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de Parade
# 6월 30일 일요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6월 28일 부터 7월 2일 까지 묵었는데..
마침 그 기간엔 상대적으로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듯 싶어 보였다..
그 다음주는 말하자면 본격적으로 Summer Festival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어서
필모어 거리에서는 재즈 축제가..
또 우리 숙소가 있는 유니온 스퀘어에서는 'Grand Tasting Tent' 라는 재미있어 보이는 이벤트가...
계획 되어 있는 참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묵는 그 주에 계획되어 있던 게이-레즈비언 퍼레이드는
굳이 챙겨 볼 생각도 없이 까맣게 잊고 있었다..
호텔 방에서 뒹굴 거리다가 느지막히 어슬렁거리며 나서서
마침 Market Street를 건너는 쪽으로 행선지를 잡은 것은 순전히 요행이었다..
퍼레이드는 우리가 거리에 도착했을때 이미 시작되어 있었고
우리는 한없이 이어지는 행렬과 바리케이트를 어떻게 하면 가로질러 길을 건널수 있을까
궁리에 골몰했다..
바리케이트는 끝이 없었고 행렬은 족히 두서너 시간은 이어질듯 싶었다..
# 게이 퍼레이드를 처음 본건 1990년 여름, 뉴욕이었다..
그때, 배가 남산만 할 때.. 뉴욕에 놀러갔을 때..마침 퍼레이드가 있는 날이었다..
그때만 해도 게이문화가 참 생소하고 낯설고..흥미로운 만큼이나 약간은 불편하기도 했었다..
그때로 부터 20년...
게이 퍼레이드의 풍경도 달라졌다..
음... 공기와 분위기와 느낌이 다르다..
일단 이름이 Pride Parade로 바뀌었다..
20년전 뉴욕에서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다채로운 것은 물론이고 행렬의 규모도 몇배 크다..
행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복장이 현저히 달랐는데
20여년 전 만해도 게이-레즈비언 퍼레이드의 참여자들은 가죽 바지, 가죽 조끼에 피어싱..
바이크와 쇠사슬과 문신의 퍼레이드였다..
전형적인..혹은 상투적인...
그런 모습..
참여자들의 태도는 마치 시위를 하는듯 했고
관람자들의 태도는 신기한 구경을 하는듯 했고..
도시를 가로막고 오토바이를 타고 소리를 지르며 방종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그날 하루 쯤 참아주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남들과 달라서 많이 억눌리고 많이 상처받은 그들이
단단한 결심을 하고 옷을 차려 입고
그 댓가로 얻어낸 거리를 떳떳히 활보할 수 있는 권리를
마지못해 간신히 인정해주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
컴잉 아웃의 퍼레이드..
# 그에 비해 이곳의 Pride parade는 한마디로 축제 그 자체였다..
리오 카니발의 퍼레이드처럼 화려하진 않겠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준비를 거쳐
볼거리를 만들었는데 행렬이 지나가는 도로뿐만 아니라 구경꾼이 몰려 서있는 인도까지도
온통... 즐거움과 유쾌함의 행렬이다..
행렬이 지나가고 음악이 울려퍼지고 사람들은 손을 흔들고 춤을 추고 환호한다...
무지개 깃발과 티셔츠와 뺏지와 펜던트와 배너로 그들을 지지하고
박수와 하이파이브로 그들을 격려한다..
정말 달라졌구나 갑자기 와락 와닿은 모습은 평범한 옷차림의 평범한 커플들이
손에 손 잡고, 강아지를 끌고, 유모차를 끌고, 아이들과 같이 걸으며 행진하던 모습..
여느 가족들 처럼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남남, 여여 커플들과 그 가족들...
그런 모습이 범상하게 표현 될 수 있다라는 게
그 어떤 화려한 모습보다도 변화를 실감케 했다..
다양함이 존중 되는 나라..
다른 사람과 달라도 괜찮은 나라..
그 다름을 서로 서로 격려해주고 따듯하게 지지해주는 나라...
# 도시가 달라서 그런가?
그런것만은 확실히 아닐거 같은게
20년 이란 시간...제법 길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변화의 시간이었다..
언젠가 우리도..
서로의 다름으로 축제를 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