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記 가 아니라 週記

2012. 5. 5. 13:37 from 생각꼬리

# 얼마 전까지도 사람 들에게 '나이 드니까 우울하지 않아서 좋아..봄도 안타..'라고

입바른 자랑질을 했었다...

 

난 원래 이른 봄에 봄앓이를 했었다..

겨울 끝자락, 대충 2월말쯤 되면 찬바람에 얼굴, 손,발이 아직도 얼얼해도

정체를 알수없는 매케한 봄내음에 코끝이 매워지는데

그날로 부터 봄 우울이 시작되곤 했다..

 

조금 더 젊었을적엔 우울의 깊이가 조금 더 깊더니

나이 먹을수록 길이도 짧아지고 깊이도 얕아지고...

어느날엔가 봄이 한참 깊었어도 우울감이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이 드니까 좋은것도 있구나..싶었다..

 

그 수많은 봄꽃 다 피고 지도록 멀쩡하더니....

며칠 전부터 마음이 조금 그랬다...

 

사소하고 소소한 갈고리들에 자꾸 걸리기도 하고...

별다른 이유도 없이 가라앉기도 한다...

 

그냥 늦봄 타는구나..그렇게 생각한다...

 

# 크고 작은  ups & downs 가 되풀이 되었지만

확실히 우물도 아니고 롤러코스터도 아니다...

그럭 저럭 덜컹거리는 시골 자갈 길쯤 되는거 같다..

내려가기도 잘 내려가지만 올라오기도 쉽게 올라온다...

 

아들과의 전화 통화로 상심과 후회를 가지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길에서 서행하던중 앞서 걸어가시던 50대 아저씨..

휘적 휘적 걸어가시는 듯 싶더니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고 길 옆에 민들레를 들여다 보신다..

스마트 폰으로 촬영하시는 모습을 백미러로 보면서 슬며시 웃음이 지어진다..

 

잡초처럼 돋아난 보잘것 없는 풀꽃이었는데..

발밑을 살필 줄 아는 아저씨라...왠지 멋있다...

 

# 며칠전부터 몸도 함께 몹시도 피곤했었다...

친구를 만나러 나가며 택시 안에서 어디선가 에너지를 훔쳐올 데가 없을까? 생각했었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책 '모모'의 시간도둑 생각이 났다..

하는 일도 없이 시간이 뭉텅 뭉텅 사라지고 있는거 같아서

요즘엔 때때로 주변을 살피곤한다..

 

회색 양복에 회색구두에 회색모자를 쓰고 회색 가방을 들고 다니며

우리 시간을 훔쳐 가고 있는 시간 도둑들이 있는거 아닌가 싶어서...

난 계약서에 싸인 한장 한적도 없는데

내 시간은 누가 다 훔쳐가나 싶다...

 

내 시간이 도둑맞고 있고 거기에 대해서 어찌할 방도가 없다면

난 대신에...에너지를 훔쳐오고 싶다...

 

에너지를 누군가 내게 준다면 감사히 받겠지만...

누군가 내게 혹시 빼앗긴대도...

어쩔수 없다...고 생각해주길 바란다...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뭐...어쩌겠는가...

 

# 에너지의 흐름을 기압의 흐름처럼 단순히 생각해보자면

나보다 에너지가 적은 사람이 내게 에너지를 빼앗길리는 없을테니까

자기안에 에너지의 원천을 가진 사람..

끝없이 스스로 에너지를 생성해내고 끝없이 방사해내는 사람..

그런 사람 옆에서 한줌 얻어오고 싶은거다..

솔직한 마음은...

 

에너지가 많다는건 기가 센것이랑은 다르다..

긍정적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사람..

그런 느낌의 사람을 일단 두명 떠올릴수 있다..

한분은 에너지를 생성해내고 끝없이 주위에 퍼 주신다..

마음이 우울하고 상심했을때 위로 받을 수 있는 어딘가가 있다는 건 한마디로 축복...

 

다른 한분은 아직까진 개인적인 친분은 많지 않지만

저 사람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싶을 정도로

활동적이신 분이다..

차분하고 즐겁고 늘 웃는 얼굴에 다정한 분인데

그분을 그렇게 유지시키는 힘이야말로 진짜 에너지가 아닐까 싶다..

 

지금은 곱게 나이드신 시골 아주머니 같은 차림새와 생김이지만

젊었을때의 사진을 보니 정말 예쁜 사람이었다..

그분을 그렇게 화장도 안해서 볕에 다 타고 주근깨와 자연스러운 잔주름으로 만들어진 얼굴과

염색도 안해서 회색이 된 틀어올린 머리와 늘 비슷한 스타일의 생활 한복으로

생활하게 했던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예쁜 사람이 자신의 외모를 가꾸지 않게 만드는 힘...

허영심을 누르는 힘이 무엇이었을까? 많이 궁금했었다..

그분의 자그마한 몸 어딘가에 틀림없이 에너지 공장이 있을듯한 생각이 든다..

 

# K 양과 언터쳐블을 봤는데 '드리스'가 춤추는 장면에서 굉장한 힘과 생동감을 느꼈다..

정신적 에너지와 육체적 에너지..

둘다 생명과 관계가 있지만 후자가  보다 더 원초적인 쪽..

 

'드리스'가 나가고 난후 '필립'이 새로운 도우미를 구해서 지내는 장면을 보다보니

난 그 새로운 도우미에게 전이가 일어난다..

 

내 성격은 드리스쪽이 아니라  보통의 평범한 사람쪽이다..

편견도 있고, 하기 싫은 일도 책임감으로 하고, 상대방을 배려한다고 말조심도 하지만

대신 마음도 쉽게 안열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만큼 격식있고 딱딱하고...등등등...

 

드리스를 보는건 즐겁고 유쾌했지만 드리스가 아닌쪽이 그렇게 우스꽝스럽고

보잘것없어 지는건 조금 씁쓸해진다..(마치 내가 비난받고 있는거 같아서..)

 

그러다가 금새 마음을 돌린다..

그건 그냥 인연의 문제야..라고...

필립이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사람'을 만난 것 뿐인거다...

 

내가 드리스가 아니라도 상관없는거다..

난 필립을 만나지는 못할수도 있지만 또 다른 내게 맞는 사람들과 만나게 될테니까...

 

어쨋거나..드리스의 생명력이 참 유쾌했다...

 

 

 

 

 

 

 

 

 

 

Posted by labosq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