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깬 새벽...

2014. 11. 11. 06:21 from 생각꼬리

1.

어제 저녁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긴 했다..

중간에 화장실에 가느라고 일어나고 나선 한시간째 뒤척거리고 있다...


2.

엄마는 책 읽는 기계다...

여든이 넘으셨지만 만날 때마다 책을 가져다 달라신다..

처음엔 엄마가 읽고 재미있어 하실만한 책들을 골라서

이고 지고 가져다 드렸었다..

어느 순간 내용이 중요한게 아니구나 알게 되었다..

엄마에게 책은 새벽에 잠이 깨어 더 이상 잠자리에 누워 있지 못할때

아침을 기다리기 위한 수단.. 딱 거기까지...

그냥 기계처럼 읽는 거다...

그래서 말씀 하신다..

'아무 책이나 상관없어... 읽었던 거 또 읽어도 돼..'

말씀은 그렇게 하시면서 왜 책 다 읽었다고 가져가라시고

새 책 좀 또 가져오라시는지..

친구들은 '너네 엄마 대단하시다.. 그 연세에 아직도 책을 읽으시니?' 하지만

내용이 중요치 않은 채 뭔가 읽는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싶기도 하다..

내게 위안이 되는 건 나도 엄마 닮았으면 그 나이에도 눈이 괜찮을지 모르겠다는 거..

새벽에 일어나 앉으니 눈의 강건함이 더없이 절실하다...

조만간 나도 하게 될 일일지도 모르겠다...


3.

책을 읽는다고 그 책들이 다 내게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유명하거나..아니 단순히  유명한 게 아니라 가치가 있다고 평가 받는

문학작품을 읽을 때 (특히 상 탄 작가 혹은 작품.. 그래... 노벨 상...)

그 내용이 특별히 난해하거나 현학적이지도 않은데 

공감가거나 와닿지 않으면 살짝 당혹스럽다...

도대체 어디가 포인트인건가?

왜 읽고나도 아무런 감상도 감동도 심지어 재미도 안남는가..

나하고 이 책과의 접점은 왜 이렇게 안 만나지는 건가...

뭔가 조그만 돌기하나가 어긋난 병뚜껑을 헛돌리고 있는 느낌이다..

르 클레지오의 <황금물고기>가 그렇다...


<황금 물고기>는 몇년 전에 한번 읽었었고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두번 읽어봐도 느낌없고 공감가지 않기로는 비슷하다..

동일시가 안되나?

소설 속 세계를 내게로 옮겨 오던가 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던가..

둘 중 하나라도 이루어져야 몰입이 될텐데

라일라의 세계는 내게는 너무 낯설다..

아무리 아는 지명들이 나와도 여전히 내게는 낯모르는 세계다...

그런데 그것도 참 이상한게... 

여태 그토록 여러가지 다른 세상에 대한 소설들을 읽어왔는데..

내가 직접 몰라도 직접 경험한적 없어도 얼마나 많은 시공간을 엿보며 살아왔는데 

왜 특히 라일라가 속한 세계가 낯선건지...

비교하자고 들면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데...


아마도 주인공에 동일시가 힘들어서 인것 같기도 한데...

주인공이 내가 원하는 식으로 움직이지 않아줘서?

정신차리고 공부해서 인생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하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는 충동과 조급함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점점 더 나락으로 이끌어 가는듯 보여서?

맘에 들지 않는 주인공의 행보에 분통을 터뜨려 본 적이 그전에도 있긴 있지만...

이번엔 딱히... 그런것 같지도 않은데...


아... 이야기의 방식이 싫은거 같기도 하다..

아니...이제 알겠다...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건지 모르겠어서 싫은 거다...


작가가 뭔가 말하고 그게 나와 맞으면 좋다...

작가가 아무말 없이 그냥 펼쳐서 보여주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면 그것도 좋다..

그런데 아마 이 경우 내가 이해한 작가의 메시지가 나와 안맞는 거 같다..


라일라의 인생이 그렇게 흘러 가는 것...

그건 그대로 이해가 된다..

순간 순간의 위험에 맞서 최선의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리는 모습도 아름답다...

그런데 라일라가 '표류'해서 자신의 뿌리인 아프리카로 찾아온것...

마치 연어가 본능적으로 자신이 알로 태어나 치어로 자라난 강 하구를 찾아오듯이

순전한 본능에 이끌려 찾아온것...

거기부터 살짝 맘에 안들지만..뭐 그래...그럴수 있다 치자...

그런데 왜 <황금 물고기>인가?

살아남은 물고기는 모두 황금 물고기인건가?


라일라의 생에서 의도와 목적을 찾아볼 수 없다...

우연들...

모든 불운들..

모든 행운들...

모든 적들...

모든 도움들...

그리고 재능...

타고난 재능들..

장애들...


모든이에게 불운의 순간만큼 이유없는 도움의 순간들이 비례하지는 않는다..

라일라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계획된 것은 거의 없어 보이고 

순전히 운(행운이든 불운이든)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게 

아마도 내가 공감하기 힘든 이유인지 모르겠다..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그저 힘없이 운명에 이끌려 부유하는데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다고 <황금물고기>가 되는 건가?

아니다... 물론 운명에 이끌려 부유하면서도 자신의 선함을 유지하고 정체성을 찾는다면

그 이는 <황금물고기>라 할 만하다..

단지 그렇지 못한 다른 수없이 많은 거머죽죽한 물고기떼들이 운명의 그물에서 이리저리 몰리고 쫓기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모양새에 화가 날 뿐...

강하구까지 그들을 실어다줄게 오직 우연과 본능과 운명뿐이라는게 화가 날 뿐..

오로지 운명의 선택에 의해서만 황금 물고기가 될 수 있다는 게 화가 날 뿐..


4. 

내가 또 얼마나 잘못 읽었는지 오늘 저녁을 기대해본다...

과제 독서가 유용하긴 하다..

두번 읽지않았을 책인데 두번이나 읽고 뭐가 재미없는지 포스팅까지 하고 있다...


5.

니나 시몬은 좋았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