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편의 책장에서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을 발견했다...

굉장히 오래전에 (십여년전쯤?)  이 책을 읽었다는 건 기억한다...

(심지어 재미있게... 그래서 '치알디니'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내용은 거의 잊었지만 아마도 과자를 팔면서 모금을 하는 스카우트 학생들 이야기가 나왔던거 같다...

학생들에게 그런걸 시킨다는 게 신기해서 기억에 남아 있고...

또 하나가 저자가 <라만챠의 사나이>를 보면서 줄줄 울었다고 하는 부분이다.. 

당시 (아마도 70 혹은 80년대)에는 미국에서도 남자가 공공장소에서 눈물로 감정을 표현한다는게 일반적이지는 않았다는..

뭐 그런 내용의 글이었는데 나에게는 <라만챠의 사나이>가 더 깊게 각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몇년 전 조승우의 <라만챠의 사나이>를 보면서 (그때 드디어 라만챠의 사나이가 동키호테임을 알았고...) 

도대체 치알디니는 어느 부분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는 걸까? 의아하기도 했었는데...

그 부분을 확인하고 싶어서 책을 샅샅이 뒤지는데...

없다... 

과자 파는 보이스카우트는 나오는데 라만챠의 사나이는 없다....

어떻게 된걸까? 기억의 완전한 오작동?

그럼 도대체 <라만챠의 사나이>를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린 남자는 누구인건지....


2.

얼토당토 않은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갑자기 알퐁스 도데의 소설이 생각이 났다..

제목도 기억이 안나서 검색을 해보니 아무래도 <꼬마철학자>인듯한데....낯설다... 그런 제목이었을까? 정말?

계속 검색에 검색을 하다보니 그게 맞긴 맞다...

왜 그 생각이 났는가하면 팜므파탈... <꼬마 철학자>에서 주인공 다니엘을 꼬셔버리는 좀 나쁜 여자가 언뜻 떠올라서였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그리고 읽은 당시는 틀림없이 주인공과 불쌍한 자끄 형에게 감정이입하여 그 여자가 나쁘게 여겨졌을 게 분명하지만... 

지금 문득 생각하니 그런 묘하게 나쁜 여자가 매력적이다... 뭐...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주인공이 배안에서 빈 새장을 들고 있던 장면이 기억이 나버렸다...

새장을 들고 다니는 꼬마...

표지 이미지도 그런 비슷한거 아니었나? 

흠... 그런데 정말 그 기억이 맞긴한걸까? 

책이 없으니 확인해볼 방법도 없다...


3. 

이야기 나온 김에 또 하나 찾고 싶은 소설이 있는데...

라게를뢰프의 <늪텃집 처녀>라는 소설집에 실린 소설이다..(이런 이름들을 기억하다니..대박...)

라게를뢰프가 노벨상 수상작가라서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때 읽었다..(그때부터 권위에 한풀 접고 들어가는...)

의외로 단편모음집이었다..

줄거리는 환히 기억이 난다..

도둑들이 들어 일가족을 잔인하게 죽이고 보물을 훔쳐간다..

딸(아마도 막내딸) 하나만 어딘가에 숨어(아마도 난로속?)있다가 간신히 목숨을 구한다..

몇년이 흐른 후 예쁘게 자라서 어떤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데 알고보니 그 도둑 무리중 한명..

(저주때문에)바다가 얼어서 배가 몇달동안이나 출항을 할 수 없게 되고 

그 여자아이가 연인이 그때의 그 원수였다는 걸 알게되고 스스로의 가슴을 창으로 찌르는...

그 동안 그 무리들이 다 잡히고... 뭐.. 그런 이야기...

약간 신비하고 (죽은 언니의 유령들이 계속 나온다..) 아련하고... 재미있었던 기억...

흠... 그 이야기 찾고 싶다...


4.

덧붙임)

이런 뜬금없는 궁금함이 떠오른다고 그때 그때 꼭 해결을 보는 성격은 아니다..

한순간 궁금했다가 또 잊고 살다보면 궁금증이 떠오를 때처럼 뜬금없이 해결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작년 여름인가 뉴욕 MOMA에 갔을 때 어떤 그림 하나가 생각이 났다..

옆에 걸려있던 그림들이 다 그대로 걸려 있는데 그 그림만 없는 거다..

한쪽 옆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걸려 있었고 또 이름이 기억안나는 어떤 작가의 그림들.. 

그 옆에 걸린 그림들도 다 기억이 나는데 유독 그 그림만 안보이는 거였다..

그때, 작가도 모르고 특별한 관심도 없이 휙휙 지나쳤던 그 그림이 새삼스럽게 왜 그렇게 다시 보고 싶은건지...

안내소에 가서 제목도 작가도 모르는 그 그림을 짧은 영어로 설명해가면서 찾겠다고 애써 보았지만...

내가 들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찾을수 있을리가...

어쨋거나 그렇게 그냥 마무리 지었었다...

그리고 잊고 한참 지난 후...

Balthus (발튀스라고 읽나보다..)라는 화가의 그림들이 눈에 들어와 검색을 하다가 그 그림을 발견했다....

내가 여름에 MOMA에서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그림...

제목은 산 작가는 발튀스..

그런데 소재지는 뉴욕 메트로폴리탄으로 되어있다...

모마가 아니었던거다...

그렇다면 내가 위에 묘사해놓은 기억은 도대체 어디서 갑툭튀한건가?

이 그림의 주변에 전시 되어 있었다고 틀.림.없.이. 기억하고 있던 그런것들...

당연하게도 모마와 메트로폴리탄의 기억이 해체되고 합성되어 재구성된것이겠지만...

그러니 우리의 기억이란게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작자인건지...

어디가서 기억력 자랑은 하지 말아야겠다...



메트로폴리탄 - 1F 현대미술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