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2016. 12. 13. 13:12 from 생각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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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도 살았는데 이 단조로움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미움..

엄마를 향한 미움..

남의 엄마를 향한 미움...


모성을 향한 미움...


아무리 보기 좋게 포장을 해봐도 결코 감싸안아지지 않는 

생생한 미움...


이 어처구니 없는 미움...




#

바쁜 척하고 살아봐도 찰나의 순간은 피할 수 없다.

장기하의 노래처럼..


눈이 시뻘개질 때까지 TV를 봤네..


..만사 걱정이 없는데


왜 자막이 올라가는 


그 짧디 짧은 시간 동안에는


하물며 광고에서 광고로 넘어가는


그 없는 거나 


다를바 없는 시간 동안에는.....


그러게...

일년이나 바쁜척하고 책상 위의 잡동사니 산더미처럼 죄 쌓아두고

외면한채로 잘도 살아오고..


이제 겨우 하루 맘편히 푹 쉬어보자고

채널 돌리는 시간처럼 마음먹고나니...


이렇게...


그때 그노래처럼...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장기하... 노래 정말 좋구나...



#

고치는 것은 과거인가? 미래인가?


어릴 때는 쉬웠던 것 같다.


앞으로 이렇게 하면 돼..


앞으로 이러면 안돼..


앞으로.. 앞으로...


이미 많이 앞에 온 지금은 


그닥 앞으로 어떻게 바뀔거라는 기대가 없어진 지금은...


과거로 돌아가서 바로잡으려 한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지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과거를 고칠 수 있나?


이러다 전생도 바로잡겠다...

Posted by labosque :

채식주의자

2016. 8. 4. 20:06 from 카테고리 없음


1. 

이 책을 먼저 읽은 적 있는 독서회 친구 S와 J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 책... 잘 쓰였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불편해..'

그 불편함을 역시 먼저 책을 읽은 남자 회원들은 '취향이 아닌거지..'라고 돌려버렸다.


상 받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읽지 않았을 책..

아니.. 읽었더라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책..

한번 읽고 '뭐야? 이거..' 하고 던져 놓았을 책...


불편하게 만드는 그저 그렇고 그런 책...


여성작가들의 책은 나를 좀 불편하게 한다..

(진짜 여성작가들인지 정확하게 말하긴 힘들지만

대체적인 느낌이 그렇다..)


그들 몇몇의 책은 내게 지나치게 섬세한, 접근하기 힘든 자기만의 어떤 세상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마치 초대장을 받지 못한 아이가 닫힌 문앞에서 안쪽을 힐끔거리는 기분...


세상과 동떨어진 하늘거리는 흰옷을 입고 춤추는 것 같은 그런 세계


읽다보면 그들의 감성을 나만 이해 못하는 것 같고

나만 투박한것 같고

나만 탁한 것 같고

나만 부박하니 얕은 것 같다..


마치 어떤 아이가 거칠고 투박하고 마디진 손을 하얗고 가늘고 고운 손 옆에 우연히 두었을 때 느껴지는 부끄러움같은..

그런것..

그 순간 그 하얗고 가늘고 고운 손의 주인은 아무 이유없이 유죄다..


내 마음속의 법정에선 매일 매일 매 순간순간 유죄선고가 내려진다..

나의 어리석음과 나의 얕음과 나의 경박함과 나의 무딤과 나의 거칠음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나의 부끄러움과 나의 질시를 일으키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법봉을 내리친다..

'땅 땅 땅'

'유죄를 선고하노라.. 유죄를 선고하노라..'


2.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인물들을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아니.. 인간은 멀리서 보면 알것도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이해 할 수 없다..

초점을 가까이로 옮기면 옮길 수록 타인은 철저하게 낯선 존재가 되어간다..

심지어 작가가 거의 1인칭 화자처럼 초 근접거리에 그들을 가져다놓아도...

작가가 빙의되어 있는 등장 인물들에 공감하지 못하는 생경함은 불편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혜..

남편의 관점에서 볼 때는 있을 수도 있는 사람이었는데 남편보다 심리적으로 더 가까운 인혜의 관점이 되자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을 이해하라고 들이댄다.. 작가가...

그저 우리 세상에 내 이웃으로, 지인의 지인쯤으로 존재할 수도 있는 채식주의자가

어느틈에 경계를 넘어갔는데 

그 경계를 넘은 인물을 정신병동에서 보았던 수많은 환자중의 한명처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순백의 옷을 입고 나무가 되고 싶어하는 해맑은 그는 어느틈에 나를 가해자의 줄에 세운다..

마치 인혜를 그렇게 했던 것 처럼..

폭력을 방조한것.. 말리지 못한것...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영혜는 모순 없이 존재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투박하고 마디 굵은 손을 가진 나는...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에 대한 잠시 잠깐의 동정심을 뒤로하고 저녁 찬거리로 고기를 장바구니에 넣고..

동물들에 대한 죄책감을 뒤로 한채 '그래도 맛있는 걸.. 영양학적으로 필요해..그러니까 이왕이면 방목해서 키운 육류를

사는 게 좋겠어..'라고 변명을 하며...

모순으로 똘똘 뭉친 자아를 보호한다..


그렇게 순수하게 자기가 믿는 세계로 넘어가버리는 그런...

힘있는 일관성이 나에겐 없다..

그렇게 예민하게 자신이 아닌것을 거부하는 결벽함이 나에겐 없다..


영혜는 그렇게..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하얗고 예쁜 손처럼..결벽하고 예민함으로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래서 유죄...


인혜는..

실은 우리랑 가장 닮은 인간이어야 하는 인혜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장사도 잘하는 인혜는...

그 어마무시한 참을성과 양심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한걸음 뒤에서 보면 인생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가장 무거운 짐을 진 인혜가 부처님 반토막 같은 마음으로 남편을 이해하고

영혜를 돌보고..심지어 영혜에 대해 죄책감까지 갖는다면..


병든 와이프를 버리고 도망쳤다고 평을 듣는..

어찌보면 가장 이해하기 쉬운 인물인 영혜의 남편을 악의 평범한 얼굴로 규정해버린다면..

나는 과연 어느 편에 가서 서야 하는가..

악다구니 한번없이 그 모든 걸 고스란히 감내하는 인혜조차 방조의 죄로 가해자의 편에 서있다면...


구경꾼도 악의 동조자.. 방관자도 가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인혜의 양심...

그래서 유죄..


인간의 모순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 너는 유죄...

Posted by labosque :

죽을 사람들...

2016. 8. 4. 17:11 from 생각꼬리

1.

'어르신.  종양 있으신 건 알고 계시죠?'

'어르신. 이게 별로 좋지 않아요. 악성이세요.'

'어르신, 암이세요.'


여러번 바꿔 말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자 의사는 부드러우나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네에에?'


그제서야 알아들은 할아버지는 여태까지 주고 받은 이야기가 무색하게 화들짝 놀랐다. 

말에도 무게가 있다면...... 마치 철거를 할 때 쓰는 길다란 쇠줄에 달린 쇠공같은 것이, 뒤로 한껏 당겨졌다가 

놓아진 것 같은 속도와 무게로 할아버지를 한대 후려친 것 같았다.

실제로 그 말을  듣는 순간 보이지 않는 말의 쇠공에 맞은 듯 몸이 휘청 하는게 보였다.



2.

하필 그 순간일게 뭐람...

지난주 일수도 있었고 다음주 일수도 있었다..

아니.. 방학 동안 차일 피일 미루었으면 나는 그저 개학하고 난 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소식을 들었을 터였다..


기름을 넣고 세차장을 통과하는 차 안에서 K샘께 카톡을 보냈다.

'샘~. 이번 일요일이나 다음 일요일에 메쎄나 폴리스에서 차나 한잔 해요~'

'샘..저 내일 입원해요..암이래요..'


뒤이어진 통화에서 K샘은 위암 4기이고 이미 손쓸수 없이 퍼졌고 의사가 2개월~6개월 이라고 했다고...

그 소식을 오늘 아침 들었다고.. 신장이 막혀서 응급 수술을 해야 하는데 정리할게 있어서 내일 입원하기로 했다고...


'샘.. 샘이 오늘 연락안했으면 통화안됐을텐데...'

'어떡해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말도 안돼요.. '

여름 감기에 걸려 잔뜩  쉰 목소리로  엉엉 울고 있는 나한테 담담하게 응대하는 K샘...


'나 너무 착하게 살았는데... 남한테 해꼬지 한적도 없는데...지난 학기 정말 열심히 했는데..

앞으로 좋은 일도 정말 많이 하고 싶은데... 샘도 너무 착하게 살지 마요.. 나 너무 착하게..참고 살아서 병 걸린거 같아..'


'너무 담담하게 말하지 마요' 고함치듯 말하는 나에게

'아침에 소식듣고 너무 많이 울었어요.. 이제 온 몸에 수분이 다 빠져 나간거 같아요..'


왜 하필...

이 순간... 되도 않는 오지랍으로..

굳이 챙기지 않아도 될 인사를 챙기느라고...

왜...


이 사람과의 무슨 인연인건가...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