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리시마 신궁과 일본식 혼례 행렬



에비노 고원이라는 곳에서 딱 점심만 먹고 차로 김이 펄펄나는 산 이쪽 저쪽을 둘러 둘러 내려오다가 기리시마 신궁이란  곳에 들렀다.. 이곳은 일본 건국신화인 아마테라스와 관계가 있는 곳(정확히는 아마테라스의 손자인 니니기노 미코토를 모신 곳)으로 화산 폭발때문에 수차례 소실 되었음에도 짓고 또 짓고 한 신사란다..(그만큼 중요하게 여겨졌던 모양..)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곳..잠깐 둘러볼 셈으로 들렀는데 우리와 비슷하게 도착한 미니버스에서 갖추어입은 신랑신부와 하객들이 줄줄이 내린다.. 일부러 따라가진 않았다.. 다만 그들이 멈출때 우리도 잠시 멈추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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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말을 해주지도 않고 누구에게 물어본적도 없으니 그저 짐작으로 소설을 쓸 뿐이지만.. 느낌은 혼례를 신사에서 치른다는 건 아니고 혼례를 마치고 신사에 고하러 온 느낌? 신들께 신고하고 신들의 축복도 받고 뭐 그런거...누가 일본 문화에 대해 잘 알면 설명 좀 해주길.. 암튼 그렇게 앞 마당 쯤에서 기념 촬영을 한 후 다시 줄 지어 (2열 종대의 느낌으로..) 안으로 안으로...그런데 마침 그들이 가는 방향이 또 우리 방향과 비슷했다...절대 따라가거나 한건 아니다..(사실 좀 뛰어서 쫓은 구간도 없다고 말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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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당(이렇게 부르는게 맞을거 같진 않지만 아무튼..) 오른편에 있는 샘(?)에서 물을 떠서 손을 씻고 혹은 사람에 따라서 입도 헹구고.. 신사 본채에 가서 동전을 던지고 기도를 한다..뭐...남들 하는거 보고 나도 비슷하게 따라했다.. 성당이든 절이든..어디든 가서 비는건 뭐 다 한다.. 혼례 행렬이 향했던 곳은 신악전(? 그새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여기엔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이 안에서 뭔가 이런 저런 일들을 해주는 듯 한데 느낌상 부적 같은거 해주고 제례같은 거 해주고 할 거 같다.아님 말고다.

신랑 신부도 창앞에 서서 엄숙하고 경건하게 뭔가 주고 받고(귀금속 상자 같은 걸 받고 봉투 같은걸 주었는데)했는데 창안에 있는 동자가 신부로 부터 봉투를 받길래 뭐 사주같은거 적은 종이인가? 상상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뒤로 돌더니 돈을 세어본다.. 사례금이었다.. 역시 계산은 정확한게 좋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바라보다가 김은 좀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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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마당 한쪽 편에 있는 700년 된 삼나무 사진을  한 번 찍어주고.. 휘 둘러보고 나오다가 한쪽 벽에 촘촘히 매어놓은 운세지를 보니 갑자기 생각이 났다.. 일본 만화책에서 보면 정월에 기모노 입고 신사 참배를 가서 운세를 뽑는다는거... 늘 해보고 싶던 일이다..어디에서 운세지를 뽑을수 있나하고 보니 만화책에서 처럼 긴 통에서 뽑는건 아니고 마당 한복판에 무인판매대가 있다.. 만화책에서처럼 스릴은 없다..뭐...혼자 동전 집어넣고 혼자 여러개중 하나 고르면 되는거라서.. 여러가지 항목이 있는데 나와 남편은 행복 섹션에서 뽑고 고등학생 조카는 연인 섹션에서 뽑겠단다... 하하...짜식...

남편은 말길(末吉)/나는 소길(小吉), 조카는 손에 들고 뛰어간다..할머니께 읽어달라겠다고... 뭐 우리도 신세를 져야할듯.. 읽을 수 있는 글자는 딱 그 두 글자 뿐이니까... '흉(凶)'이 안나와서 다행이다...






버스안에서 시어머니는 말 안듣는 손자에게 운세지를 읽어주신다.. '규칙적으로 생활하지 않으면 파멸하게 될것이고...' 말들이 장난이 아니다..무시무시하다.. 심통난 조카는 '정말이예요? 진짜 그렇게 씌여있어요? 할머니가 만들어 내는거 아니예요?' 뭐 할머니가 딱 하고 싶은 말들이긴 한데 할머니가 그 자리에서 그걸 그렇게 꾸며댈 정도로 순발력이 있진 않다... 이 신사... 꽤 신기가 있나보다...다들 웃느라고 의자에서 떨어질 뻔 한다.. 운세지란게 그렇게 좋기만 하지 않고 경계가 되는 말들이 오히려 더 많이 씌여있다고 한다..말길인 우리 남편이 시어머니께 해독을 부탁한 후 한 말이다... 말길이 그정도 이니 '흉'은 어떨지...그래서 안 좋은 운세지를 뽑으면 신사에다가 비끄러매두고 온다고 한다.. 잔뜩 매어진 운세지들은 온갖 불운.. 슬프게 끝날 연애..이루지 못할 짝사랑들을 구제할  동아줄인 셈이다.. 



  • 각과 선의 나라 (일본에 대한 잡상)

일본엔 몇차례나 와보았지만 어디를 가도 느낌은 한결 같다.. 깨끗하다..
(일본이 사라진다고 하면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갖는 미움과는 별개로 아쉽다.. 일본 사람들이 참 불쌍하다는 이야기는 이번 여행중에도 몇 차례나 내입에서 절로 나왔다..)
늘 느끼는 깨끗함이지만 이번엔 유독히 선과 각이 더 눈에 띈다.. 건물들 도시들이 마치 건축모형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반듯반듯하다... 반듯하다...비현실적일 정도로 반듯하다.. 마치 박원순 시장이 된 기분으로 더 꼼꼼히 반듯함을 살핀다.. 모든 보도블럭들.. 펜스들.. 벽들..기둥들.. 모든 것들이 다 지나치게 고르고 반듯하고 각이 살아있다.. 지나치게...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면 이럴수 없어..싶을 정도로...곡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가 다 자대고 그린 선들이란 느낌.. 곡선도 물론 정교한 알(R)자의 산물로 보여진다..도시 전체에 선 적인 느낌이 아주 강하다.. 모든 각들은 다 맞추어져 있다... 뭐 그렇다.. 가령 200개의 판넬로 이루어진 펜스가 있다면 그 200개가 정확하게 자대고 그은 선으로 반듯하게 서 있다..2만개의 블럭으로 이루어진 보도가 있다면 그 2만개가 단 한개도 튀어나오거나 삐뚤어지지 않았다.. 경사진 곳의 블럭들까지도 완만한 경사면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 몸을 촘촘히 뉘어 완벽한 한 면의 구성체로 붙어 있다..근데 그게...전 도시에 그렇게 뒤덮여 있다...2만개 정도가 아니라..

아이들중에도 그림을 그릴때 자 없이는 안 그리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을 조금 유심히 살펴 메모를 해 놓는다.. 자 대고 그리는 게 무조건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강박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있다..일본인들은 확실히..강박적이다..일본인들의 단정한 미감 역시..강박적인 미감이다... 기능적이고 효율적이고 완벽함을 추구하는 강박...

강박은 아무래도 불안과 연관이 있다..흐트러져 있음을 못참으니까 자꾸 줄 맞추고 각을 세우는 거고.. 흐트러진 채로 두면 불안한거다.. 일본인은 불안하다.. 전 국민이 다..

자연환경과 연관이 있을듯 하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환경'이라고 사회시간에 배운대로 알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ESL 수업시간에 일본친구들도 똑같이..우리가 배운것과 거의 비슷하게 자기네 국가 소개를 하는 걸 보고 살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들도 국토의 2/3가 산이라고..그래서 자원이 별로 없고 인구밀도가 높다고 그렇게 말한다..그래도 그때는 '우리보다 땅도 몇배나 넓으면서 죽는 소리는.'.하고 생각했는데 일본의 온천지대들을 구경다니면서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일본의 자연 환경은 우리보다 더 가혹했을 거 같다..그건 자원의 문제가 아니다.. 안정성의 문제이다..
일본의 산하는 일본인들을 자애롭고 푸근한 어미로 품어주지 않았을 거 같다.. 무서운 여신으로 변덕스러운 여왕으로 일본인들에게 군림하며 굴종을 요구했으리라..1년에 500차례의 화산 폭발..수백차례의 지진...무서운 어미이다..그래서 일본인들은 수도 없이 맞닥뜨리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조금의 일탈도 비효율성도 용납할 수 없이 리더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어야 했을 것이다..그래야 살아남았을 것이다..그렇게 살아남은 감각이 강박으로 이어지고 그 강박이 모든 것들에 깔려있다..뭐 그런 생각이 든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