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

2012. 5. 14. 18:29 from 생각꼬리

# 불협화음 : 오래된 우정

 

낡은 우정은 삐걱거릴 수 밖에 없는 걸까?

조율 안된 피아노가 그렇듯이?

아니면 그저 L 과 내가 각자 다른 코드에서 잠시 음 이탈을 하고 있는것 뿐인걸까...

 

L과 만나는 자리가 언제 부터인가 유쾌하지 않다...

아니 유쾌하지 않을 뿐아니라 뭔가 개운치 않은 씁쓸한 뒷맛이 있다..

 

L 과의 대화 내용 어느 하나도 재밌거나 흥미를 끌지 못하고

더 나쁜 건 나의 그런 마음이 무의식적 표정과  태도로 온몸으로 표현되어 버리고 만다는 거다..

 

L 과 헤어지고나면...

내가 그랬구나...스스로 하나 하나 되집어 복기하게 된다...

 

그러면 내가 느낀 지루함과 권태로움에 묘한 불편함까지

L 도 고스란히 되비쳐 느꼈을 것 같아

뭔지 모를 씁쓸한 후회 같은것이 물 밀듯 밀려온다..

 

늘 후회하면서도

늘 그 순간은 그냥 그렇게 되버리고 만다...

 

마침표 없는 도돌이표...

 

사실 서로 알아온 역사에 비하면 서로의 변화는 더딘 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속도로조차도 신갈 분기점을 지나면 하나는 남쪽끝으로 다른 하나는 동쪽끝으로 가버리는데...

 

서른 다섯해가 넘도록 서로 안부 챙기고 사는걸 보면

서로 다른 길위에 있는것 치고는 그래도 그럭저럭...

 

 

지난 화요일 L 을 잠깐 만난 후...

언제나 처럼 조금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왜?' "뭐가?'따위의 생각을 했었다...

 

변한건 L 이 아니고 나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니...L 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L 은 소녀에서 처녀로..

젊은 새댁에서 아줌마로...

딸이고 며느리고 아내이고 엄마고...

자기 자리를 찾아 순리라고 일컫어지는대로 자연스레 나이먹고 있고...

 

나는...

나 역시 L 과 비슷하게 길을 가다가 ...

갑자기 다시 역행하려 한다...

 

딸 노릇, 며느리 노릇, 아내 노릇, 엄마 노릇...

그런거보다...

그냥 내 노릇...

나로 살기에만 관심이 있다...

 

나는 십대의 나..이십대의 나처럼 오직 나로 내안이 꽉차 있는데

거기에 L 의 가족속의 역할로서의 삶 이야기가 귀에 걸리기나 하겠는가...

그저 다 스쳐지나가는 이야기 일뿐...

 

근데..

단순히 그렇게 정리하기에도 미진한 무언가가 있다...

다른 친구들과의 의례적인 역할론도 재미있게 잘 즐기는 내가 왜 유독 L 과의 대화만 매끄럽지 않을까?

 

자기장의 방향이 바뀌어 버렸나보다...

 

 

# 불협화음 : 자기 자신과 친구되기..

 

산책과 블로그를 시작한후...

나 자신과 제법 친해진 것 같았다..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 잠수교를 따라 걷고 있노라면

스스로 만든 감상의 성채안에서 혼자서 모노드라마 한편을 찍는 기분이다..

어찌 그리 스산한 기분이던지...

 

어쨋거나...

그렇게 스스로 쓸쓸해하고 그 쓸쓸해 하는 모습을 연민하고

또 그 연민하는 모습을 애잔해하며

 

넝쿨당에서 김원준 셀카 찍듯이 감정의 바다에 푹 빠져 있다

집으로 돌아오면 몸도 피곤하고 잠도 잘오고

 

나름 대견하고 뿌듯하기도 해서

일종의 확실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혼자 있는 시간도 왠지 충실한 느낌에 마구 뿌듯해 하면서

그렇게  나와 친해지고 있었는데...

 

아픈 나와는 가까와지기 힘들다...정말...

갑자기 우정의 마음이 십리 쯤 밖으로 달아나버린다...

 

지난주부터...

컨디션이 매우 안좋다..

 

고질적으로  몇년에 한번 찾아오는 위무력증..

 

지난 월요일, 화요일..힘들었는데

주중에도 계속 조심했는데...

 

강진이 두어번 있고 계속되는 작은 여진들처럼..

계속 그렇게 상태가 탐탁치 않다..

 

결국 병원에 가서 수액도 하나 맞고..

약도 지어오고...

 

할일도 많은데

잘 다독여서 넘어가야 할텐데..

 

긴병에 효자 없다고 벌써부터 꼴보기싫어지고 있다..

옛말 맞는건 자기 자신이라도 예외가 없나보다..

 

 

# 불협화음 : 세대차이?

 

N 양의 소개로 알게 된 블로그...

재치있고 까칠한 한양의 글들을 즐거이 읽어내리다가

'건축학 개론'에서 뭔가가 튕겨진다...

 

그 친구가 말하는게 뭔지도 알겠다...

 

그래..나도 그부분....그 선배가 술 취한 서연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갔을 때

승민이 보고만 있었던건 참 바보같다고 생각했었다..

 

또...'어...저거...성폭행인데...'라고 잠깐 생각하고..

그게 2000년대식 생각이구나...가늠한 뒤

 

나의 7~80년대 사고회로를 끄집어 내어

그땐..그랬지 모드로 그 상황을 재 정리 했었다...

 

Sexual Harassmant 라는 말이 미국에서도 빈번히 쓰이기 시작한건...

내 기억으로는 1993년 Indecent Proposal 이라는, 우리나라 제목으로는 은밀한 유혹이라는

영화가 나온 이후이다...

 

정확한 인과 관계는 모르겠는데 아뭏든 내 기억에 이 영화와 그 단어가 묘한 조합으로

셋팅되어 있다...

 

그러니까 사실 90년대 초 이런 개념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등의 개념들이 바야흐로

사회적으로 공론화가 되면서 정립되기 시작했고..

 

그것도 미국이란 사회에서 그랬고...

그게 완전히 자리 잡는데는 쫌 걸렸을 것이다..

 

그러니...90년대 중반이었던 배경상...

아직 우리나라에 그런 행위가 성추행이다..성폭행이다..라는 사회적 함의는

태동전이지 않았을까 싶다...

 

date 강간이란 말도  일부 아직 현존하는 남성 중심의 시각으로는

여자가 행실을 바르게 하지못해서..라는게 고리타분한 우리의 현실 아닌가...

 

그러니...그런 맥락에서 나는 내가 겪었던 7~80년대 사고 회로를 꺼내면

승민이 왜 그렇게 찌질하게 구는지 단박에 이해가 가는데..

그래서 그 상황들이 더 안타깝고 사랑스러운데...

 

그런 걸 겪지 않고 바로 2010년을 사는 사람들에겐 좀...

납득이 안갈수도 있겠다...

 

그게 바로...

세대차이인거다...

 

겪지 않은 걸...

느끼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을거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