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2015. 3. 31. 01:08 from 기억한올

# 마음...


언니가 엄마 아버지를 모시고 집앞 성모병원으로 병원 나들이를 왔다..

같이 병원에 들렀다가 점심 식사를 하고 모셔다 드리는 차안에서 아버지께

드디어 <마음>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 제가 나쓰메 소세키 <마음>을 샀거든요..

다시 읽고 싶으시면 가져다 드릴께요..'


'나쓰메 소세키? <마음>? 그런 게 있어?

나쓰메 소세키 책중에 <봇짱>, <와가하이와네꼬데아루> 그런게 있지'


'네..아버지 <코코로>요..아버지가 젊었을 때 재밌게 읽었다고 하셨는데?'


'몰라.. 그랬나?'


<도련님>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얼마전 내가 엄마에게 빌려드렸던 책 들이다..

아버지는 <마음>을 다시 까맣게 잊으시고 최근까지 집에서 보았던 책 제목들만 기억하고 계신가 보다..


아버지가 <마음>을 말할 때 내가 <마음>을 몰랐고

이제 내가 <마음>을 말하니까 아버지가 <마음>을 잊으셨다..


이렇게 영영 서로 만나지지 않는 <마음>

내가 너무 늦었다...



# 상실예감...


지난 겨우내 언니는 아버지를 모시고 온갖 병원에 다 다녔다...

그리고 아버지는 특별한 중병은 없으시지만 급격한 노화증세를 보이고 계시다..


우선 기억이 뭉텅 뭉텅 빠져나간다...

이런 속도로 얼마간 지속된다면 어쩌면 치매가 오실수도 있겠다 싶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타시면 꼭 안전벨트를 채우시는데 막상 풀지를 못한다고 하신다..

또 방금 받아 넣은 영수증을 주머니에서 찾지를 못하시고...

그러다보니 결국 신용카드를 전부 해지시키실수 밖에 없었다..)


얼마전까지도 특별한 운동이나 관리 없이도 꽤 강건하시다고 여겨지던 체력도 

어느틈에 급격히 소실된듯..

앉았다가 잘 일어서지도 못하시고 버스를 타고 내리기도 힘들어 하시고

걸음을 걸을 때도 휘청거리신다..

어느 틈에 엄마는 회복하고 아버지가 한풀 꺽이셨다..


얼마전에는 엄마와 산책을 나가셨다가 아버지가 넘어지시는 바람에 손을 붙잡고 있던

엄마까지 같이 넘어져 버린 일도 있었다..

두분이 같이 나동그라져 버둥거리고 있는데 아파트 경비 아저씨와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달려와 도와주셨다고...

그래도 다친데는 없어 다행이라고...


나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거..

더 나쁜건 아버지가 넘어지셨던 사실 자체을 잊어버리신 거..


여태 맑은 정신에 큰 병환없이 잘 견뎌오셔서 영원할 줄 알았다..

편찮으셨던 엄마가 다시 이렇게 회복하실 줄 모를 정도로 회복하셨는데...

아버지를 조금씩 잃고 있는 느낌...


어쩔수 없는 거 아는데...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