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서...

2012. 7. 6. 12:46 from 기억한올

비가 온다..

 

그제 저녁에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이 젖은 솜처럼 무겁도록 더웠었다..

 

혼자서 간단하게 점심을 챙겨먹고

거실 바닥에 팽개쳐 놓은채

미친년 머리채모냥 흐트러져 있는 여행가방을

오늘은 반드시 정리하리라 마음을 다 잡으며

 

창을 열었다..

 

빗소리가 서늘하다..

 

무언가 또렷이 기억이 나지 않는 그저 마구 주물러지고 뭉뚱그려진 어린시절의 아련한 향수가 올라온다...

그냥 어릴때 들었던 빗소리..어릴때 맡았던 비 냄새..

어릴때 느꼈던 서늘한 바람...눅눅했던 여름..장마...

 

아들이 말했었다..

 

'엄마.. 나도 어릴때 선풍기가 돌아가면 거기다 대고 입 벌리고 '아~~~~~~' 했었지?'

 

'그럼..그랬지.. 너도 그랬지..' (사실 기억에 없다..우리집에 변변한 선풍기가 있었던 적이 사실 없다..)

 

'그지? 그랬겠지?'

 

'왜?'

 

'아니.. 일본 애니메에서 그런게 나왔는데 내 (미국) 친구들은 그걸 모르더라구..'

 

'여기 선풍기는 일단 그렇게 하기도 힘들고..걔넨 그런 기억이 없겠다..'

 

(미국의 선풍기는 대충 사각형으로 창틀에 세워 놓게끔 생겼다..물론 머리가 회전 되지도 않는다.)

 

둘이 같이 머리를 선풍기를 따라 돌리는 흉내를 내며 아~~~~ 한다....

 

웃는다...

 

'엄마.. 나도 여름에 대청 마루에 누워 매미 소리 듣고 그랬지?'

 

'그럼~ 너도 그런적 있을걸?'

 

'그랬지? 그런적 있겠지?'  일본이랑 한국 이랑은 비슷한 게 많아..'

 

'그치? 특히 그런 만화나 애니메에서 정서적인 부분을 다루는게 비슷하지..'

 

'미야자키 하야오!' (동시에..)

 

'미국 코믹이나 캇툰은 그런게 없지?'

 

'없어... 정서적인 부분이 없어..'

 

잠깐 이야기를 나눈다.. 미국 만화와 한국/일본 만화에 대해..

양국의 정서적인 문제에 대해..

 

아들이 선풍기를 향해 입을 벌리고 아~~~~ 소리를 내며 선풍기 머리가 회전 하는 방향대로 따라 다녀 본적이 있을까?

혹은 시원한 시골집 대청 마루에 누워 수박을 베어물고 부채질을 하며 매미 소리를 들은 적 있을까?

 

굉장히 미심쩍은 부분이다..

 

기억을 쥐어 짜내다 보면 그럼직한 순간이 떠오를지도 모르겠지만...

아들은 언젠가의 애니메 혹은 망가/만화에서 본 장면을 고스란히 자기의 기억으로 차용하고 있는듯 하다..

 

간접 체험도 체험이니까...

100% 실제 경험담만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이런식으로 잇는 끈을 만들어 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감사...

 

 

 

 

 

ps. 이런식의 감정 기억으로 나와 연결되고 공감할수 있는 부분은 좋기도 하지만

한편 마음 아프기도 하다..

미국식 사고와 감성/ 한국식 사고와 감성 속에서 어느 한쪽에 온전히 편입되지 못하고

늘 외로와 하고 쓸쓸해하는 아들을 생각하자면...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