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북마크는 2년 전 이스탄불에 갔을 때 산 것이다.. 그 동안 아끼지 않고 제법 열심히 사용했나보다..
어느틈에, 아라베스크 스타일로 오려진 도형이 장식적인, 머리부분이 떨어져 나가려 하고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 북마크에는 그렇게 적혀있다..
돌마는 가득 찬.. 바흐체는 정원...
궁전의 이름치고 참 낭만적이다..
그리고 궁전은... 여태까지 내가 본 궁전 중에 가장 화려하다...
오스만투르크 대제국의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다... 정말 아름다왔다..
쇠락해 가는 대 제국의 마지막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꺼지기 전에 가장 크고 밝고 아름답게 타오르는 불꽃..
마치 그런 곳이다..
# 여행지에서 사온 기념품을 신주단지 처럼 모시는 것을 싫어해서, 아니 꼭 그것 뿐만 아니라 모든 물건을
사용하지 않고 모셔두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아끼지 않고 쓰는 편이다..
또 조심성도 별로 없다..그래서 내 물건들은 수명이 길지는 않은 편이다.. 아껴쓰고 소중히 다루는 사람들에 비하자면..
물건은 물건일 뿐이니까.. 여태 그렇게 생각해 왔다...
# 수명이 다한 물건에 대한 여태까지의 태도를 견지하여 아무 생각없이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지려다가 문득..
북마크를 다시 한번 살피게 되었고 그 여행의 기억이 떠올라왔다..
언니와 조카와..여자 셋이 떠난 여행이었는데..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좋았던 여행이었다..
아직도 정리가 안된 사진들이 늘 마음 한켠을 불안하게 짓누르고 있는 여행이기도 하고...
# 또 문득 로쟈가 떠올랐다..
부는 세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번째가 property..
property는 한 사람의 소유물로, 그 사람의 특징을 드러내준다..예를 들어 아버지의 낡은 코트, 어떤 이의 구두나 지갑처럼...
두번째가 wealth..이건 말 그대로 부유함..혹은 잉여의 상태로 wealth에 이르면 더 이상 소유자의 특징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세번째 단계는 capital, 자본.. wealth보다 더 많고 커진 부를 말하며 이 단계에 이르면 자가증식을 하게 된다..
더 이상 노동하지 않아도 자본 그 자체가 순환하여 부를 창출하게 된다.
과연 어느 만큼의 부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인가? 라고 로쟈는 말했지만...
# 생각해보니 이 북마크는 나의 부의 상징은 아니지만..나의 소유물이 될 순 있겠다..
여행지에서 샀던 기념물로 내가 그 곳에 다녀왔다는 표상이기도 하고
또 수많은 책들의 갈피에 끼워져 나에게 늘 책속의 제자리를 찾아주었던 내 독서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그냥 휙..던져버리기엔... 나를 참 많이 담고 있구나...
그래서 뒷편에 스카치 테이프를 붙여서 약간의 안전을 확보한 후 책상 서랍 한 구석에 넣어두기로 했다..
이제 비로서 이 물건은 의미없는 소모품이나 잡동사니의 영역을 넘어서 property의 자격을 획득한 셈이다..
축하한다..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