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떨리는 일상

2012. 12. 31. 13:39 from 기억한올

# 12월 29일 새벽 1시

 

언제나 처럼 잠자리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둔중하고 아득하다.

 

잠시 귀을 기울였지만 뒤 따르는 정적.

 

스마트 폰에 마음을 뺏기면 다시 울려 퍼지는 소음.

날카로움도 다급함도 없이 그냥 소리치는 듯.

 

누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나?

싸우나?

싶지만.

 

남의 가정사.

새벽 한시라도 끼어들 일은 아니다.

 

간헐적으로 반복되는 리듬.

수년전 같은 아파트에 사셨던 치매 걸리셨던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정신이 약간 온전치 못한 분이 내는 소리인거 같다고 생각하며

누군가 빨리 조용히 시켜 주면 좋겠다 생각한다.

 

타닥 타닥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듯한 소음.

철컹 철컹 챙 챙 속 빈 금속들이 부딪히는 듯한 소음.

 

정말 궁금해져서 베란다 문을 열어 밖을 보니

세상에. 빨간 불꽃이 거실 창문을 뚫고 날름거리고 있다.

 

새빨간 불똥이 우리 창문 앞으로 날아 내리고 있다. 

 

옷을 주워 입고 핸드폰 하나 챙기고 아들을 깨워 아파트 앞에 나가보니

불 자동차가 10대쯤 늘어서 있다.

 

아파트 사람들 몇몇이 옹기 종기 모여 서 있고

귀가전이던 남편도 거기 있다.

 

회색 연기도 어느새 잡혀서 703호 시커먼 창문에는

잔불 수색을 하는 후레시 불빛만 어른 거린다.

 

모여 있던 주민들도 다시 잠자리로 돌아간다.

싸이렌도 울리지 않고 출동했던 배려에 힘입어 아파트 창문들은 까맣고 조용하다.

 

어떤 주민들은 밤새 무슨일이 일어난지도 모르고

내일의 아침을 맞겠지.

 

한 가정의 역사가 무너져도

조용한 일상은 이어진다.

 

가슴이.

몹시 뛴다.

그렇지만 잠은 자야지.

 

 

# 12월 27일 오전 10시

 

신사 사거리에서 유턴을 하는데 교통사고 안내 전광판이 눈에 들어 온다.

오늘의 교통사고 사망 2명 부상 ...휙~

 

아들이 했던 말

뉴욕에서는 하루에 아무도 안죽은날이라고 뉴스가 됬었어.

 

아들의 이야기에선 '살해' 였을지 모르지만

어쨋거나 서울에서도 하루에 몇명씩 제 명을 못 살고 있구나. '사고'로.

 

알고보면 살얼음 판 같은 일상

그래서 나이 먹으면 걱정만 많아진다.

 

 

 

# 2008 년 2월 10일 저녁

 

무슨 이유에선지 난 한국에 있었다.

굳이 겨울 방학도 아닌데 왜 아들을 기숙사 친구에게 신세지게 하고 나왔는지

잘 기억이 나진 않는다.

 

남편이 아이랑 같이 지내려고 먼저 들어가고

난 아마 일주일에서 열흘쯤 혼자 지낸거 같다.

 

그동안 한 친구와 미친듯이 붙어 다녔다.

 

친구와 친구의 아는 동생과 또 그 친구와 남영동쯤에서 만나서 한잔하고

신촌쪽으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친구와 나와 아는 동생은 택시를 타고

아는 동생의 친구는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남대문이 불타고 있어'

'미친놈. 거짓말 하지 마~'

'거짓말 아냐. 진짜야'

 

우린 모두 망연해졌다.

택시 운전사 아저씨는 얼른 라디오를 틀었고

찬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도 불타는 남대문 때문에 집에 돌아가거나

우울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상은.

무엇보다 힘이 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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