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꼬리

소설이 필요한 시간

labosque 2015. 9. 19. 11:13

# 근황

 

갑자기 일이 너무 늘어나서 거의 직장인의 삶을 살고 있다. 주 2일은 아침 부터 밤 늦게까지 확실하게 일하고

1일은 반나절과 밤까지 확실하게 일하고 1일은 월 3회 일과 문학 모임이 교대로 있고 또 1일은 한달에 한번 문학강의모임이 있고...주말은 주말대로 친정과 시댁에 하루씩 봉사한다... 한달에 나흘쯤 완전히 자유로운 날들이 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일주일은 너무 빠른데 한달은 너무 길다.. 정해진 일정대로 하루 하루 쉴 틈 없이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일주일은 정신없이 흘러 가는데 이제 겨우 한달의 반이 조금 지났을 뿐이다.. 그렇게나 많은 일들을 한거 같은데...

이번 학기가 언제 끝날지..이제 겨우 시작인데 벌써 기다려진다...

 

 

 

# 이런 삶

 

이번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에 따르면 이런 모습은 우리가 10여년 전부터 원하던 거라고 했다. 그렇긴 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던 그 때는 어딘가에 구속되어 내 자유 --빈둥거릴 자유- 를 조금이라도 손상시키고 싶지 않았었다.. 그 때..나이들면 그래서 열정도 기력도 다 쇠하면 그리고 규칙적인 일상이 편안해지면 그 때 일하고 싶다고 그렇게 말하곤 했었다..노세 노세 젊어 노세가 맞다고.. 그 때 그렇게 생각했더랬다.. 대단한 일 아니더라도.. 마트에서 계산대 앞에 서더라도 늙으면 일해야 한다고..그 때 그렇게 부르짖었었다..뭐.. 오십 넘으면 캐시어로도 서류전형에서 탈락 된다는 얘길 듣고 조금 충격이긴 했지만..오십도 아직 일하기엔 젊은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 친구와 만났을 때 커피로 축배를 들었다.. 우린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뭐..거의 그런 셈이다...(그리고 막상 오십이 되고보니.. 일 하기에 생각보다 그닥 젊은 나이도 아니다.. 어느틈에 규칙적인 일상이 편하고 열정도 자유에 대한 갈망도 끌어내기 힘겨워서.. 뭐 이대로 좋은 나이.. 나 은근 조로하는 타입이랄까..-.-;;)

 

 

 

# 소설이 필요한 시간

 

책에 푹 빠질 만한 형편도 안되는 요즘이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주로 읽고 있는데 사실 자투리 시간을 내기엔 얇고 어려운 책들도 나쁘진 않다.. 어차피 한 번에 읽어내기도 힘들고 한번에 읽어 낸다고 더 이해를 잘하는 것도 아니라..자투리 시간마다 조금씩 조금씩 읽었던 자리를 여러번 맴돌면서 한장 두장 읽어내도 괜찮은데... 그런데...그런데... 이렇게 생활이 메마를수록 머리속엔 단비가 필요하다.. 확.실.히.

문학 강의를 듣기 위한 책들은 보통 한, 두주 전에 읽곤 했었는데 이번 학기 강의 목록에 오른 영국 소설가들의 책은 정말... 단비같다... 어찌나 재미있는지.. 11월의 책까지 땡겨 읽어버리고 말았다.. 오만과 편견, 제인에어, 폭풍의 언덕...  그 다음 책들은 아직 구입을 안해서 살아남았다..  그래서 밤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싫고 소설만 찾고 있다.. 특히 읽기 편하고 달달한 거... 집에... 없다... ㅠ.ㅠ

 

 

 

# 문화 폭식

 

오랜만에 나들이를 두어차례 했는데 나들이 하기에 기가 막힌 날씨이긴 하다.. 요즘은.. 아니 특히 올해는 캘리포니아 같이 파란 하늘로 확실히 기억에 남을 만한 한해.. 앞으로도 쭉 이런 날씨가 이어진다면.. 그래서 걱정스레 말해왔던 것 처럼 확실한 기후변화가 일어난다면 올해는 캘리포니아 날씨 원년으로 삼을만한 해다.. 확실히..(올해같은 날씨라면 우리나라는 우려하던 아열대성 기후가 아니라 서안 해양성 기후가 되는 느낌이다..혹은 지중해성? 어쨋든 습도가 적어야 하늘이 파랗다..)

 

성곡 미술관에서 <비비안 마이어 전>과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한사람의 인생의 힘은 그 투박한 진실성 안에 있는 것 같다. 가능하다면 하루쯤 온전히 비비안 마이어로 살아보고 싶다. 그 사람의 생각과 감정.. 하루쯤은 완벽하게 이해해보고 싶다...피상적으로 말고..진짜 그 사람으로... 그 사람이 되어서..그렇게나 완벽한 몰두..전생애를 통한 헌신을 본적이 없다.. 그것도 그렇게나 은밀하게 폐쇄적으로...(심지어 사진을 인화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할지..그래서 진짜 궁금하다..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인데 감동을 주다니...나처럼..혹은 많은 보통 사람들처럼 모든 것을 쪼개어 사는 사람들에겐 그 통채의 온전한 헌신과 몰두가 참 어렵고 신기하다..

 

연극 <아버지와 아들>을 보았다. 투르게네프 소설. 보고난 느낌은 연극은 확실히... 뭔가 더 인생에 닮아있다.. 뭐라고 설명하긴 힘든데 느낌은 그렇다.. 제한적인 시공간에서 그 어색한 연극조의 발성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생동감의 문제는 아니고.. 영화와는 조금 다른데.. 거리감의 문제도 아닌거 같은데.. 영화가 주는 그 현실감이 너무 현실적이라 더 허구적으로 보이는 것 같은 느낌 (정확하게 설명하긴 힘드나..) 대신 연극 무대의 불 완전성이 주는 허구적인 느낌이 주는 현실성..뭔가 복잡하고 설명하긴 힘든데 암튼 그런 느낌이 있다.. 투르게네프의 인물들은 보다 더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좋았달까? 충분히 친절하게 표현되어져서 좋았다.. 인생은 그렇게 운명의 손에 맡겨져 있고 운명의 여신이 누구의 실을 잘라버릴지는 알수 없는 것.. 한 일과 하지 않은 일들 속에서 후회하고 견디고 또 잊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인생을 한번 살아내버린 느낌..