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날과 다르지 않은 그저 심상한 날들의 기억이 있다..
무슨 줄거리가 있는 사건이 있었던 날도 아니고 기억할만한 맥락의 꼬투리라도 있는 날들이 아닌
일상속에 스쳐지나가는 많은 날들중 하나인 그런 날..
그런데도 유달리 기억에 남는 그런 것들이 있다..
아무 주목하거나 기억할만한 사건도 없이 기억나는 그날의 감정...
우리 머리속이 참 이상해서 왜 이런 아무것도 아닌 기억들을 선명히 도장찍고
정작 우리가 가치를 두는 날들은 한뭉텅이씩 덥썩 잘라버리는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어쩌면 내 몸이지만 내가 완전히 이해할수 없는 내 '뇌'가
내게 경의를 표하길 요구하는가보다..
생각해보니..내 몸이지만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게 사실 뭐가 있을까?
내 '위'? 내 '간'?
몸안의 장기들은 말할것도 없고 하다못해 내 손과 발, 속눈썹과 머리카락 한올도
'나는 너를 모른다' 인셈이다..
내 '뇌'는 두말할 나위도 없고 내 온몸에 엎드려 경의를 표해야 할 지경이다..써놓고보니...
이야기는 옆으로 새지만 오늘의 기록은 문득 떠오른 여느 심상한 날의 기억들이다..
기억 #1 : 대학 다니던 때..
버스 정류장..(567번 버스를 타고 가서 서울대 가는 버스를 갈아타는 반포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무질서 하게 서 있다가 버스가 오면 우루루 몰려가서 서로 경쟁하며,
밀치며 타야하는 세렝게티식 적자 생존의 승차 시스템이었는데 늘 그렇듯 그날도 버스를 기다리며
그냥 서 있을 뿐이었다..
아직 밀치지도 않고 밀쳐지지도 않고 버스를 놓친것도 아니고 그냥 대기 상태..
그런데도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의 긴장감과 땀냄새와 그런 걸 느끼며 버스가 오길 기다리며
서 있는 순간의 불쾌지수가 극도로 고조되어 있는 나의 기분..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뻗어 있는 혐오에 가까운 적대감..
그리고 내 적대감을 스스로 느낀 순간의 놀라움..
이 사람들과 같은 순간,같은 공간에 서 있을뿐인데...일면식도 없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일 뿐인데
왜 난 이사람들에 대해 이런 적의를 느끼고 있는가?
짜증을 알지 못하는 대상에게 적개심을 느끼는 것으로 표출할 수 있는 나자신을 발견해서 놀라웠던 기억..
또한, 사람들이 이유를 알수 없는 적의를 느끼게 만드는 사회가 조금 무섭다 잠깐 생각했던 기억..
기억 #2 : 몇해전..
아들이 귀국해서 저녁식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 앞 수퍼에 들러서 뭔가 사고
다시 차에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갑자기 밀려오는 행복감..
여느 심상한 저녁처럼 그저 간단한 외식을 하고 장을 보는 일상적인 일일뿐인데
'행복하다'라는 느낌이 드는것도 참 우습고..그 기억이 오래 남는것도 참 이상하고...
내 행복은 이런 소박한 곳에 있구나 라고 생각했던 기억..
기억 #3 : 고등학교때 혹은 대학교때..
잠실...
어쩌면 고등학교때 인것도 같고 아니면 대학교 때인지도 모르겠다..
그날의 일정이 기억에 없으니 정확한 정황을 알수가 없다..
다만 잠실의 버스 정류장이었고 저녁 7~8시쯤...
어둑 어둑함을 넘어 약간 깜깜한 무렵..
아파트의 불빛들을 보며 저 많은 불빛속에 내가 갈곳이 없구나란 기분이 잠시 들었었다..
당시는 아파트의 삶이란 걸 부러워해본적도 없고
우리집도 엄연히 있는데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어두운 밤거리에 수많은 불빛속에서 내가 아는 불빛이 없다라는 생각속에
그 수많은 익명의 수에 압도 당하는 느낌..
세계가 저렇게 크고 나는 이렇게 작구나..
뭐 그런류의 막막한 느낌...
기억 #4 : 중학교 1학년초..
중학교 1학년초에는 학교에 갈때는 버스를 타고 가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걸어서 돌아가곤 했다...(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
집으로 돌아갈때 큰길로만 다니면 가장 쉽고 편하고 빠르게 다닐수 있지만
때때로 알수 없는 골목길로 탐험 아닌 탐험을 하곤 했는데 그날도 역시 그렇게
집으로 가는 길에 늑장을 부리던 어느 날..
개나리와 목련이 핀 길들을 따라가다가 들어 선 어느 골목..
작고 낮은집들이 촘촘히 붙어 있는 좁은 골목길..
어릴 때 살던 동네를 연상시켰던 그 골목길의 집들..
낮은 담너머로 살짝 살짝 보이던 집들과 지붕들
담장 너머로 뻗어나온 꽃가지들..
그리고 사람 사는 냄새..
밥짓는 냄새..
엄마들의 아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풍경..
그리고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