꽃망울만 맺혀있는걸 데려와서 어제 분에 심었는데 오늘 활짝 피어 버리고말았다..

Posted by labosque :

Sora

2012. 3. 20. 19:27 from 기억한올

소라는 6개의 이름을 가진 아이였다..
소라..클레어..야야...세개밖에 기억안난다..
소라라는 이름만으로도 특이하고 이쁜데 6개의 이름이라니...
'영한' 따위의 남자스러운 이름으로 골치가 아팠던  나로서는
너무 부럽고 신기해서 말도 안나왔었다..

소라는 뭉크를 좋아한다고 했다..
'뭉크'라니...
그런 이상한 뭉텅스러운 이름의 화가도 있단 말인가?
게다가 화집에서 짚어준 그 그림..'절규'
'이런것도 그림이란 말인가?'
가능하다면 나도 마구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상한 약속을 시켰었다..
오래동안 스스로 부끄러워해서 그 애 앞에 나서지 못하게 만든 약속..
'우리 이상해지자..이상한 어른이 되자'
그때 난...
무척이나 이상해지고 싶었지만 난...
그다지 이상하게 되지는 못하리란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랬지만...
친구를 실망시키고 싶진 않았기에..
열의를 다해 약속을 했다..


오늘 다시 만나서 차 한잔을 하며..
둘만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건 30년만의 일이다..

항상 그리워했지만 기회를 만들지 않았던 건
그리움이 충분치 않아서일까?

아니면 실체없는 그리움이 세월의 어색함과 그에 따른 빈곤한 화제의 벽을 넘지
못하리라는 걸 아는 현실적인 감각이 지나치게 발달한 때문인건가..

그도 아니면 여간해서 결코 먼저 손 내밀지 않는
그저 타성에 젖어 늘 그렇듯 소극적인 삶의 방식을 지향하고 있는
내 오래된 습성 때문인가...

년전에 그녀에 대한 꿈을 꾼적이 있다..
그녀가 등장하지는 않았었고
그냥 이야기만 들었다..
'죽었다고..'

꿈속에 나는 꽤나 슬퍼했던 것 같다..
후회도 많이 했고..
마음만 먹으면 만날수 있음을, 닿을수 있음을 알면서도
실체없는 그리움속에 가두어두고 있었던 걸..

깨고나서 그 일이 꿈이라는 걸 알았을때의 안도감..
그리고 다짐
연락해보리라..
만나리라..
후회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 다짐은 또 한번 허망하게 스러져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손 닿는 곳에 있었고..
언젠가 마주 앉을 때가 오리란 걸...
믿어 의심치 않은건 아니지만...
그냥 그런 날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처럼..
어렸을때의 이야기를 하고
이사도라 던컨과 뭉크의 이야기를 하고..
그녀의 가족들..
개 (쉬바 라는 이름이었단다)
그리고 꼭 말하고 싶었던 그 '약속'에 대해
나누는 날이 오리란걸...
그냥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이 왔다.....
Posted by labosque :

생활의 발견

2012. 3. 19. 21:00 from 기억한올

 

15년을 살았다..
앉은 자리에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사람만 모르고 산줄 알았는데..
길도...
몰랐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막다른 길이다..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길이 같다..

택시를 타고 들어오는 날엔 어김없이
' 아저씨 저기 세워주시구요...끊어진데서 돌아나가세요' 한다..
길은 이어져 보이지만 출입구는 없다.

아니 없는 줄 알았다..
차에게 없으니까 사람 에게도 없는 줄...

아파트 길  끄트머리엔 고속도로변에 세워 놓은 방음벽이 있는데
그 옆으로 길이 나있다는 걸 안지 채 얼마 되지 않았다..

 
어디로 이어진지 모르는 오롯한 샛길이 나 있는걸 보고
차일 피일 하다가 드디어 큰 맘먹고 걸어보았다..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오솔길..

폭 1M 남짓의 작은 길이지만
흙으로 덮여있고 나무도 양쪽에 두어줄 서 있고하여..
제법 오솔길 답다..

무엇보다 인적이 없고 드물게 마주치는 산책 나온 주민들..
나름 산책로라 이름 붙여줄만한 호젓함..




중간에 거리를 하나 건너면 롯데 아파트 앞까지 이어진다..

롯데 아파트 안쪽에선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게
이 동네에 살고도 15년간 몰랐던 경부 고속도로 밑을 관통하는 토끼굴..

그걸 건너면 신사동 번화가가 나온다..

이 아파트 사람들은 이걸 건너서 버스도 타러가고
집앞에서 한잔, 치맥도 하러가고..

여러가지 일들이 많았겠구나..
싶은 순간...

세상엔 나 모르는 새 별별일들이 다 일어나고 있을거 같은 기분..

담번엔 친구랑 이 길을 걸어
저 골목안 선술집에서 맥주 한잔을 하리라 마음 먹으며...



집으로 다시 걸어오는데 새시랑 새시랑 대나무가 바람을 붙잡고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조그마한 대 숲..
아니 숲이라기엔 좀 민망한 대 뭉치 쯤?

어쨋거나 대나무숲에 바람이 들면 이런 소리가 나는구나..
처음 알았다..

글로 배운걸 이렇게 동네 뒷길에서 익히기도 한다..



아파트 위로 떠 있는 별을 보며..
별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없음을 늘 안타까와하며...

생활의 발견을 마쳤다..


*곰양 블로그 따라하기*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