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에 대하여..

2012. 6. 10. 16:16 from 생각꼬리

#차용

 

어제는 아주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 화면 저 화면 넘기다가 단편 영화를 하나 보게 되었다..

여행에 대한 30분짜리, 그냥 실소가 나오는 귀엽고 신선한, 젊고 단편 영화스러웠던 영화..

 

그 영화에서  내 인생에 차용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들을 마음에 슬몃 새겨본다..

첫번째는 역시 혼자 여행가기..

 

영화에서처럼 경주를 가봐도 좋을거 같지만

사실 영화에서도 장소가 중요한건 전혀 아니었으니

아무 데라도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이면 된다..

 

방점이 찍히는 부분은 '혼자' 라는 것...

 

두번째 장면은 바닷가에서 담배태우기..

바닷가에서 모래톱에 혼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저것도 괜찮겠구나'..'해보고 싶네'..

 

...싶다...

 

# 흡연의 역사

 

몇년 전 부터 난 흡연자가 되었다..

 

내 인생에서 흡연의 역사를 되새겨 보자면

대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담배를 피워보았다..

 

그때 사당동에서 같은과 형들과 작업실을 같이 했었는데

졸업전 준비할땐 집에 못들어 가는 날도 많았다..

 

형들은 근처에 하숙을 하고 있어서 작업실에선 주로 나 혼자 밤샘을 하곤 했는데

그때 담배를 한갑 샀었다

 

우리과야 여학생들도 교수님 선배형들 동기 남학생들이랑 강의실에서 스스럼없이 맞담배질을 하는 분위기라

적어도 같은 과내에서 담배 피우는게 흉은 아니었는데

 

같이 다니는 무리들은 이상하게도 다 국정 교과서 같은 친구들이었고

일탈에 대한 눈꼽만큼의 호기심도 표현 안하던 부류였다..

 

그래서 나도 내 발산을 못했던거 같다..

내가 개성이 그다지 강한 성격도 아니었고

같은 무리중에 내 기질을 꺼내주고 발전 시켜줄 친구가 한명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아무 의심없이 억누르기 바빳달까...

 

워낙 참하고 조신하고 얌전한 이미지안에 갇혀 있던지라...

 

어쨋든..

어느 날 궁금했던 담배맛을 알기 위해

담배를 한갑 샀고

빈 작업실에서 혼자 한대를 피우고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소파에 누워 잤다..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 입 담배는 피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렇게 서너개피 피워보고 도저히 그 어지러움증을 극복 못해서

그 담배는 결국 같이 작업실하던 동기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더 이상은 사실 바라지도 않았고

그렇게 소소하게 호기심을 충족해본것으로 만족했었다..

 

7~8년전 쯤부터 술자리에서 한두개피씩 담배를 얻어 피우기 시작했는데

조금씩 늘더니 이젠 한달에 반갑에서 한갑 분량은 피우는 거 같다..

 

아직도 흡연자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지만

한갑 분량으로 늘어난 이후로는 은근히 걱정도 한다..

 

심지어 줄여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 처음

 

작년 가을

갤러리 식구들과 미천골에 단풍 구경을 갔었다..

 

미천골 안의 아늑하고 깨끗했던 펜션과 이런 저런 여행길의 에피소드들이 즐거웠지만

나를 유독 기쁘게 했던 첫 경험이 있다..

 

그건 바로 '모닝 담배'

아침 일찍 눈을 뜨고 베란다 창을 열고 나가자 설악산의 그 차고 푸른 공기가

폐안으로 숨막히게 밀려 들었는데

그 와중에 번뜩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이

 

흡연자들이 눈뜨고 가장 먼저 한다는 모닝 담배...

 

나도 얼른 담배를 가져다가 불을 붙혔다..

차고 맑은 담배연기..

 

내가 피워봤던 가장 맛있었던 담배..

이 나이에도 해볼수 있는 처음이 있어서 무한히 기뻣던 순간...

 

# 금연?

 

담배로 내가 해볼수 있는 새로운 일들 중 금연이 남아있을거 같은데...

아직 그러고 싶은 생각은 없다..

 

흡연자가 된지 이제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더구나 한달 한갑 정도의 캐주얼 스모커인데

흡연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사회분위기가 참...

 

때로 건강 염려증이 발동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사회적 비호감의 시선과 약간의 건강 손실은

가끔 술자리에서 태우는 담배가 나를 마치 자유로운 영혼인듯 착각하게 만들어주는데 대해

내가 지불해야 할 약간의 댓가 일수도 있다..

 

내 허영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 정도의 댓가는 치뤄야한다..

세상엔 공짜가 없으니까...

 

쨋든 이러한 이유로 나는 당분간 금연을 제외한 다른 새로운 일들을 해보고 싶다..

담배를 통하여...

마음속 저울의 눈금을 한달에 한갑이라고 맞춰놓고...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