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깔대기

2013. 2. 20. 12:45 from 기억한올

오십을 바라보는 여자 셋이 모였다..

여자들의 친구가 일하는 가게이다.

여자들은 서로 자식들의 안부를 묻는다.

여자 4호가 써비스로 땅콩을 가져다 주면서 친구들의 대화에 동참한다.


4호: 우리 아들 이번에 재수해..

3호: 우리 아들도 재수 했잖아.. 걱정 마..학원 가면 다 해결돼..

       근데 OO이네 애도 이번에 고 3이었는데 어찌됬나 모르겠네..

1호: OO이도 고3이었어?

3호: 응..XX네도.. VV네도..

1호: 아.. 고 3 많네..

여자들은 한참 자식들의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2호 : 아~ 애들 얘기 하지마 . 머리 아퍼...

1,2,3호 : 우울해...


1호 : 그래 애들 얘기 하지말자..

        시부모님 이사하실 때 가봐야 돼?

2,3호 : 가보면 좋아하시겠지.. 오후쯤 가..식사나 같이 해드려..

3호 : 시부모님 두분만 사시니?

1호 : 아니 큰집이랑 같이 사셔..

3호 : 왜?

1호 : 몇년전에 큰 형님이 돌아가셔서..

3호 : 아니 아직 젊은데 어쩌다가..암이였어? 암?

1호 : 그건 아니지만... 

2호 : 내가 아는 누구도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 말야... 

여자들은 각자 자기 주변에 죽은 사람들 이야기를 한다..

1,2,3호 : 아~ 죽는 얘기 하지마... 우울해....


3호 : 뭐 재미있는 일 없어?

2호 : 재미있는 일이 뭐가 있어? 나 하루종일 화장실 청소 한 얘기 해줄까?

여자 2호는 홈쇼핑에서 보고 산 세제를 이용해 화장실 청소 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2호 : 그래서 지금 손목이 다 아프고 말야..

여자들은 각자 어디가 아픈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화제를 돌린다..


3호 : 1호는 이근처에 일이 있는거야? 뭐 배우러 다녀?

1호 : 배우러 다니는건 아니구..

2호 : 얜 맨날 뭐 배우잖아..

3호 : 그러다 너 훌륭한 사람 되겠다..

1호 : 책을 읽을 수가 없어..눈이 침침해..넌 괜찮아?

여자 3호는 바느질을 한다..

3호 : 나도 안보여.. 요즘 안하잖아.. 이거..이 안경..기능성이래는데 괜찮아..

2호 : 다촛점? 

3호 : 다촛점은 아니구..

여자들의 이야기는 노안으로 빠진다...

그리고 나서 곧 흰머리 이야기가 시작된다..

1,2,3호 : 아~ 우울해...



서로 얼굴을 쳐다본다..

그리고 웃는다..

1호 : 오늘 왜 이러니?

2호 : 그러게 말야..

3호 : 모든 이야기가 다 우울해로 끝난다..야..


50을 목전에 둔 여자들은 우울함의 깔대기가 너무 커서 기를 쓰고 안간힘을 써봐도 

벗어날 길이 없는건가? 잠시 의아해하다가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 쓸쓸히 집으로 향한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