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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리스본으로 이끌었던 책 <리스본행 야간 열차>를 조금씩 다시 들여다 보고 있다..

(조금씩인 이유는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걱정 때문에 몰입 할 수 없어서..어차피 아무 것도 안하면서도..)

초반 그레고리우스가 갑자기 리스본을 향해 떠나는 돌발 행동을 할 때 귓속에 울리던 '포르투게스...'

'하루종일이라도 이소리를 듣고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라든지 '조용하고 우아하군요 지나치게 번쩍이지 않는 은처럼.'

이라고 묘사하게 만든 언어...


다시 들춰보기 전까지 이 부분에 대해 전혀 기억 못한채로 포르투게스에 대해서 나도 나만의 느낌이 있었는데..비슷하다...

리스본을 들러 바르셀로나로 갔는데 리스본에 대해 묻는 한인 민박집 주인과 객들에게 나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스페인 사람들보다) 더 조용조용하고 친절한 것 같아요..'

'스패니쉬는 되게 시끄럽게 들리는데 포르투게스는 마치 속삭이는 것 같아요..'

그에 대해 사람들은 바르셀로나에 비해 리스본은 관광객이 적으므로 사람들이 아직까지 순박하고 착하다..혹은 여유롭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아직까지 그 곳을 오염(?) 시키지 않았으므로 일본인들이 구축해놓은 예의바른 동양인의 이미지가 

살아있어서 사람들이 친절한거다 등등의 해답을 내놓았고

바르셀로나에서 8년이상 살고 있는 민박집 주인은 '스패니쉬가 시끄럽죠... 맞아요... 포르투게스가 더 조용하고 그래요..'라고

비로서 나의 느낌에 동조하는 발언을 해주었다..


사실 나는 포르투게스와 스패니쉬를 구분하지 못한다..

'감사합니다'를 스패니쉬로는 '그라시(티)아스', 포르투게스로는 '오브리가다(여자),오브리가두(남자)'라고 한다는 것 

이상의 지식이 없다..

두 언어를 동시에 듣는다해도 구별해 낼 자신은 없다...

그럼에도 확연히 포르투게스는 부드럽고 속삭이는 듯 하다라는 느낌은 있었다...

그리고 그걸 책에서 다시 확인하니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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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과 바르셀로나 중 어디가 더 좋았는지 묻는다면 참... 힘들다..

같은 시기 비슷한 지역으로 떠난 여행인데 이렇게 느낌이 다를수가...

바르셀로나는 보다 확실한 느낌이다.. 

언제 어느때 가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확실함, 견고함이 그 도시에는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가우디에 있다..

가우디는 아마 지구상 그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리스본은.. 나에게 타임머신을 태워준 기분이랄까?

내가..마치...30대의 자유로운 여행자가 된 기분을 맛보게 해주었다면

어쩌면 가우디보다도 더 멋진 일일 수도 있다..

가우디의 건축물은 언제 어느때라도 나를 감동시키겠지만

30대의 나와 같은 느낌은 언제 어느때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기분이 아니다..

(리스본을 다시 간다고 해도 그런 기분이 다시 들지는 의문이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사람들 말대로 관광객이 적어서 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리스본에 모여든 관광객들에게는 뭔가 모를 여유가 있다..

아마도 도시가 사람들을 초조하게 만드는 꼭 봐야할 것, 혹은 놓치지 말아야할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코메르시우광장 앞 강가에는 그다지 특별할 것도 아름다울 것도 없는 풍광이 펼쳐지지만 

새똥으로 얼룩진 더러운 돌계단에 기대고 누운 사람들은 거리의 음악가들의 연주를 배경음악 삼아 

저마다의 시간과 상념속에서 타호(테쥬)강을 바라본다..

그냥 하염없이 앉아있는다... 

리스본에서의 시간은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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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서 내가 30대 여행자의 기분을 살짝 맛 보았다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가령.. 여행을 그렇게나 많이 다녔어도 모르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본  기억이 없다..

특히 외국인과는 더욱 더...

단체 여행을 따라가도 거의 우리 식구 혹은 동행자와만 이야기 나누고 행동했었다..

외국인에게는 길 물어보는 것 이상의 소통을 해본적이 없고 그나마도 별로 없다..

그런데 리스본에서는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단순한 이유가 나를 타임 머신 타게 만들었다면 나도 참 단순하다..

맞다... 나 단순하다... ㅠ.ㅠ

그냥 '아~ 젊은 사람들은 여행에 이런 느낌들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겠구나~'

라고 미루어 짐작하는 기분을 잠시 맛본걸로 해두자...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건 런던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20년쯤 전에 갔던 런던의 인상이 무색하게 (당시엔 영국 사람들, 무척 교만하고 불친절하단 느낌..)

어찌나 사람들이 친절하시던지 잠깐만 길을 물어도 자신이 알던 모르던 얼마나 자세히 설명하려 애쓰는지

우리끼리 결론을 '사람들이 죄 외롭다.. 그래서 누가 말 걸어주기만 기다리고 있다'로 내릴 지경이었다..

(자기도 잘 모르는 길을 하도 친절히 가르쳐주어서 우리가 오히려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든 사람도 있었다..ㅜ.ㅜ )

(친절과잉으로 우리를 이상한 뮤지엄까지 안내해준 이상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아마도 내가 20년 전보다는 영어가 좀 되니까 리액션이 좋아져서 그런가 보다 싶은데

리스본에서는 택시 운전사부터 시작되었다..

공항에서부터 호텔로 데려다 준 이 택시 운전사 아저씨..

내가 몇마디 맞장구를 쳐주자 알아듣기 힘든 포르투갈 액센트가 섞인 영어로 쉬지않고 말을 풀어놓는다..

처음에는 성심껏 알아듣고 맞장구 치고 질문하고 하려고 애썼으나 곧 깨닫게 된

이 아저씨에게는 나의 반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자신의 임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나보다.. 아니면 모처럼 만난 외국인 앞에서 나홀로 영어 연습?

나중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든 그냥 듣고 있고 이 아저씨 고장난 어학 테이프처럼 쉬지 않고 줄줄줄...

그래도 이 아저씨 덕에 중간 중간 유용한 정보도 몇개 얻긴 했다...(예를 들어 우리 호텔 바로 옆 건물이

시외로 나가는 기차 터미날이라는 것과 뭐... 몇가지 더 있었는데... 잊었다...)


그 다음 만난 외국인 커플은 파두 공연장에서..

둘쨋날 저녁식사를 파두공연을 볼 수 있다는 아마도 관광객 전용 식당쯤 되는 곳에서 하게 됐는데

옆자리에 미국인 할머니 할아버지 커플이 앉았다..

식탁들이 촘촘히 놓여지고 한군데도 빈좌석이 없이 빽빽히 채워진 곳이었는데 할머니, 내 옆에 앉자

곧 영어 할 줄 아느냐고 묻는거다.. 조금 한다고 하니 반색을 한다..

시애틀에 사는 부부로 집떠난지 4주가 되어 간다는 할머니.. 

우리와는 반대로 바르셀로나로부터 시작하여 스페인 곳곳을 거쳐서 (그라나다, 마드리드, 세비야 등등)

리스본에 도착하였는데 포르투게스를 한마디도 못하는데 영어를 쓸수 있어서 너무 반갑다고...

바르셀로나에서는 멋진 한국인 가족들을 만났노라고 하며 무척 반가와한다..

아마도 미국에서부터 나 같은 동양계 외국인들을 많이 대해보았는지 발음 한마디 한마디를 천천히

분명하게 해주려고 애쓴다..

할머니는 내게 이 파두 식당이 새벽1시까지 문을 연다고 알려주었고 나는 나대로 포르투갈어에 

전혀 지식이 없다는 할머니에게 포르투게스로 R은 H로 발음한다고..

그래서 내가 묵고 있는 호텔 옆 광장인 호씨우 광장과 할머니가 묵고 있는 호텔 옆 광장인 로씨우 광장이

사실은 같은 곳이라고 알려주었다..

할머니..바르셀로나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 부분은 내가 바르셀로나에서 확인을 했다..

(다음 기회에..) 

부부가 같이 와서 자기네 끼리는 실컷 같은 언어로 이야기 할수 있었을 텐데도 

모르는 낯선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싶은 심리..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 심리...그것이 여행가의 심리인가?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30대의 마음인건가?

그렇다면 이 노부부도 여행하는 마음은 30대 인건가? 등등의 엉뚱한 생각을 뒤로하고

우리는 10시 반쯤 인사하고 나오고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마도 1시까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다는 파두를

즐기기위해 식당에 남고...(마음은 어쩌면 우리가 더 늙었구나.. 내일 걱정을 하다니...하는 생각도 잠시...)


셋쨋날 알파마지구의 상조르제 카스텔로 아래 식당에서...

밥부터 먹고 힘을 내어 성 구경을 하기로 하고 가장 호객행위를 활발하게 하는 식당의 노천 파라솔 밑에 앉았다..

호객행위를 열심히 하는 웨이터와 메인 웨이터의 재미있는 말씨름 공방을 보면서 (씨애틀에서 왔다는 어떤 

미국인에게 제발 좀 저 말많은 녀석 데려가라고.. 데리고 가서 바다에 던져 버리라고...) 웃고 있다가

친구가 내 뒷쪽 (의자의 방향을 약간 돌리면 옆테이블이라고 할수도 있는..) 테이블의 커플이 마시고 있는

음료에 눈길을 주었다..'나도 저런거 먹고 싶어...'외국인과의 몇번의 접촉으로 자신감을 얻어 겁이 없어진 나는 

'지금 마시고 있는 음료가 뭐예요?'하고 물었고 곧바로 '샹그리아'라는 답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말길이 열렸다..

그 커플은 친구랑 둘이 흘깃거리며 여자도 참 예쁘고 남자도 참 멋있다 라고 논평하던 대상이었는데...

내 뒷자리에 앉은 남자가 자꾸 말을 걸어온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그들은 파리에서 북쪽으로 한시간쯤 떨어진 도시에 산다는데 두번이나 발음해주었지만 

알아들을수 없었다..

여기보다 날씨는 나쁘지만 사람들이 참 좋은 곳이라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가보고 싶단다.. 

친구중에 포르투게스들이 있는데 그들이 참 좋아서 리스본에 오게 되었다고..

샹그리아에 대해서도 설명해준다..스페인에서 먼저 만들어졌는데 와인에 설탕과 탄산수와 과일등을 섞은 거란다.. 

그런데 그게 포르투갈에 들어오면서 포르투갈 식의 뭔가가 더 들어가서 더 맛이 있단다.

비밀 재료가 뭘까 물으니 아마도 더 많은 설탕인것 같다고 하며 웃는다...

잔 바닥에 미처 녹지 않은 설탕이 하얗다..

프랑스식 액센트가 섞인 영어로 이런 저런 말을 하고 말을 거는 남자의 눈동자가 참 예쁘다..

회색눈인데 맑고 밝고 초롱초롱한 눈이 아니라 뿌옇고 탁한듯 보이는, 그러면서도 투명한 회색눈이다..

어릴때라면 정말 이상하게 보였을 회색눈... 그런데 정말 예쁘다...

식사를 마치고 서로 인사하고 헤어진 후 서 너 시간쯤 후 성을 다 보고 한가롭게 골목 골목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는데 마침 트램이 지나간다..

길 한쪽으로 비껴서서 트램을 보내는데 누군가 팔을 쭉 뻗어 크게 손을 흔든다..

그 커플이 트램을 타고 있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마치 반가운 친구처럼 아는 체를 해준다..

이런게 여행지에서 친구를 사귀는 느낌인가?

새삼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진이라도 한장씩 찍을 걸.. 후회가 된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