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영화

2015. 3. 21. 09:52 from about books



위플래쉬 (2015)

Whiplash 
8.7
감독
데미언 차젤
출연
마일스 텔러, J.K. 시몬스, 폴 라이저, 멜리사 비노이스트, 오스틴 스토웰
정보
드라마 | 미국 | 106 분 | 2015-03-12


음악 영화는, 특히 위플래쉬처럼 비트가 강한 영화는

낯선 두사람도 사랑에 빠지게 할지 모른다..

쥐뿔만큼 아는 심리학 이론을 갖다대자면 사람들은 생리적 각성 상태를 

심리적, 감정적 상태로 오인하기 쉽기 때문인데 

즉, 위플래쉬처럼 비트가 강한 음악을 듣고 있다보면 심장박동도 드럼 소리에 맞춰 뛰게 되고

그래서 생리적 흥분상태가 되고 그러다가 옆자리의 멋진 남자를 보면 

'아..내가 이사람에게 첫눈에 반했구나' 하고 자신의 신체적 흥분상태를 감정적으로 해석해서

설명해보고 싶어하는거다..(라고 한다... ^^)


어쨋거나..

영화는 곧 그런 모든 생각들을 뒤로 하고 누구랑 같이 왔나도 잊을 정도로 정신없이 몰입하게 한다..

그러다가 종반부에 이르러 문득 영화에서 빠져나와 이것 저것 따져보고 있다..

플래처라는 인물...

이 인물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천재와 이상심리..

초반 플래처의 태도는 막귀의 나로서는 독선적이고 오만한..그렇지만 누군가를 모욕하고 짓밟고도

군림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천재..

도저히 알아챌 수 없는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며 계속 되풀이시키 (not quite my tempo) 장면 들을 보면서 

진짜 미세한 차이를 느끼는 건지 혹은 자신의 권위를 그런 식으로 주입시키는건지 살짝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그때까지는 어쨋든 천재 인정..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불질러 주었던 클럽 장면에서 플래처는 원대한 이상을 품은 위대한 스승처럼 표현된다..

아마도 플래처의 진짜 가치관이고 철학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한계에 부딪혀 그 한계를 넘는 제자를 키우고 싶었다...(그만하면) 잘했어..(good job)란 말이 제일 쓸데없는 말이다..'


그렇지만 플래처의 진정성은 마지막 무대에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심리 스릴러로 바뀐다..

연주가 시작되기전 무대 뒤에서 '이번 공연이 성공적이면 너희는 수없는 러브콜을 받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실수 한다면 이 바닥에선 끝장이다.'라는 격려로 위장한 협박으로 단원들을 독려한후 

무대에 올라 앤드류에게 다가가 '내가 핫바지로 보이냐? 네가 불었잖아'라고 말한후 앤드류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곡을

연주하게 한다. (심지어 악보도 안주고..)


이 부분에서 플래처의 병명이 진단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요즘 이상심리학 수업을 듣고 있는데 첫 시간 교수님이 '이 수업을 들으면 아마도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진단하려 들것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수많은 진단명을 붙일텐데.. 여러분 모두 정상이니 그러지 마시라...'고 했었다..)


그러고보니 영화 내내 플래처의 태도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자의 특징들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구화 하고... 타인의 감정이나 고통에 무심하고...

그런 부분은 실은 매우 감정적이고 무의식적인 부분이라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철학과는 크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혼돈하면 안되는 게 어떤 사람의 의식적이고 인지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이 모두 합쳐져서 

한사람의 인격 혹은 성격을 이루는 것이라는 점이다..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성격이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이상의 부재나 혹은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한 위선이 아니라는 뜻...

즉, 한계를 뛰어 넘는 제자를 키우고 싶은 것도 또 그러기 위해서 계속 몰아부치는 것도 플래처의 진정성이고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고 타인을 짓밟고 모욕하고 복수하고자 교묘하게 일을 꾸미는 것도 역시 플래처의 본성이다..

플래처라는 사람 안에서는 자신의 가치관 아래에서 자신의 성격적 결함들이 모두 정당화된다..(자기 모순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마지막 장면처럼 한계를 뛰어넘는 원수의 음악에 빠져 자신의 복수심을 잠시 잊고 음악 자체에 

몰입하는 진정한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복합적이고 다면적이고 총체적인지 깨닫게 해준 영화였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한번에 금 그어 나눌 수 있는 기준은 누구에게도 없다...

나처럼 'Good Job'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저런 의심이 들게 한 부분도 좋았고... ^^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