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아의 금메달 강탈때문에 하루 종일 책도 읽을 수 없고 아무것도 손에 안 잡힌다...
그렇긴 하지만 마음을 다 잡고 이 독특한 책의 뒷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2.
로쟈의 강의노트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주인공이라고는 나오지 않는 독특한 연대기식 구성에 있다..
책에는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나온다..
모두 24장인데 그렇다고 각 장마다 하나의 에피소드로 마감되는 그런 친절한 구성도 아니다..
각장이 어찌보면 연결 되어 있기도 하고 또 다르게 보면 서로 별 상관 없기도 하다..
예를 들어 4장쯤에 슬쩍 언급되었던 한 마을 사람의 자손의 자질구레한 이야기가 17장쯤 툭 던져지는 식이다..
그 사람의 조상이 4장에 나왔는지 안나왔는지 굳이 앞장을 들추어 확인하지 않아도 책을 읽어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게
4장에서 그 사람의 조상에 대한 별 특별한 이야기가 나온게 아니고 그냥 간단하게 언급된 정도라서...
그런데 대부분의 이야기가 다 그런 식이다..
한 마을에 공통의 연대기가 있어서 뉘집 누구는 어떻고 뉘집 누구는 어떻고 뭐 이런 식으로 간단 간단하게...
그러다가 조금 줄거리가 있는 중요 에피소드들 조차 우물가 소문처럼..그래서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됐대...뭐 이런식...
사실..처음엔 좀 읽기 힘들었다...읽어도 재미도 없고..
다 읽고나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중심 스토리도 없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난 반전이 있는 이 표현을 참 좋아하는데...)
책을 중간까지 읽었을때와 다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그런 예감은 있었다..)
이 작가는 유고인을 위한 작가이다..
아무것도 부연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이야기라는 대전제하에 밑도 끝도 없이 자기네만 아는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발칸반도의 복잡한 사정따위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고 마치 화개장터가 어떤 곳인지 조영남 노래없이도
그 동네사람은 다 아는 것처럼...그냥 불쑥 이야기를 꺼낸다...
독자는 낯선 어휘들에 어리둥절한 채로 (상당히 많은 고유명사와 일반명사들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는데 예를 들어 카사바, 카피야, 돌 한, 베그...등등 -물론 각주가 달려있긴하나 익숙해 지지 않는다..이 어휘들조차 배경이 터키어인지 보스니아어 인지 세르비아어인지..이 지역의 특성만큼 모호하다..) 처음에는 그저 책 읽는 기계의 심정으로 읽어댈 뿐이고
중반이 한참 지나가야 비로서 뭔가 애매하게 눈치가 생겨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해볼 뿐이다..
이렇게 불친절하고 낯선 시간들을 견디고 나서 발칸이라는 지역(책 속에서는 비셰그라드)의 특수성에 대해 약간의 눈치가 생기자
이 책의 독특함이 눈에 들어온다..
저자가 얼마나 객관적인 묵묵함으로 (마치 드리나강의 다리와 같은 묵묵함으로..)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을 표현했는가 하는 것들...
그렇게나 다른 사람들..다른 민족, 다른 종교, 다른 문화, 다른 사상, 다른 세대, 다른 가치관, 다른 계급...
그렇지만 어느 한쪽 편의 시선이 아닌...그냥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으로 그 모든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누구 하나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할것도 없이..
4.
조화로운 공존이란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것
카사바 사람들과 다리를 통해서 보여주는 통시적이고 역설적인 성찰...
그리하여 얻어지는 보편성.. 세상 어디나 다 그렇다..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산다...
(48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