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편이 호들갑을 떤다.. 

'너를 위한 선물이 있어.. 식탁위에... 깜짝 놀랄 걸?'

나가보니 동네 제과점 빵들과 땅콩 버터..

쿡쿡.. 웃음을 참고 무덤덤하게 '그래 고마워~' 한다..


며칠 후 아침을 먹는데 언제나처럼 호두식빵 토스트와 계란 후라이 하나, 커피 한잔 그리고 딸기잼..

맞은 편에서 밥과 국을 먹고 있는 남편이 묻는다..

'내가 사준 땅콩 버터는 왜 안먹어?'

'나 원래 땅콩 버터 안먹어.. 빵은 호두 식빵하고 베이글만 먹고..잼은 딸기잼...

마말레이드도 별로고 다른 잼들도 다 별로야.. 딸기잼도 산딸기 뭐 그런거 싫고...

있으면 버리지 않으려고 먹긴 먹지만 난 안 사'


그걸 아직도 몰랐니? 쯧쯧 은 빼버렸다...  

젊었을 때라면 화가 나거나, 서운해서 외로워지거나 했을 일이 그저 웃긴 일이 되어 버렸다...


2.

생각해보니 아이도 땅콩버터를 안 먹는다..

미국학교에서는 급식시간에 음식을 가리는 아이들을 위해 최후의 보루로 준비되는 기본음식이

피넛버터 젤리 샌드위치이다..

그날의 메뉴가 안맞거나(알러지나 종교적인 이유 등등), 안먹는(그냥 싫어서..) 아이들이 

그래도 배를 채울 수 있는 마지막 저지선..

그렇지만 우리 아들은 그걸 안 먹는다...

피넛버터 젤리 샌드위치를 피하기 위해 뭐라도 먹었으리라...


3.

아이가 안 먹는 음식이 몇가지 있다..

채소 종류를 대체로 싫어했는데 그 중 토마토는 정말 싫어한다...

어릴 때 편식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방울 토마토를 억지로 먹으라고 윽박질렀다가

구역질을 하며 토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뭐... 토마토 안 먹어도 사는 데 지장없겠지...'

그때부터 음식을 마음껏 가릴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아이가 싫어하는 음식을 되도록 피했는데 몇년전에 아들이 방학때 나왔을 때는

계란 후라이를 해주고 노른자만 남겼길래 무심결에

'어? 노른자는 왜 안먹었어? 마저 먹지?' 했다..

'엄마 나 계란 노른자 안먹잖아.. 잊었어?' 한다..

아..맞다...계란 노른자 안 먹었었지... 우리 아들...

어떻게 내가 그걸 잊을 수 있지? 바보같이...


4.

변하지 않는 기억이 나를 성가시게 할 때도 있다..

어릴때 나는 곶감을 좋아했다..


우리 엄마는 생각해보니 통이 좀 큰 편인듯 하다..

가령 어릴때 귀했던 바나나..

한 손을 사놓고 매일 한개씩 우리들에게 감질나게 나누어 주다가 

어느 날 '옛다.. 그래 실컨 먹어봐..'하고 바나나 한손을 다 던져주지 않나...

귤 한박스를 통째로 주지 않나...(겨우내 귤을 하도 먹어서 황달기가 생긴 해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실컨 먹고 물려서 다시는 그 음식에 대한 갈증이 없게

그렇게 만드셨다...

뭐..의도하신건 아닌것 같은데...


곶감도 결국 그렇게 되었다...

어느 해 겨울이던가...

실컷 먹으라고 디밀어준 곶감 한 접시..(아마 열댓개쯤)

그걸 다 먹고 속이 달아서 혼이 난 이후로 곶감에 대한 열망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그렇지만 엄마의 기억 속에는 난 아직도 곶감을 좋아하는 어린 계집아이로 남아있다..


결혼해서 미국에 갔을 때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곶감을 항공화물로 부쳤는데

처음 부쳐보는 해외소포라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몰랐던듯 하다...

익스프레스로 부쳤더라면 좋았을 걸

포장도 엉성한채로 (랩핑도 제대로 안하고..) 일반으로 부치는 바람에

우리집엔 2~3주도 더 걸려서 박스가 다 너덜 너덜해지고

속의 내용물이 다 튀어나올듯 엉망이 된채로...

곰팡이가 잔뜩 피어서 도착했다...


엄마는 자신이 한 일이 대견해서 

'내가 그때 곶감 부쳤는데... 너 곶감 좋아하잖니...'하고 종종 이야기하지만...

난 쓴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다...

그 곰팡이 핀 곶감은 미안하게도 나에겐 엄마의 무심함과 부주의함의 상징처럼 각인이 되어 버렸고..

오랫동안 자기만족적 자식 사랑의 표상처럼만 여겨졌다..

'엄마... 난 더 이상 곶감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이젠 간신히 한개 집어먹거나 안먹거나 정도 이다..

일부러 사진 않는다.. 선물로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5.

그래서 난 살핀다..

내가 모르는 새 우리 아들이 변했나..

토마토를 먹으면 토하던 아이가 지금도 여전히 토마토를 싫어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어떤 특정한 종류의 햄버거를 먹을 때는 먹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고..

피클,피망, 계란 노른자는 여전히 싫어하고..

커피를 안 먹던 아이가 아침에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마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계속 살펴야겠다.. 

고정된 기억에 묶어 놓지는 말아야겠다... 생각한다...

그러면서 또 잊지도 말아야 한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