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이드가 없었더라면...

(가이드라 함은 이 책을 소개하고 비평하고 문학상을 준 전문가들을 말한다...)

나는 이 책을 어떻게 읽고 어디쯤 던져 놓았을까?

새삼 지식의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들고 앞서나가는 분들이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2.

독서회가 없었더라면...

읽어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바쁘니까 나중에...하고 한쪽으로 밀쳐 놓았을터...

무엇을 말할지 생각해보고 정리해볼 기회를 갖게 해주어서 독서회에도 역시 감사...


3.

공산주의에는 관심도 없었고 우리때 흔했던 막스에 관한 불온 서적 한권 안 읽었던 터라

진짜 뭐가 뭔지 잘 모르지만..

언뜻 생각해볼 때 공산주의는 공리를 앞에 놓고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앞에 놓는 걸로 여겨진다..

'공리를 위해 개인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다...(많이)'가 아마도 공산주의의 한가지 바탕이 아닐까?

상대적으로 자본주의는 개인과 자유를 조금 더 지지하는 듯 하고...

배경은 이렇게 개인의 자유가 무척이나 제한 되었던 마오 시절의... 더군다나 병영이다...


온 나라가 일사불란한 하나의 군대 같았던 중국..

새로운 중국이란 새로운 계급과 위계질서와 다름이 아니고

물리적 자유 뿐 아니라 생각의 자유까지도 엄격하게 통제 당하는 사회..


4.

자유가 제한될수록 기회가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공산주의든 아니든 자유연애가 지지 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연애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기회가 적으면 경험도 적고 적으면 적을수록 희소성의 법칙은 빛을 발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많은 자유를 누리며 지지 받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보다 훨씬 적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다른 시대,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더 정열적이고 장구한 연애사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생 단 한번의 불꽃 같은 경험라면 한 인생에 충분히 깊은 낙인을 남길수 있겠지만

수도 없는 비슷한 기억을 모두 영혼에 기록한다면 하나 하나의 선명성이 좀 흐려지지 않을까?

인생의 경험을 하고 난 우다왕이 그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5.

그러니 어떻게 시작되었든 우다왕과 류롄이 사랑에 빠진 것 또한 당연하다..

사랑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시작되어야하는가...

아무리 정형화된 사회라도 거기에 한가지 답을 내놓을순 없다..

사랑은 어떤 것이든 될 수 있고 어떻게든 시작될 수 있다..

두 사람이 일치한다면 어떤 형태로도 가능하다..


6.

우다왕의 사랑은 중국이라는 시대적 상황적 특수성을 등에 업고 15년을 이어 내려온다..

우다왕의 처에 대한 태도, 장인의 우다왕에 대한 태도, 우다왕과 류롄이 서로 자신의 사랑을 맹세하는 장면,

아니면 영화 <오일의 마중> 등등에서 보자면 중국인들에게 중요한 정서는 약속인듯 하다..

하긴 사랑은 결정이고 결정하고 나서 헌신하는 것은 사랑의 중요한 한가지 조건이다..


7.

그렇다고 이 소설이 연애소설인가? 

그런 이유로 출간되자 마자 금서가 된건 아닐 것이다..

작가 자신이 '사랑과 존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 중국 당국이 출간되자 마자 판금, 전량회수, 5금 조치를 

취해버린 것처럼 이 소설은 명백한 사회소설이다..

작가는 '중국의 특수한 시대, 특수한 배경'에서 이 소설이 탄생했고 이런 '영혼의 감옥'이 단지 중국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권력이 있는 한 견고한 담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히며 '이 담장이 인간의 정신과 문화의 

아우슈비츠가 되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사랑보다는 '존엄'쪽으로 읽어달라는 뜻인거 같다..


8.

하지만 나는 연애소설로서의 또 다른 보편성을 본다..

비슷한 시기를 다룬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나 모옌의 <개구리>와 비교해볼때

우다왕의 결혼에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위화의 작중 인물들과 모옌의 작중 인물들도 우다왕과 류롄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비슷하게 말한다..

비슷한 배경의 인물들이다..중국 농촌의 힘없고 가난한...


한가지 차이라면 그들은 주위의 비슷한 인물들과 연애감정 비숫한 걸 느껴서 결혼을 한다..

어쨋든 한 동네에서 같이 자라서 비슷한 호감을 느끼고 비슷한 결혼관과 가치관을 공유한 사람들끼리..

딱히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는 건 아닐수도 있지만 당연한 호감으로 시작되고 서로 의지하고 감싸주고

책임지는 가족..

내 피가 섞였니, 안 섞였니 따져서 애정이 생겼다 말았다 하는 허삼관조차 사랑과 결혼이

보다 나은 물질적 생활의 방편과 도구로 이용되지는 않는다..


거기에 비하면 우다왕의 주변인물들은 보다 더 목적추구에 매몰된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의 목적은 과업달성, 소출증대, 인민의 이익 같은 공산주의의 구호와 다르지 않은

공, 승진, 간부, 안락한 삶이다...

그 결혼에는 아무런 감정도 인간적인 면모도 없이 그저 물질과 현실로만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결혼을 통한 인생의 목표를 더 큰 물질적 만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공산주의 국가든 

자본주의 국가든 어디에나 있다.

그리고 그 부분에 이 소설의 시대, 배경과 무관한 보편성이 있는 것 같다..

비슷한 애정관, 결혼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건 지금 현재 우리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신혼 첫날밤, 밝은 달빛 아래서 자신의 결혼에 사랑이 빠져 버린 걸 뒤늦게 깨달은 우다왕이 

혼인의 슬픔과 처량함을 삭이는 모습이 어쩌면 우리가 피해가야할 함정을 가리키고 있는지 모른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