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나들이 2

2015. 2. 27. 21:38 from 기억한올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3년전 날짜를 세번이나 받아놓으시고도 살아남으셨던 외삼촌은 

드디어 뜻을 이루셨다...


청주 장례식장에 가는 길은 이제 겨우 정월 이레(음력)일뿐인데 

재작년 처음 외삼촌댁을 방문하던 그날처럼 어찌나 포근하고 화창하던지..

봄날 같았다...


96세..다들 호상이라고 하는 연세시라 그런지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유쾌하고 즐거웠다..

시원섭섭 홀가분한 분위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즐겁고 유쾌하게 소풍 끝낸 사람에 대한 분위기..

자손들의 분위기가 그랬다..

사촌 오빠도 언니들도 붉어진 얼굴이었지만서도..


작년 봄에 찾아뵀을때 신지가 많이 흐려지셨다 싶게 멍하니 계시더라니...

작년부터는 치매가 오셨다한다..

순한 치매라 먹는 것에만 욕심을 부리실 뿐 생전 험한 말 한마디, 포악 한번 안부리셨다 했지만은..

그래도 구십 연세의 외숙모가 수발하기엔 너무도 힘에 겨우셨을게다...


요양병원으로 모신지 한달 며칠..

식사도 더 잘하시고 워커를 밀고 걸어다니시며 근력도 더 좋아지시고 해서

왜 진작 안 모셨을까하는 생각까지 했다고들 하는데...


택시를 불러서 탈출을 세번 시도하신 외삼촌은 병원에서 말썽쟁이 요주의 환자 였단다..

정신이 온전하신 낮에는 간호사 언니들에게 온갖 유식한 소리는 다하시고

밤이 되면 너무 외롭다고 외숙모 보고 싶다고 우셨다고 한다..


명절에는 아들 내외와 조카며느리와 함께 고향 마을을 둘러보시고

역시 자리보전하고 누우셔서 여러 해 얼굴 보지 못했던 마을 친지들 얼굴 보고

사시던 아파트 앞에 오셔서 2층이라 올라갈수는 없으니 마나님 얼굴 보시겠다고 기다리셨단다..


구십 외숙모는 설날부터 무슨 일인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움직일수 없이 앓아누웠는데

외삼촌이 기다리신다고 하니 며느리, 조카며느리 부축에 간신히 계단을 내려갔는데

하도 아파서 눈물이 줄줄 나고

외삼촌은 그 상봉을 마치고 병원에 돌아가셔서 애가 닳아서 펑펑 우시고

같이 있던 식구들도 다 같이 눈물바다였다고 

이제는 다들 웃으며 유쾌하게 이야기 나눈다...


그렇게 명절 연휴를 보낸 며칠 후 아침에 목욕을 하시고

식사를 조금 하신후 졸립다 하시니 간호사들이 그러면 들어가서 주무세요~ 하고

한시간쯤 후에 원장이 가보니 이미 깨지 않을 잠이 드셨다고 한다..


해마다 제삿날이면 자손들이 유쾌하게 주고 받을 이야기를 남겨주신 외삼촌..

복 많으신 분이다..


(손녀가 병원 탈출 시도 사건 이후<창문 넘어 도망친 백세노인>을 읽으시라고 사다드렸다는데 치매끼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읽을 것을 손에서 놓으셨다고... 그전까진 신문도 책도 보셨다는데... )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