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대한 기억

2014. 1. 20. 11:44 from 기억한올

# 처음으로 글자를 읽게 된게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다만 5세 이전에 읽을 수 있었다..(유치원 들어가기 전) 어느 날..하루종일 내가 안보이고 밥 때가 되어도 안 돌아와서 식구들이 골목 골목 찾아나섰는데 동네 만화 가게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누군가의 제보)..그림만 본 건 아니었다..어렴풋하게 나도 몇몇 장면이 떠오른다...


# 초등학교 4학년(국민학교인가?) 여름 방학때부터는 밖에 나가 뛰어 노는것 보다 집 안에서 책 읽는걸 더 좋아했다.. 바깥에서 아이들이 왁자하게 노는 소리...숨바꼭질이나 다방구 같은 거 하며 지르는 소리.. 아니면 짝이 맞아야 되는 놀이를 하면서 나를 부르는 동생이나 언니의 소리를 무시하고 소파에 가로 누워 책을 읽었다..그 때 집안에 책이라야 계몽사 50권 하고 또 다른 전집 몇질이 전부였을텐데..그리고 아마도 이미 다 읽은 거였을텐데.. 도서관이 있어서 빌릴수 있었던 것도 아닐텐데... 아마도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했으리라..


# 어릴 때 책 읽는 속도가 제법 빨라서 가령 초등학교 6학년때 잠시 <고전 경시대회>라는 게 있었는데 (그 시험은 초록색 표지로 되어 있는 동화책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시간을 정해서 읽게 한후 시험 문제를 풀게하는 거 였다..몇 차례 실시되다가 없어졌다.,)주어진 시간 안에 나는 보통 2번 반을 읽었다..학과 공부로는 해본적이 없는 전교 1등을 고전 경시대회에서 매번 했었다..뭐 남들보다 배로 읽으니 당연한거겠지만...어쨋든...그만큼 책 읽는 속도가 빨랐던 나는 6학년때까지 우리집 안방에서 교실까지 천천히 걸어도 5분~10분의 범위를 넘기 힘든 시쳇말로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 살았는데 그 길 중간에 문방구가 하나 있었다..그리고 그 문방구에는 간단한 아이들 도서도 같이 팔았는데 종종 집에 가는 길에 한권 사서 집에 가자마자 미친듯이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 두 시간 쯤 후에 가져가서 '이거 별로 재미없을 거 같은데 바꿔주시면 안되요?' 한다..주인 아주머니는 별 의심없이 다른 책으로 교환해주신다.. 그런 짓을 종종 했었다..


# 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때 드디어 동화책을 졸업해야겠다 마음 먹고(아마도 누군가의 권유로) <데미안>을 읽으려고 했었다.. 실패했다..중학교 1학년 겨울(즉 정확히 1년 후) 다시 시도했고  <데미안>과 사랑에 빠졌다..


# 엄마는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딱 두번 받은거 같은데 두번 다 자고 일어나보니 머리 위에 놓여있었다.. 하나는 유치원 무렵, 눕히면 눈을 감고 일으키면 눈을 뜨는 인형이었다..그리고 두번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머리맡에 <어린왕자> 하얀 바탕에 어린왕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양장본..계몽사 빨간책에 <별의 왕자님>이라고 실려 있었지만 단행본으로 그것도 양장본으로 갖게 되어 너무 기뻤던 책..그 후로도 오랫동안 내 보물 1호였다.


# 중 3때 초등학교때 친했던 남자동창들이 연락을 해와서 독서 토론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초등학교때부터 그 무리의 아이들의 과외선생님으로 그 무리의 아이들을 특히 예뻐하셨던 은사님을 자문으로 모시고 한다고 그 녀석들 나름의 여러가지 장치를 마련하여 나와 내 친구, 근처 여학교에 진학한 또 다른 초등학교 동창 여자애 두명 등을 끌어 들였다. 첫번째 모임만 선생님이 동석하시고 그 이후엔 우리끼리 몇번 만났는데 그 때 읽었던 책이 <이방인>.. 뭐 기억에 남는 책은 그거 하나다.. 그땐 그냥 '뫼르소'란 인물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생각만 가득.. 그 이후 <이방인>을 다시 읽어본 적 없는데 나이를 먹다보니 저절로 '뫼르소'가 이해가 간다.. 참 신기하게도..그 모임은 그 후? 사심 가득했던 그 모임은 모여서 하는 이야기라곤 '신'이 있는지 없는지 같은 논리도 없고 근거도 없는 자기 주장만 난무하다가 옆길로 새서 책 이야기보다 일종의 사교모임처럼 변질되서 한 두차례 이어지다가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뭐 그 중 한 남자애와 한 여자애가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즉 학력고사 끝나자마자) 사귀기 시작한걸 보면 모임의 생산성이 전혀 없었다고 할순 없겠다..


# 오늘은 여기까지..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