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때 종종 자체 오락 시간을 갖었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기에 엄청난 거부감과 공포를 가지고 있었는데

'선화인'들의 특징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노래부르기를 강요는 커녕 권유도 안한다는거...


선생님을 졸라서 오락시간을 갖게 되면 누가 시키기도 전에 한명이 나가서 노래를 한다.

끝나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두번째 친구가 나가서 노래를 하고...

암튼...이 인간들은 마이크 한번 잡으면 놓을 줄을 모른다..


원래 한, 두명의 노래만 듣고 수업을 하려고 마음 먹었던 선생님들은 결국 시간 전체를 

오락시간으로 내어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자기 권유형 자발적 노래 행렬이 도무지 끊어지지가 않아서..


김은주라는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굵은 뿔테 안경을 꼈던 친구는 주로 '뱀을 사'라고 외쳤던거 같다..

그때는 '뱀이야~' 뭐 이런 노래는 없을 때라 '이 뱀 한 번 잡숴봐..'로 시작되는 약장사 흉내...


이미정은 하덕규 (시인과 촌장)의 '꽃을 주고 떠난 여인'을 불렀는데

그렇게 세련된 노래를 처음 들어본지라 기억에 오래 남아 있고


강태성은 주로 '돌아오라 소렌토로' '오 솔레미오' 등이 아니었나 싶다..

여자 중에선 박선희가 가곡.. 아마도 한국 가곡..'선구자(?)' 그랬던거 같고..

선희가 가곡을 워낙 잘 불러서 태성이가 나한테 선희에게 살짝 반했단 이야기를 한 기억도 있고..


김소연은 (강태성이랑 사귀어서 여자아이들에게 미움 깨나 받았던.. 근데 이건 뭐..

질투라기 보다 둘의 닭살 행각에 눈꼴 시어 했던 경우다.. 왜냐하면 강태성도 똑같이 미움 받았으니까...)

트윈 폴리오 노래를 잘 불렀는데 다른 친구 한명과 '웨딩케잌'.. (다른 친구는 기억 안나네...)


유도영은 '제비꽃'을 불렀던 기억이 나고

김동준은 '편지'...


박태종은 그때 성악으로 전과한지 얼마 안되

밤마다 실기실에서 피를 토하며 돼지 멱을 따던 시절이라

뭘 불렀는지 혹은 안 불렀는지 기억에 없다..(확실히 명태는 아니라는.... )


뭐 대충 이랬다구...


# 중학교 1학년때 현희는 나한테 책을 빌려 달라고 말을 걸었던 모습으로 기억한다..

그때 두꺼운 뿔테에 두껍고 살짝 푸르스름한 안경알..

양옆으로 땋아 내렸던 숱 많고 뻣뻣한 갈색 말총머리..


윤현의 첫인상도 또렷한데 첫시험을 치르고 이춘미 영어 선생님이 34번 누구예요? 하고 찾았고

누군가 손을 들었는지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뒤로 돌아갔는데 

내 뒤에 뒤에 쯤에 그아이가 있었다. 

(난 아마도 두번째줄에 앉았을 듯..그때만 해도 22번..현희야..넌 48번 아니었니?)


나도 고개를 돌려 그 아이를 보았는데 까무잡잡한 얼굴에 큰눈, 새초롬한 입술이 인상적이었고

기쁜듯, 쑥스러운듯, 살짝 붉어진 얼굴로 난처한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게 기억에 남아있다. (영어 시험 1등)


권혜원은 야물딱지게 생긴 아이가 첫 시험이 끝나고 나한테 와서 어떻게 공부했는지 몇시간 공부했는지 

꼬치꼬치 물었던 기억이 있고..(내가 첫 시험 1등, 혜원이 2등)


헤숙이는 뒷자리에 앉아있었고 친한 친구 한, 두명에 둘러싸여 늘 소곤 소곤, 조곤 조곤

침착하고 어른스러웠던 기억..나랑은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로 호의적이고 호감적인 

느낌의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때 내 짝 23번 송인경은 정말 예쁜 아이였는데 나와 24번 한 미경(?..발레를 했던)과 3각 관계에 빠져 있었고...

나에게 이런 저런 묘하고 아련한 추억을 남겨주었다..


# 진짜 사소하고 하찮은 기억은 이제부터인데

가령 난 윤현이 레먼북스에서 '제복의 처녀'라는 책을 좋아했던 것을 기억한다.


주원이가 이자벨 아자니를 좋아했던 걸 기억한다.


같은 반이었던 게 중 2때인지 3때 인지는 기억 못해도 장혜경이 '오만과 편견'을 무척...좋아했던 걸 기억한다.


소라가 뭉크와 이사도라 던컨을 좋아했던 걸 기억하고...


고1 때, 정지원이 수업시간에 걸려서 모두 앞에서 공개되었던 연애편지에 이니셜이 Y,(윤희)

그 편지에 써있던 시가 김춘수의 '꽃'이었다는 것도 기억나고..


고 3 무렵 김승진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고 다니던 게 기억이 난다... 


미원이가 나랑 사이가 좋던 중 2무렵 자기가 어렸을 때 엄마가 외출 할때면 

늘 닥터 지바고의 'somewhere my love'를 틀어 놓았다고 말했던 거...


그런 것들이 기억이 난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