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

2012. 4. 23. 21:32 from 생각꼬리

# 4월 22일

   S의 가슴 한켠에 생긴 조그만 돌연변이 세포..

   S는 10년쯤 전에 한쪽 가슴에서 팥알만한 세포를 잘라내기 위해 수술을 했던 적이 있다..

   그 평범하지 않았던 모양의 세포를 도려내고 몇차례 항암치료라는걸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다른 쪽 가슴의 세포가 모양이 이상하다고 조직검사를 받으라고 한단다..

   다음주쯤 그날이 오기전까지 자기는 잊어버리겠다고 천하태평한 S는 그렇게 말한다..

   나도 말한다..

   '맞아..잊어버려... 미리 걱정한다고 좋은게 뭐 하나라도 있니?'

   그렇게 말해도 내 마음 한구석에 살짝 들어앉는 조그만 돌덩이..

   S의 마음 속에는 얼마나 큰 바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까?

                                                                                    

# 4월 21일

   Still Life

   영화보러 나가기도 귀찮아서 집에서 케이블로  pay movie를 보았다..

   리암 니슨이 나오는 그레이..

   무슨 액션 스릴러물이 아닐까 생각했더니 비행기가 알래스카의 눈밭에 불시착하는 재난 영화..

   그리고 미지의 적..

   괴물들이 나오는 몬스터 싸이파이류인가 했더니 그들의 정체는 늑대..

   그 다음부턴 재난 영화 특유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투쟁과

   헐리우드 공식과도 같은 한명씩 희생당하기..(절대 한번에 두명도 죽지 않는다...)

   그렇게 영화는 별 특이점도 없이 느린 템포로 흘러간다..

   액션도 없고 활극도 없고 /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것 처럼..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싶었는데 막판에

   촌스러울 정도로 정직하게 마지막 메시지를 들이대며 허무하게...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끝에서 세번째 사람이 탈진하여...

   더 이상의 삶과의 투쟁을 중단하겠노라 선언하며

   강가의 돌위에 앉아 이야기한다..

   이제 지쳤노라고..

   더 이상 살아남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겠노라고..

   (살아 남는다 한들...)내 인생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루종일 공장에서 일하고 밤새 퍼 마시고..

   내 인생은 그게 다라고..

   아무 의미가 없다고..

   그리고 그 장면을 보다가 문득 몇해전에 보았던 영화 'still life'가 떠올라왔다..

   Still Life는 중국 감독의 어딘가의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였는데

   보고나서 별 느낌이 없었다..

   고향을 떠난 한 노동자의 일상과 그리움을 소소한 일상 속에서 특별한 기승전결없이

   담담하고 잔잔하게 그렸던 영화였다는 기억..

   수묵화 같은 중국의 풍경과 잔잔한 일상..

   제목과의 연계성을 잠시 갸웃하며 일상중의 한 단면을 잘라서 보여주기 때문에

   Still Life( = 정물화) 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갑자기 떠오른 생각..

   노동자들의 삶/ 일상 자체가 정물화처럼 박제 되었다는 거...

   그냥 여기저기서 끌어다 모아 놓은 정물들처럼.. 살아있지 않고 이미 다들 죽어버린...

   아무렇게나 지어진 협소하고 옹색한 숙소에서 그저 잠만 자고 하루종일 일하고 또 자고..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

   삶의 기쁨과 즐거움도 없이 그저 영위되는 삶..정물화된 삶..

   새삼 그 영화가 그렇게나 슬픈 영화였나 싶다..

   아님 말고..

 

# 4월 20일

   벌써 10년..

   한겨레 문화 센타 사진반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 벌써 10년이다..

   H언니 YS와 만나서 이런 저런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집에 돌아오는 길..

   새삼스럽다...인연이...

   문득 8년 쯤 전에 친구에게 했던 호기로운 말이 떠오른다..

   '난 사진이 너무 재밌어.. 이걸로 뭐가 되겠다는 건 아닌데..

   한 십년쯤 하면 어떻게든 되어 있겠지..'

   그때 친구는 빙글 빙글 웃으며 '와~ 십년이나 할려구? 대단한데?'

   그때 마음엔 그랬다..

   이렇게 좋아하는 걸 만난것도 쉽지 않은데 그냥 한 십년쯤 해보지 뭐...

   호기로왔다...

   참 좋았었다..재미있었고...

   한 3년은 그렇게 지낸거 같다..

   10년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다 지나고 나니 또 원점에 서 있다..

   요즘도 또 말하고 다닌다..

   조금은 덜 호기롭게...

   '미술치료 공부 시작했어요.. 그냥 재밌어요.. 공부가 길어서 좋아요..

    걍 천천히 하려구요..'

   10년쯤 하겠다는 소리는 안한다..

   '좀 해보구 정 아님 접어야죠..'

    연막도 미리 쳐놓는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그냥 천천히 쉬엄 쉬엄 한 10년쯤 해봐야지..뭐래도 해야하잖아?'

    제발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말아줘...

    무노동에 대한 변명 강박증인거 같은데..

    하긴, 다른 사람이 묻지 않아도 스스로 묻고 스스로 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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