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일상

2015. 5. 10. 12:42 from 기억한올

# 어버이날


생각해보면 어버이였던 기억이 없다...

올해까지도 어버이날은 자식으로서 내가 어른들께 봉사해야 하는 날일 뿐

나도 받을 수 있는 날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지금이야 아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렇다쳐도

아이 어렸을 때 틀림없이 학교에서 카드도 써오고 했을텐데

까맣게 기억이 안난다...


그도 그런게 미국에서는 Mother's Day와 Father's Day가 따로 있어서

내가 어버이였던 적이 있을리가 없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미국계 학교를 다녔으니 한국의 어버이날에 

아이가 학교에서 종이 카네이션이라도 만들어 왔을것 같지도 않다..

(혹시 한두번쯤 뭔가 해왔는데 내가 잊어버렸나?)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니 학교에서 카드 만들어온 적, 편지 써온 적이 있었던 것 같고..

역시 학교 바자에서 액세서리를 사온 적도 있었다...

어쩌면 작은 카네이션 꽃바구니 한두번쯤 받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 모든게 다 초등학교때 일이고

그 이후론 별 기억이 없다...

그래서 어버이날은 내게는 '자식된 도리를 하는 날'외에

다른 식으로 입력되어 있지 않은데..

문득... '나도 어버이에 해당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했다.. 


언제부턴가 난 참 온전히 나자신으로 살고 있다..

아직도 이런 저런 역할들이 분명히 남아있지만 

누구의 엄마라는 자각을 잊음과 동시에 다른 역할들은 최소한만 남겨놓았다..

일년에 한 두달만 엄마로 돌아가지만

엄마가 아닌 동안에도 사랑하지 않는건 아냐..


평생 어버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 어버이라는 말이 어떤 경우에 쓰이는지 그 용례를 생각해보자면...

은혜와 존경과 감사를 바쳐야하는 대상으로서의 예 외엔 달리 생각나는게 없다.

그리고 자식의 입장에서는 경우에 따라 의무감과 동격이다...




# 스틸 앨리스 혹은 스틸 영한...


설겆이를 하고 있는데 며칠 전의 대화가 떠오른다..

'라바트는 모로코의 수도 이름이래..', '탕헤르가 아니고?',

'모르코에는 카사블랑카가 수도 라바트보다 더 유명하지..'

누군가 남자 목소리도 있다...


언제 어디서 들은 이야기인지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그룹이었나 기억력을 가동시켜 본다..

'독서모임? 아니야..' '갤러리? 아니야..' 

금새 떠오르긴 한다..

이틀 전 J의 생일모임을 분당에 있는 모로코 음식점에서 했었다..

그리고 HS의 남자친구가 나중에 합류했었다..


'전에 니가 말한대로...' 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는 '내가? 그랬어? 진짜? 언제?' 라고 할 수밖에 없을 때가 많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기억의 육하원칙이 사라지고 소리의 파편들만 귓가에 울린다..


기억이 사라지고 나면 뭐가 남을까?

내가 나로 살아가는 기간은 앞으로 얼마나 되는걸까?




# 살아야 할 이유


지난 주 미국에서 온 E를 위한 모임이 있었다... 

할머니에게 배웠다며 친구들의 손금을 봐준다...

내 손금을 보더니 '와~ 정말 이상한데?'

'뭐가?'

'남자가 있어~. 지금 남편보다 더..더...더...중요한 사람이야~

더 사랑하는 사람 만날꺼야~' 

특유의 외국인 억양으로 이렇게 말한다..

주변에 친구들이 난리가 났다..

'좋겠다..지지배..복도 많은 X'  등등등...

나 역시 광대 승천이다... 

'언제...언제...'

'음.... 아마 20년이나 25년 후쯤?

아마 남편 죽고 만날꺼야'

헐이다...

20년후면 몇살이냐.. 70?

실망은 이르다...

얼른 소설을 쓴다..

'그래..뭐...인생 백살이라는데 70도 괜찮아...

그래..그때 한 열살 연하 만나서 늙은 몸을 의탁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친구들은 한술 더 뜬다..

'스무살 연하 만나~' 

한참 들떠서 모래위에 집을 짓고 층수를 더하고 있는데 E가 찬물을 끼얹는다.

'근데, 너... 지금 식으로 살면 건강이 너무 안좋겠어...

너 생활습관 바꿔야 해...생명선이 깨끗하지 않아..' 

한번 더 헐...

그치만 뭐..그럴것 같긴하다...

당근과 채찍..

'너 그 남자 만날 때까지 살려면 운동해야 돼.. 진짜 사랑하는 사람..

운명의 상대인데 만나야 하잖아?'

그...그...그런가? -.-;;

가방에서 늘 가지고 다니는 운동용 고무줄을 꺼낸다..

등운동 하는 법을 시범보이고 나에게 따라하게 시킨다...

'나 화장실 갔다올 동안 너 이거 하고 있어.. 이거 스무번, 그 다음 거 스무번 알았지?'

하하하...친구들이 좋다...


그나저나 칠십까진 살아야될텐데...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