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ford 가는 길

2012. 6. 28. 09:44 from 기억한올

어릴 때, 특별한 설레임으로 동경했던 많은 단어들중에

수평선과 지평선이 있다..


바다에 간 첫번째 기억은

국민학교 1학년때 쯤 인천에 갔었던 기억인데

그때,

아마도 부두에 갔었던 듯 하다..


인천 앞바다는,

특히 부두는,

내가 상상했던 바다와는 한참 거리가 있었다..


하얀 백사장, 파란 하늘, 에메랄드빛 물결에 하얀 포말

그리고 무엇보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았다는 수평선을 보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으로도 인천 앞바다, 그것도 부두앞에서 수평선 따위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보기 힘들거 같다..


시커멓고 우중충한 물빛에 하얀 포말 대신 쓰레기더미와 뒤엉켜있는 거품이

잔뜩 출렁거리며 배들을 어지럽게 흩어 놓고 

수평선 언저리엔 섬들이 불쑥 불쑥 솟아나서 

우리나라가 다도해란걸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던 인천 앞바다..


바다에 대한 내 우울한 첫 경험...


수평선보다 몇배 더 강력하게 나를 매혹시켰던 건 지평선이었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수평선쯤이야 언젠가 제대로 한번 볼 기회가 올거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지만 지평선은 수평선 따위가 감히 견줄 수 없는 

이국적인 품격이 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평원..

그렇게 하도 평평해서 땅과 하늘이 맞닿은 곳이 360도로 동그랗게 보인다는 지평선...

내 생전에 과연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곳에서 태어난 어린 소녀는

동경을 키웠다..


확실히, 동경을 키우고 살찌우는 양육자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결핍이다..


시카고의 첫인상은 평평하다...

땅이 넓고 평평하다보니 시카고라는 도시는 건물이 번듯 번듯하다..


장중하고 거대한 건물이 반듯하게 자리잡고 있다..

토대로 부터 탄탄한 느낌..


그 육중함이 뉴욕과는 사뭇 다르다..


핸콕타워 전망대에서 시 전체를 조망해보면

바다처럼 넓디 넓은 호숫가에 저 멀리까지 작은 구릉 하나 안보이는 평평한 땅위에

도시가 불쑥 솟아 오른걸 볼수 있다..


중부는 전반적으로 이렇게 평평한듯 싶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동부에서 결코 볼수 없었던 수많은 prairie 들..


대신 mount/ mountain 이란 지명은 도로표지판에서 아예 실종이다..


사실 10년도 더 전에 LA에서 Las Vegas로 여행을 가면서

완전했던 지평선은 아니고 지평선 비슷한 느낌의 지형을 본 이후로

지평선에 대한 갈구는 접어두었었던 듯 하다..


그때도 완전한 지평선은 아니고

360도로 이런 지형이 펼쳐진다면 그게 바로 지평선일꺼야..쯤의 느낌이었는데


흙먼지 날리는 건조하고 마른 땅이 계속 되면서

어딘가는 구릉도 있고 언덕도 있지만 


또 다른 방향으론 하늘과 맞닿은 대지도 보이니까..

완벽하진 않지만 뭐 대략 이정도로 만족해주지...뭐 그런 정도의 타협이었달까..


아무튼..

그후로 오랫동안 지평선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락포드 가는 길에 서쪽으로 길게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며

주변을 돌아보자니...

참...

평평하다...


푸른 초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어도 나무들도 서 있고 집들도 보이고 해서

지평선이란 단어를 쉽게 떠올리진 못했는데


문득 시간을 과거로 보내어 

고속도로도 걷어내고 집도 걷어내고 나무도 걷어내면 

바로 이곳에서 예전 사람들은 360도 동그랗게 땅과 맞닿은 하늘을 보지 않았을까 싶다..


완만하게 수평을 살짝 벗어난 지형은 있어도

삐죽하니 솟은것은 작은 언덕 하나도 안보인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것들은 나무들이다..


갑자기 지평선이 그립다..

어렸을 때 영화에서 본것 같은 느낌의

360도 뺑 돌아봐도 흙먼지 풀풀 날리는 메마르고 건조한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땅..


그런 곳은 과연 어디일까?

아직까지 있기나 한걸까?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