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나들이

2015. 2. 27. 21:26 from 기억한올

지난 수요일은 햇볕도 화창하고 날씨도 포근하고..

나들이 지수 93점쯤 됐겠다...


엄마는 6남매, 딸셋, 아들셋의 막내 따님이셨는데

지금 생존해 계신 피붙이는 94세가 되신 둘째 오빠 한분...


저기 멀리 청주에 사신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집밖으로 나오지 않고 사신지 벌써 몇년...


엄마가 오빠를 만난지도 벌써 몇년...

그 사이 울 엄마도 아프고..

그래서 제주도도 내려가서 살다 오고...

가까운 곳 간신히 다니다가

장거리도 이젠 괜찮다고 나서시게 된게 불과 한,두달이다..


더 늦기전에 오빠를 보러 가자고 조르는 엄마를 

이 핑계, 저 핑계.. 

날씨도 아직 춥고..

괜히 장거리 다녀오고 나서 몸살이라도 나실까 싶고..

또 사실은 나도 많이 바쁘다는 속내를

이런 저런 기우와 걱정들로 포장하다가

이젠 더 이상 피할수 없겠다 싶어 잡은 날이 수요일이었는데

차일 피일 미룬 보람이 있게

그동안 잡았다가 미루어진 어느날 보다도 따사롭고 좋은 날이었다..


청주에 사는 외사촌 언니(내게 외사촌 언니이지만 실은 엄마와 몇살 차이 안난다..) 가족과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출발 직전에 외숙모에게 전화를 드렸다.

올해 88세 이신 외숙모는 그나마 건강하셔서 거둥이 불편한 외 삼촌의 수발을 들고 계시다는데..

차로 10여분 거리를 달려 도착해보니

외숙모가 굽은 등으로 지팡이를 집고 아파트 뜰앞에 나와서 서성이고 계시다..

엄마는 분명 '언니..우리 좀 있다 갈께요..'라고 했고

외숙모는 노상 있는 일인것처럼 '그래..아가씨..어여 와..'그렇게 덤덤하게 대답했는데...


영화 '집으로..'가 생각났다..

할머니들은 그리운게 많아 눈들이 그렇게 진물렀는가?

지팡이에 의지해 한걸음 한걸음이 위태로운 양반이 우리가 언제 올 줄 알고

그 계단들을 내려와서 아파트 뜰앞에서 서성이고 있는지..

그리움이 도대체 뭐길래...


94세이신 외삼촌은 거실 소파밑에 요를 깔고 소파에 쿳션과 베개를 층층이 포개어 등을 기대고 앉아서

잠시 잠깐 화장실을 가실려고 해도 워커에 의지해야 한발짝을 떼시지만

아직도 총기를 잃지 않으셔서 그 많은 자손들의 근황과 안부를 줄줄이 꿰고 계신다..


평생 하루 한갑씩 태우셨다는 담배를 십수년전에 간신히 끊으셨다가

3년전부터 다시 태우신다는데 그 계기가 참 엉뚱한게

어느 날 아파트 계단에서 장초를 발견하시고 아까운 생각이 들어 '이거나 한번 피워봐야겠다..'

하셨다가 다시 흡연을 시작하셨다고..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안하시지만 두어시간에 한번 간신히 일어나셔서 베란다로 나가셔서

담배를 태우시는게 하루치 운동이자 낙이신분...

베란다 창가에 앉아 담배를 태우시는데 햇살이 환하다..


어른들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입에 발린 걱정들을 늘어놓으신다..

'담배가 몸에 해로운데.. , 그게 뭐 좋은 거라고.., 아이..끊으셔야 하는데...'

흠... 내 보기엔 베란다 햇살 속에서 담배를 태우시는 모습이 제일 멋지시던데...

그래도 예의상 그런 잔소리들이 필요한건가?

난 '외삼촌 담배 태우실 때 정말 멋져요~' 해드리고 싶었는데...


꼬장꼬장 까다로우신 양반이 엉뚱하고 위트가 있으셔서

작년엔 돌아가실 날짜를 세개나 잡아 놓으셨다고 형부가 이른다..

9월 며칠인가 '내가 이날은 꼭 죽어야 겠다...죽을거 같다.'.하셔서

'그날 안돌아가시면 어떻게 해요?' 했더니 '그럼 10월 언젠가는 죽게 될거다'

하시고 '그날도 안 돌아가시면 어째요?' 했더니 '12월 언제'도 말씀하시고..

'그날도 안 돌아가시면요?' 하니까 '그럼 그땐 나도 모르지' 하고 껄껄 웃으시더라고..

94년을 사시면 죽음도 그저 우스개거리가 될수 있나보다...


수년만에 남매 상봉인데 잠깐 앉아있다 나오는 엄마의 발걸음이 안떨어지시는지 

외삼촌 얼굴을 몇번이나 쓰다듬는다..

'또 올께요... 또 올께요..'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른지..

내 눈치만 살피고 있다...

아버지가 운전대 놓으셨으니 부모님들도 참 깝깝하실거다..


외숙모는 '아가씨.. 꿈에 본듯해요..'라고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베란다 창문에 매달려 하염없이 우리를 보내고 계셨다...

                                                                (2013년 3월)




* 외사촌 언니는 큰 외삼촌의 딸...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