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전염

2014. 11. 1. 11:13 from 기억한올

# 우울함은 살짝 전염성이 있다..

아니..보다 정확하게 기분은 살짝 전염성이 있다..


아침에 말할수 없이 가라앉은 기분과 이유를 알수 없는 눈물로 눈을 뜨는 것은 참 오랜만이긴 하다..


사실 이유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세가지 뚜렷한 이유가 이 감정이 전염이 아니고 자연 발생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제 날씨...우중충하고 흐릿흐릿 묵직한 하늘에 스산한 바람까지...

더구나 우리 집은 중앙 난방이 되어놔서 간절기인 이맘때 오히려 바깥보다도 춥다..

뼈를 시리게 하는 냉기가 불꺼진 집안에 가득하단 말이다...


어제 몸 상태...감기 뒤끝에 혈기 왕성해진 내 백혈구란 놈들이 

감기군을 퇴치하고 의기양양해진것 까진 좋았는데 빨리 해산을 안하나보다...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도 제대로 못하는 이 정신 못차리는 것들이 다시

내 모세혈관들을 공격하고 있다...이번엔 좀 넓게 오래 공격한다..

수도 없이 반복되는 이 내전에서 지원병 노릇을 하고 있는 스테로이드 연고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죽을만큼 아픈건 아닌데 스물스물 걱정이란 놈이 

때를 놓치지 않고 내 척수를 타고 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우울이란 간세가 내부에서 호시탐탐 성문을 열어 줄 기회만 엿보던 참이다..


어제 읽은 책...레싱의 <다섯째 아이>

여기에 대해선 정말 정말 말하고 싶지 않다...

흘러 보내도 흘러 보내도 마르지 않는 내 맘의 우물같은 곳인가보다..

충분히 퍼내고 말려서 뽀송뽀송해진줄 알았는데 이렇게 직격탄을 쏘아버리면 

나로써도 어쩔 수 없다...


# 누군가 우울하다고 할때 내가 그 기분에 도달하지 못하면 답을 해 줄수가 없다...

그저 그렇고 그런 상투적인 답변으로 억지로 북돋음의 먼지를 피우거나

아니면 훠어이 훠어이 물럿거라... 불안 불안한 내 곁에 가까이 못오도록 살짝 한걸음 비켜서는 수밖에...


내가 그 기분에 도달했을 때도 여전히 답을 해줄 수가 없다..

막상 우울에 빠지면 다른 누군가에게 손 내밀기는 점점 더 힘들어 진다..

우울한 두 사람이 모여서 각자의 우울의 근원과 깊이를 재어보여주는 건 얼마나 볼썽 사나운가...



이러 저러한 이유로 실은 우울한 사람들이 서로 모이는 건 그닥 현실성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서로 딱 만나는 지점은 힘들다..

누군가는 너무 이르고 누군가는 너무 늦다..

누군가는 오래 머물고 누군가는 스쳐 지나가 버린다..

가버리는 사람의 뒷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게 

오래 머무는 자의 숙명이다...


# 비록 눈물로 시작했더라도 11월의 첫 아침이 환했으면 좋으련만...

20여년전 가깝게 지냈던 가족의 부친 문상을 가는 건 뭐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 본다 치면 되는데

그 소식을 전해 주는 지인의 간암 소식은...

도대체가 활기차게 시작할 수가 없는 아침이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