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는 6개의 이름을 가진 아이였다..
소라..클레어..야야...세개밖에 기억안난다..
소라라는 이름만으로도 특이하고 이쁜데 6개의 이름이라니...
너무 부럽고 신기해서 말도 안나왔었다..
소라는 뭉크를 좋아한다고 했다..
'뭉크'라니...
가능하다면 나도 마구 비명을 지르고 싶어졌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상한 약속을 시켰었다..
오래동안 스스로 부끄러워해서 그 애 앞에 나서지 못하게 만든 약속..
그때 난...
무척이나 이상해지고 싶었지만 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랬지만...
친구를 실망시키고 싶진 않았기에..
열의를 다해 약속을 했다..
2006년 5월
어제가 MoMA의 뭉크 특별전 마지막 날이었다..
감기 뒤끝에 아직까지 개운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추스려서 꼭 가보고 싶었다..
뭉크에는 특별한 기억이 있다..
사실 이 작가를 특별히 잘 안다거나..특별히 좋아했다거나..
그런건 아니다..
다만 내가 아주 어렸을적..
중 3때니까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나는 미술책에 나온 고흐, 고갱, 세잔느를 겨우 알무렵
나에게 뭉크라는 화가도 있다는걸 가르쳐준
한 친구..그 친구의 기억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뭉크라는 이상한 이름..
절규라는 이상한 그림..
그 화집을 보여주며
이사도라 던컨과 뭉크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던
어린 내 친구..
그 친구와 가까왔던 몇달은
70~80년대 남루했던 일상풍경에
살짝 빗겨 들어온 신기루 같은 기분이다..
항상 그리워하는 친구이지만
왠지 쉽게 연락할수 없다..
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 붙드는건
지키지 못한 약속때문인지..
그때 이미 지키지 못할줄 알고 있었다..
오늘 다시 만나서 차 한잔을 하며..
둘만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건 30년만의 일이다..
항상 그리워했지만 기회를 만들지 않았던 건
그리움이 충분치 않아서일까?
아니면 실체없는 그리움이 세월의 어색함과 그에 따른 빈곤한 화제의 벽을 넘지
못하리라는 걸 아는 현실적인 감각이 지나치게 발달한 때문인건가..
그도 아니면 여간해서 결코 먼저 손 내밀지 않는
그저 타성에 젖어 늘 그렇듯 소극적인 삶의 방식을 지향하고 있는
내 오래된 습성 때문인가...
년전에 그녀에 대한 꿈을 꾼적이 있다..
그녀가 등장하지는 않았었고
그냥 이야기만 들었다..
'죽었다고..'
꿈속에 나는 꽤나 슬퍼했던 것 같다..
후회도 많이 했고..
마음만 먹으면 만날수 있음을, 닿을수 있음을 알면서도
실체없는 그리움속에 가두어두고 있었던 걸..
깨고나서 그 일이 꿈이라는 걸 알았을때의 안도감..
그리고 다짐
연락해보리라..
만나리라..
후회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 다짐은 또 한번 허망하게 스러져갔다..
2003년 9월
삶의 reset 버튼을 바라곤 한다..
이제까지의 것들을 몽땅 지워버리고 싶어하기도 하고..
혹은 undo를 실행시켜
minor 한 실수를 살짝 지우고 싶어하기도 하고...
스크루지는 말하자면 삶의 reset버튼을 누른셈이다...
어쩌면 재 format이라고 해야할까?
하루밤사이에...
하루밤의 세가지 꿈 덕분에...
그 다음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꿈에서 이미 한번 인생을 살아보고 깨어서
다른 인생을 산다는 이야기는 많다..
충족된걸까?
때로는 경고도 한다..
스크루지처럼...
그렇게 살아봐야 끝은 뻔하다는 식으로..
나도 어젯밤 경고를 하나 받았다...
그리고 잠에서 깨니 그 꿈은 다 사라지고 undo를 누른것 같이 되어 있었다...
사실은 아직 실행되지 않은 일이었지만
꿈에서 한번 살았으니...undo 혹은 reset 인 셈이다..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고...
마음에 미련을 남기지 말라고
하고 싶은 일은 즉각 실행하라고...
그렇게 꿈이 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손 닿는 곳에 있었고..
언젠가 마주 앉을 때가 오리란 걸...
믿어 의심치 않은건 아니지만...
그냥 그런 날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처럼..
이사도라 던컨과 뭉크의 이야기를 하고..
그녀의 가족들..
나누는 날이 오리란걸...
그냥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