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오후..

2017. 1. 21. 13:55 from 기억한올

한가한가? 평소처럼 할 일은 즐비하다... 

단지 엄마를 보러 가는 일이 면제되었을 뿐...


시동을 켜놓고 차 위에 소복히 쌓여있는 눈을 털어내고 있는 중

다시 눈발이 날린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꼼짝할 수 없다...

전화를 했더니 '오지 마~ 날도 추운데 뭘 오니?' 한다..

'눈 오면 못 움직이고 내일이나 모레나 눈 안 오면 갈께~' 했더니 

'날 풀리면 와..추운데 뭘..'한다..

'나 다음 주에 미국가는데?' 하자

'그래..다녀와서 날 따듯해지면 와..괜히 추운데 고생하지 말고...'한다...

'그러면 한달도 넘는건데...'는 마음 속으로 삼키고...

'그러면... '하다가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할께...'라고 하고 말았다...


왜... 그 배려가...

마음이 상할까? 


지난 주 늦은 아침, 잠자리에서 밍기적거리고 있을 때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날 추우니까 오지 말라고..

'알았어.. 그럼 그럴께..' 해버렸다...


엄마의 배려는 진심인걸까?

아니면 그냥 흔하디 흔한 겸양의 표현인 걸까...

늘 의심스럽다..

이중메시지...라고 생각하는 건 나의 편견인 걸까?

그냥 진심으로 받기로 했다...

빠릿 빠릿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딸에게 느끼는 서운함은 엄마의 몫..


그런데 왜 내가 화가 나는건지...

이중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 행간을 읽는 수고를 해야하는 데서 오는 짜증...

행간을 제대로 읽어내야 받을 수 있는 칭찬...

눈치빠른 아이로 자라게 만든데 대한 분노...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느껴질 죄책감...


배려를 배려로 받지 못하는 부분, 감사를 모르는 부분은 나의 문제다..

그냥 고맙게 받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이시간은 망중한....


그새 눈이 그치고 해가 나니 마음이 슬몃 불편하지만...

뭐... 그거야 내 탓은 아닌거고....



#

창신동 골목길...


새로 상담을 시작한 센터는 창신동 어디쯤에 있다..

지하철역에서 4~500m 쯤 골목을 따라 올라가는데

초입은 완만한데 마지막 1/3쯤은 꽤나 가파르다..


창신동은 내게 이름으로만 남아있다..

어렸을 때.. 최대로 잡아 초등학교 저학년때 정도 쯤..

작은집이 창신동이었다..


어릴 때는 특히 학교 다니기 전까지는 우리 형제들.. 그중 특히 나는 

친척집을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또래의 사촌들, 언니, 오빠 들이 많아서 명절이나 제사때 모이면 왁자하게 놀다가

자기 집 가는 사람들의 치마꼬리에 붙어서 

'우리 집 가서 놀래?' 한마디에 강아지 새끼모냥

줄래 줄래 따라나서기도 참 많이 했었다...

며칠씩 자고 오고 그게 길어져서 한달씩 할머니를 따라 절에 가서 자고 오는 일도 있었다..


어쨋든...

창신동은 그 무렵 작은 집이 있던 동네였고.. 

나랑 언니랑? 혹은 나랑 남동생이랑? 정확하진 않지만 사촌들이랑 놀다가 차마 못헤어져서 

같이 놀러 갔었다..


그리고 한 밤중에 다 같이 연탄가스를 마셨다...

아마도 어른들이 머리가 아파서 먼저 깨시고 

한 방에 죽 누워자던 아이들을 다 흔들어 깨우셨는데..

그리고 얼른 방 밖으로 탈출하여 동치미 국물 원샷을 했는데..

나보다 어린 동생 둘을 포함하여 모든 아이들이 곧 부숭부숭 일어났는데

유독 나만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듯하다..


작은 아빠가 나를 들쳐업고 작은 엄마는 잠옷 바람에 스웨터만 걸치고

창신동 골목길 언덕을 내달아 달려 한 길가에 불켜진 의원을 찾아 헤매고 다니셨다...

워낙 일찍 잠자리에 들던 시절이라..(8시면 불 끄고 누웠으니까..) 한 잠 자고 난 것 같은데도 

몇 시 안 되었던 건지..(9시쯤?) 아니면 밤 새 여는 병원이라도 찾으셨던 건지 확실치 않지만..

(느낌상 전자였던 듯...)어쨋든 다행히 한 병원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난 난생 처음 입원이란 걸 해봤고...

링겔이란 것도 맞아봤는데 양쪽 팔에 아무리 찾아도 혈관이 안 나와서 

주사 바늘을 몇차례씩 찔렀다가 결국 발목 복숭아 뼈 아래 쯤에 바늘을 꽂았다.. 

한번씩 찌를 때마다 간호사가 미안한 얼굴로 칭찬을 늘어놓던 걸 기억한다...


작은 엄마는 가끔  그 때 얼마나 놀래고 가슴을 쓸어내렸던지 이야기를 하시지만 

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게도 그 밤 풍경이 의외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작은 엄마의 분홍색 원피스 잠옷과 그 위에 걸쳤던 큰 꽃무늬가 있는 스웨터까지 기억이 

날 지경이다..


등에 업혀있을 때 밤거리를 내달리는 작은 아빠의 가쁜 숨소리와 

비탈진 어둑한 골목길.. 큰 찻길을 따라 불꺼진 거리를 다급하게 헤매면서

셔터가 내려진 작은 병원들을 두들기던 일.. 두들김에 챙그랑 챙그랑 철문이 흔들리던 것들..

어둑한 거리에 뿌옇게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지나다니던 버스들..

밝고 환하던 한 병원...


아! 나를 들쳐업고 집을 나설 때 졸린 눈을 비비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란히 서서 작은 엄마, 아빠와 나를 배웅해주던 

사촌들과 내 형제들.. (지금 생각하니 언니는 확실히 있었던 듯 하다.. 언니가 제일 나이가 많아 작은 엄마가 아이들만 

두고 집을 비우며 뭔가 신신당부를 했던 듯..)


뭐 그런 그런 장면들이 안개에 싸인듯 뿌옇지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창신동 골목길을 걷다보니 그 기억이 떠오른다..

뭐 지금 내가 오르내리는 창신동 골목길은 40년도 더 전 그때 그 곳은 전혀 아닌듯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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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의 책들..


방학을 맞아 제일 즐거운 일은 역시 읽고 싶었던 소설들을 읽는 것...

여행 준비물로 크레마를 찾다가 열린 책들 세계문학전집 180권을 함께 주는 프로모션을 발견했다..

앗싸... 득템...


그 동안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거미여인의 키스>를 지면으로 읽었고

<원수들, 사랑이야기>를 재독 (엄밀히 말하자면 삼독) 했고..

크레마로 <캉디드>와 <여인의 초상(상,하)>를 읽었다...


이북도 볼만하다... 적어도 크레마로는....

썩 마음에 든다...

그렇다고 종이 책을 사는 걸 멈추지야 않겠지만..

확실히 엄청나게 줄일 수는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여행 짐이 간편해졌다..


요즘 왜 바쁜가 했는데..

물론 실습이며 스터디며 방학이래도 여전히 해야하는 일과 하고 있는 일들이 있긴 하지만...

내가 책을 읽고 있구나...

흠... 바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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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꿈이야기

2017. 1. 7. 18:14 from 기억한올

며칠 전에 꾼 꿈이다. (17년 1월 초)

역시나 아이가 나오고 범죄자가 등장하고 쫓기는 기분과 도망치는 상황 등..

같은 패턴이 되풀이 되고 있어서 기록에 남겨둔다.

상담을 받게 되면 쓸수 있는 자료가 될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집이었는데 일렬로 방이 한칸 있고 사이에 거실이 있고 그 옆에 다시 방이 하나 있는 구조다. 

(이 구조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

한 방에 남자들이 책상 같은 것을 앞에 두고 두 세 명 앉아있다. (회의실 같은 분위기)

역 U자 같은 느낌으로 내쪽에서 마주보이는 곳에 중요한 인물이 앉아있다. 

나는 바깥에서 방안을 들여다보는 느낌인지.. 방안에 있는건지는 확실치 않고 작은 남자아이와 같이 있다.

회의 같은 걸 하는 분위기였는데 중요인물의 오른쪽 뒷편 구석에 어떤 남자가 숨어 있다. 

그 앞에 큰 화분같은 게 가리고 있었던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어쨋든 한 남자가 숨어있다.

숨어있는 남자가 섬뜩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데 그 남자는 악당이다. 

나는 그 남자를 발견하고 중요한 인물에게 소리를 질러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해 알려준다. 

(중요인물은 남편인것 같기도 하다.)

그 남자의 존재에 대해 알려주고 위험성을 알려주는데 중요 인물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고

그 나쁜 남자가 구석에서 나와서 공격을 감행한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방에서 나와서 거실에 있다. 티비가 켜있고 옆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티비소음에 내 소음을 숨겨서 옆방으로 간다. (꿈속에서 소음이 묻히도록 조심함.)

안에서 나쁜 남자를 제압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창문으로 나가는데 베란다같은 큰 창문으로 나가면 도로와 연결이 된다. 연결된 길을 잘 따라가면 도로를 건너

길 건너편으로 연결이 된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걸어와서 대각선 뒷편으로 집(커다란 건물-아파트 같은 것으로 바뀜)이 있고 앞쪽에는 오르막 경사인데 가장 높은 부분에 육교가 있다. (멀리 정면에 에펠탑같은 것이 보임)


육교를 건너야 하는 상황인데 아이가 신발을 신지 않고 있다. 돈이 조금 있어서 아이에게 저렴한 신발을 사 신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육교를 건너는 것이 가장 위태로운 상황인데 언덕 위이고 육교가 높아서 누군가에게 가장 잘 눈에 띌수 있는 위치이다. (뒷편의 높은 건물에서 보일 것 같다. 육교만 건너고 나면 안전해질 것 같은 느낌.)

아이가 맨발이라 안고 육교를 오르는데 무겁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내려서 스스로 걷겠다고 함.

육교를 건너서 내려가야 하고 내려가기만 하면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짐. 

아이가 여자아이로 바뀜.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이가 시간을 끌어서 마음이 조금 초조해지는 와중에 꿈이 깸.




Posted by labosque :

꿈이야기.. 두개...

2016. 12. 27. 15:10 from 기억한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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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남편이 해주었던 이야기 중에 '념.망.해'라는 게 있었다.


먼저 생각한다. 골똘히 생각한다. 

그리고 잊는다.. 잊을 만큼. 잊어도 좋을만큼 깊이 생각하고 나서 

깨끗이 잊어버린다..

그리고나면 사고는 스스로 진행된다. 그리고 문제가 풀린다....


말하자면 꿈이 그런 역할을 한다.

사고는 내가 의식 중에 잊고 있어도 무의식 중에 스스로 진행하고 있고

그걸 보여주는 바로미터는 '꿈'이다.


지난 학기 말 마지막 시간에 발표했던 '임상적 클라인' 우울적 자리 중에서...

발표를 해야하기 때문에 제법 꼼꼼히 읽고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모든 부분을 다 깨알같이 이해하고 갈 수 는 없었기에 대충 넘겼던 부분이 있다. 


사례 중에 한 남자가 꿈속에서 자신의 부모를 돌보려고 드는 내용이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해석과 설명으로 <회복의 과정은 그의 외적 대상, 실제 부모가 실제로 건강할 때 더 강하게

활성화 됨.>-(나중에 이렇게 써놓은 부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내용이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대충 발표하고 넘어갔었다.


며칠 후 꿈을 꿨는데 꿈 속에 엄마가 나왔다. 

호피무늬 코트를 입은 젋고 건강한 엄마로 혼자서 미국여행을 올 정도였다. 

(꿈 속에 나는 미국에 있었고 엄마가 혼자서 왔고 혼자 여행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


꿈에서 깨고나자 현재의 엄마가 떠오르며 늙고 손상된 엄마에게 죄책감이 느껴졌다..(그로인한

우울감도 가중되었으리라.)


즉, 내 꿈은 사례의 꿈과는 반대로 사례속에서 남자는 현실보다 늙고 약한 부모를 만나 돌보려고 애쓰다가

깨어나 꿈보다 젊고 건장한 부모를 만나며 자신의 (공격성으로 인한)죄책감과 우울감에서 회복되지만

나는 반대로 꿈속의 건강하고 믿을만한 엄마를 현실에서 만나지 못하고 더 늙고 힘이 없는 대상으로 

경험하며 죄책감과 우울감이 가중된다.


이렇게 기가 막히게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제대로 풀어서 설명해주는 꿈이라니...



#

이 꿈은 12월 16일에 꾼 꿈이다. 


어렸을 때는 놀라울 정도로 꿈에 대한 기억이 선명했었고 

한동안 꿈을 꿨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정도로 

꿈에 대해 완벽히 잊어버렸었는데 

요즘은 적어도 꿈을 꿨다는 정도는 기억한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꿈도 드물지만  있다.


꿈에 어떤 건물 안에 있었는데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지는 않았지만 문을 열고 나온것 같은 느낌.)

내가 들어선 공간은 커다란 사무실 같은 모양이었고 한쪽 편에 책상과 가슴 높이 정도 오는 선반(책꽂이 같은 것들)이 있었다. (꿈 속에 약간 학교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린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아이가 내 아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뭔가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나는 아이를 한쪽 벽에 붙어있는 책장 같은 곳에 선반들 사이에 숨겼다. 

소리내지 말고 일어서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잘 숨어있으라고.


나도 그 아이가 숨은 장소와 가까운 곳에 박스 더미 같은 것으로 몸을 가리고 숨었다. 

공간의 복도가 되는 부분에 한 남자가 (아마도 핸드폰을 받으며) 뒤쪽으로부터 걸어왔다. 

느낌 상 그 사람은 테러리스트였다. (shooting spree를 할 사람)

왜인지 아이가 일어서 있었고 그 사람에게 발견되었다. 

아이가 '나를 보호하기위해' 그 사람에게 용감히 맞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곧 그 사람에게 발각되었다. 


싸울 수 밖에 없다라고 생각이 들었고 힘을 내어 맞섰다.

뭔가 굉장히 잔혹하고 호러스러운 장면들이었다. (목을 조르고 삽으로 내리치고.. 등등)

어느 순간 그 자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 되었는데 

아이를 거의 반쯤 삼켰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 자를 죽이고 반쯤 삼켜진 아이를 그자에게서 꺼냈다.

아이는 더 이상 사람이라고 보기에 어렵고 마치 고깃덩어리 같이 세토막으로 나뉘어졌다.

나는 그 덩어리들을 안고 119에 연락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 아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맞섰다.'라고 생각을 했다.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


잠을 거의 안잔것 같은 기분으로 꿈에서 깼는데 순간 범죄의 희생자가 된다는 것이 어떠한 기분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범죄의 혹은 사건 사고의 트라우마에서 회복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느껴졌다. 

이 기분을 잊지 않는다면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 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을 남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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