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예민함

2012. 7. 19. 19:03 from 생각꼬리

그 점쟁이는 그렇게 말했어
'본인이 예민한거 알죠?'
그런가? 내가 예민한가?
초등학교 1학년때쯤의 그 늙수구레한 의사 아저씨는 내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내 엄지손가락을 자기 손톱으로 긁었어
내 속눈썹이 파르르 파르르 떨렸지
'이 아이는 감수성이 예민하군요'
'감수성이 풍부하다..'도 '신경이 예민하다..'도 아닌 감수성과 예민하다의 조합으로 그렇게 말했어

 

누구나 예민한 구석은 있지
내 속엔 알람시계가 하나 들어서 진짜 알람을 맞춰 놓고 자도 늘 10분전쯤 눈을 뜨지만 그거야 뭐... 대신 나침반은 없잖아?
속에 알람 이나 나침반, 메트로놈이나 절대음감 혹은 절대미각 그중 하나쯤은 다들 갖고 사는거 아냐?
우리집엔 밤9시가 넘으면 까치발을 들고 다녀도 마루쪽 하나 삐걱하는 소리에 잠을 깨고, 서랍 한번 열고 닫아도 삐뚤어진 모양새에 잔소리가 날아오고, 물 비린내, 수박 비린내, 오렌지 비린내에 구역질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 살았었다고
난 아주 수더분하고 무던한 애였었다고

 

내가 예민한 구석이 있지
어휘에 민감해
콩떡같이 말하고도 찰떡같이 알아듣는거.. 그걸 못해
남편이 그랬어
'넌 전라도 사람이랑은 안되겠구나..'
그래. 아마도 난 대화중에 나오는 그 모든 거시기와 머시기를 자동 번역기를 돌려 해석하려 들꺼야
거시기와 머시기만으로 물흐르듯 흐르는 대화.. 난 그런게 될리가 없다고

수도 없는 거시기들과 머시기들을 규정하다 보면 대화가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
친구가 말했지
'너네 남편도 네가 얄미울꺼야..'
단어들이 입속에서 뱅뱅 돌다가 엉뚱한 옆말들을 거시기 머시기 해버릴때마다 맞춤법 자동 체크하는 프로그램처럼 정정해주거나 추천단어로 자동변경해주는 나를 보고 한 말이지
아무 생각없이 '단어 수정과 지적질  모드'에 돌입해버리면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와 버린다고..

나도 종종 '아차'한다고..때로 혀를 꼭 물고 있을걸 한다고..어떤 땐 내가 봐도 내가 얄밉다고...

 

'그렇긴 한데 친구야..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남편은, 날 얄미워 한다기보다.. 그냥 가끔 나한테 주눅드는거 같아'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